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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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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

1. 한계 상황

오늘 저희 교회를 처음으로 찾으신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한계에 부딪혀보신 적은 얼마나 됩니까?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한다고 했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원래 가진 것이 없어서, 남들처럼 배우지를 못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만큼도 안 되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저앉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야베스라는 사람 역시 이러한 한계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여러분들과 함께 이 사람이 가진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여러분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비결을 찾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야베스의 “운명”

오늘의 성경 말씀은 역대상 1장부터 9장까지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족보의 일부입니다. 역대상 1장부터 시작되는 족보는, 마태복음처럼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것까지 생략된 ‘초간단’ 족보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더러는 약간의 설명이 추가된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은 ‘어느 지파로서 누구 누구를 낳았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족보를 기록한 사람은 오늘의 주인공인 이 야베스라는 사람을 기록하면서 그 기록 방법과 내용을 조금 특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처럼 “누가 누구를 낳고”라든지, “야베스의 아들은 이러하니”하는 식이 아니라, 족보의 일부분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즉 이 야베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기에 기록자가 그를 기록하면서 남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야베스에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성경 기록자가 야베스를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였다”고 했는데요, 이 “존귀한 자”라는 말은 ‘사회적 유명인사’, 즉 당시 사회만이 아니라 그 후대까지 명망이 높고 존경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왕가의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 가문의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기 지파나 그 형제들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 성경이 기록된 바벨론 포로에서 복귀한 그 시대까지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존귀한 자”가 된 것이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많이 배우고,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그냥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고 되어 있는데, 성경 원어로는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의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 기록자는 족보를 기록하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 ‘뭔가 특별한 일이 야베스에게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원래 좋은 집안, 좋은 환경, 남들보다 많이 배우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유명인사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야베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기록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2) 가혹한 운명의 사나이, 야베스

① 야베스를 “존귀한 자”라고 소개한 저자는 야베스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를 말합니다.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즉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왜 야베스를 존귀한 자라 했느냐?’, ‘어떻게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느냐?’ 인데, 기록자는 야베스의 이름을 지은 사람이 그의 어머니라는 말로 그에 대한 기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야베스를 알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주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경우, 조부모나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었다는 것을 볼 때,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조부모나 아버지가 살아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야베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태어난 유복자일 것이라고 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 견해를 지지합니다. 즉 야베스는 조부모가 살아계시고,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 그 다음으로 우리가 볼 것은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모든 이름에는 다 뜻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아무리 이름이 이상하다고 해도 그 이름에는 나름대로 뜻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이 이름을 통해서 평생토록 하나님의 복과 이 세상에서의 복을 받고 살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짓는 사람은 정성을 기울여서, 정말 심사숙고해서 이름을 짓습니다. 따라서 야베스의 엄마가 야베스의 이름을 지었다면,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가장 귀한 이름, 가장 복된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이름은 이러한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그런데 이 “수고”라는 말은 성경 원어로 “고통”입니다. 즉 야베스의 엄마는 ‘내가 고통 가운데서 이 아이를 낳았다’는 뜻으로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

출산은 모든 산모들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옛 말에 “산모가 출산하러 방에 들어가면서, 댓돌에 놓인 신발을 한 번 더 보고 들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서 나올지 죽어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 이름을 “야베스”라고 짓지는 않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박 고통(苦痛), 김 산고(産苦), 이 진통(陣痛) …. 누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이렇게 짓겠습니까? 그러니 야베스의 어머니가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은 것에는 어머니들이 보통 자녀를 낳으면서 겪는 고통을 훨씬 능가하는 고통 속에서 야베스를 낳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산모가 죽느냐’ 아니면 ‘아이가 죽느냐’ ‘둘 다 죽느냐’라는 긴박한 상황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확대해서 야베스의 어머니가 요셉의 어머니 라헬이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은 것처럼 야베스의 어머니도 야베스를 낳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하고, 야베스 역시 출산하는 과정에서 신체상의 결함이나 어떤 장애를 몸에 지니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③ 그런데 야베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0절에 나오는 기도를 보면, 야베스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지독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야베스와 그의 이름을 가지고 짐작해 볼 수 있는 그의 환경은 정말 나빴습니다. 어쩌면 부모까지 일찍 돌아가시고 없는 불우한 가정환경, 혹 태어나는 과정에서 어떤 신체상의 문제나 장애를 입었을지도 모를 어려움, 성장하는 과정이나 살아가는 과정 모두가 남들보다 더 힘들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한계상황에도 불구하고 야베스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한계를 극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처럼 불행하고 불우한 환경의 야베스가 어떻게 존귀한 자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3. “운명”을 바꾼 사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문 9절은 야베스의 운명, 야베스의 가혹한 처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거기에는 야베스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기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통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사람, 가혹한 운명의 사람이 존귀한 사람이 된 것은 바로 이 기도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베스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십시오!”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는 말로서 기도했습니다. 이 말은 복을 갑절로 달라는 뜻보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의 원어적인 의미는 “내가 갑절의 복을 받기만 한다면 …”으로 그 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말끝을 흐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표현 역시 간절함, 뜨거운 열망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간절히 구하는 복은 어떤 복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복은 사람에게서나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입니다. 즉 야베스는 자신의 가혹한 운명, 늘 고통을 달고 다니는 그것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라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누르고 있던 수고와 고통과 슬픔뿐인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께 바로 그 복을 달라고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처지를 탓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가정이나 남편이나 속썩이는 자녀 때문에 운명을 탓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학교, 외모, 부모, 성격, 자질 등으로 인해서 속상해 하는 분은 없습니까? 야베스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자신을 짓눌러 온 운명으로 인해서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로 이 기도가 그를 존귀한 자로 만들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2) “나의 지경을 넓혀주소서!”

이어서 야베스는 하나님께 자신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경’이란 영토, 영역이라는 뜻과, 인간적인 어떤 한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이 기도는 자신의 한계와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제 힘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가로 막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하나님. 그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넘어서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옵소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더 많은 기회를 주십시오.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신을 위하여 더 많이 봉사하고 섬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여러분들도 ‘하나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에는 제게는 현실적인 제약이나 한계나 어려움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들을 제거하여 주십시오. 그것을 넘어서게 해주십시오. 그것들이 제거될 수 없고, 넘어설 수 없다면, 그것을 창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3)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야베스의 세 번째 기도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게 하소서’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손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과 절대적인 권세’를 의미합니다(사 41:10).

이 기도는 인생을 열심히 살 때, 열심히 자기 일을 할 때,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지치거나 포기하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끝까지 자신을 붙들어 달라,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러다 지쳐서 쓰러지면 어쩌나’하고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야베스는 자신이 더 열심히 살기를 소원하면서, 그 열심히 중도에 그치지 않도록, 조금 하다가 그만 두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손이 자신과 함께 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저러다 내 남편이 쓰러지지’, ‘저러다 내 부인이 쓰러지지’ 하고 걱정하는 분은 없습니까? 소망과 비전은 큰데 과연 건강과 열정이 따라줄지 걱정되지는 않습니까?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손으로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능력이 제게 머물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제게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에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나로 환난을 벗어나게 하소서!”

야베스의 네 번째 기도는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환난이라는 것은 이 땅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일들을 말합니다. 사고, 질병, 생각지 못했던 불행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벌버둥을 쳐보아도 갑자기 닥치는 불행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야베스는 그러한 환난이 자신을 피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성도의 삶에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환난을 이기기 위한 기도입니다. 환난 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더 이상 일을 못하는 일이 없이 계속 전진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야베스는 이 기도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평생 계속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을 지은 브루스 윌킨슨은 “야베스의 기도를 적어서 성경책이나 수첩 안에 그리고 화장실 거울이나 그 밖의 다른 곳에 붙여두고, 그 것을 볼 때마다 당신의 새로운 비전을 되새겨 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즉 이 기도는 우리 평생에, 그리고 계속 되어야 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이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환난을 면케 하시거나 이기게 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중단되는 일이 없게 해주실 것입니다.

5)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의 마지막 기도는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입니다. 이것은 ‘내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이라는 뜻입니다. 야베스가 고통을 없이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야베스가 현재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 아닙니까? “야베스”는 고통 가운데서 태어나서 고통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야베스가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즉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기도가 야베스 기도의 백미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고통 가운데서 태어나서 고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가 당하는, 그가 지금까지 당하면서 살아온 그 고통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는 자신의 운명,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내게 지워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아버지를 싫어했고, 절대 아버지를 닮지 않으리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결국 나는 아버지를 닮아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내가 선천적으로 가진 것, 환경의 탓으로 가진 것,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야베스는 이러한 것들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야베스의 이름은 여전히 야베스였지만, 그의 삶에서 야베스, 즉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6)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여기서 “하나님이 허락하셨더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베스가 간절하게 구한 것들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대단한 유명 인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4. 자신의 한계를 넘어 존귀한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야베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야베스는 자신의 타고난 운명이나 자신의 환경 처지에 눌려서 평생을 불만이나 원망을 품고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 고아이자 태어날 때 입은 상처나 장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처지를 탓하고 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라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를 처음 찾으신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부분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야베스는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요? 기도 때문에요! 즉 야베스의 인간 역전과 승리의 비결은 기도였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한계와 어려움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 머물기보다,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서 “존귀하게”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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