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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동업자 (고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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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서 사업을 같이하게 되면 동업자라고 합니다. 가령 자본을 대주는 사람과 기술을 제공하는 사람, 그리고 판매나 영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투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경우입니다. 본문말씀 중에 사도바울은 교회가 전개하는 그리스도 사역의 특징을 여러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말씀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9절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밭이나 집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곧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한 식구가 되어 하나님의 밭인 교회를 가꾸며 신령한 농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수행하는 복음 운동의 특징을 심고 가꾸며 열매를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마 13:3-9, 갈 6:7-8).

1. 추구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동업을 하는 경우 거기서 얻게 되는 이윤에 대한 목표가 같아야만 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곧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전력투구 하는 자입니다.

1) 생명을 위한 사역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업의 경우 정치나 경제 또는 사회 문화 여러분야가 있지만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목표로 하는 생명적 사역의 보조 수단일 뿐 목적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을 계승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생명적인 사역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10:10).
농부가 논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생명을 발효시키는 작업입니다. 곡식의 종자가 자루에나 그릇에 담겨져 있으면 생명작용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이 농부의 손에 의해서 땅에 심겨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생산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그 밭의 종류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나지만 결국 백 배나 육십 배나 삼십 배로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내용입니다(마 13:8). 생명이 있는 씨는 반드시 싹이 나고 자라게 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는 언제나 생명적 능력을 행사하면서 엄청난 생산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동업을 할 경우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을 맞추어 좋은 뜻으로 하다가도 이익을 나눌 때는 욕심이 발동하여 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국가나 사회 또는 개인 간에 동맹을 맺었다가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동기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과를 놓고 이기적인 생각이나 탐심이 작용하게 되면 불행하게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릅니다. 동기나 목적뿐 아니라 방법도 결과도 모두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목숨까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는 삶을 살았습니다(막 10:45). 인류 공통의 기도제목인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면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다른 사람도 다 기뻐하리라”(눅 1:14)는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2. 각자의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중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관계에서 제각기 역할의 분담을 통하여 일의 효과를 극대화 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1) 심는 역할입니다.

이는 전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복음의 씨를 뿌린다거나 또는 심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에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고 또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이어서 겨자씨 비유도 있습니다. 앞의 두 비유는 씨를 뿌린다고 했고 뒤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는 자기 밭에 갖다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복음으로 표현됩니다.
한편 이것을 뿌리거나 심게 되는 밭은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받아드리는 사람의 마음 밭은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토양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상관없이 열심히 뿌리고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쓰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2). 아무리 열심히 가꾸고 자라게 하는 기술이 있더라도 심지 않은 곳에서는 거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고후 9:6).

2) 가꾸는 역할입니다.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심어놓은 식물을 잘 자라도록 물을 주며 관리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로 이끌어 오게 되면 이들을 잘 양육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협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여왕벌이 알을 낳으면 모든 일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물어다 먹이며 잘 자랄 수 있게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는 예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양육과 친교 프로그램을 통하여 새신자들이 적응하기에 용이하고 영적생활에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3) 자라게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축복의 원리를 뜻합니다. 본문말씀 중에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심는 것과 물주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라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한계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관장하시지만 심고 가꾸는 일은 사람이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 위에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결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합니다. 따라서 풍성한 결실을 거둔 후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3. 즐거움을 공유(共有)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요 4:36).

1) 수고의 열매입니다.

시편 126:5-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농부가 곡식을 거둘 때의 기쁨이 한량없이 크지만 그중에도 땀을 흘리며 고생을 했던 사람과 아무런 수고도 없이 다른 사람이 지어놓은 곡식에 낫을 들고 가는 사람은 그 느낌이 다른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오직 가을에 거둘 결실을 바라보면서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디며 힘든 일을 맡아왔던 충성스러운 일꾼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4:7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새생명에 대한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6:21).
교회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사람을 살려내는 새생명 운동인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과 목적을 같이하는 동업자의 입장이라면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새생명의 탄생을 보고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경우 죽음아래서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치료하여 고쳤을 때 뿌듯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였습니다(눅 15:7).

3) 상급과 영광입니다.

세상에서는 죽도록 고생한 사람에게 상급이 공정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행한 대로 보상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동업자는 투자도 같이하고 고생도 같이하며 거기서 얻게 되는 열매도 같이 나누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업자로서 마음을 같이하고 수고도 같이했을 경우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그 영광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디모데후서 2:12에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21에 보면 주인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41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해와 달과 별과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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