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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시 11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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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마디로 험한 세상입니다. 그것도 험한 세상 나그네 길을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험한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추구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참 행복을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기에 우리는 감사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 마치 뜬 구름 잡듯이 그렇게 헤매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권세를 얻으면 행복해 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세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학문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문의 길로 정진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가 생활을 통해서 행복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조금의 여유 시간만 생기면 취미생활로 낚시를 즐기고 여행을 즐기고 외식을 즐기고 스포츠에 빠져들고 음악이나 영화나 문화 활동에 빠져듭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도 없이 자원봉사거리를 찾아 나섭니다.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누려야 하고 있어야 하고 갖춰야 할 것들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누릴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다음 주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갈 때 중요한 것들을 무얼까 생각해 본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평생을 가도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나라를 이끄는 위정자들이라든가 인생의 교훈을 주는 그러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내가 만나서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더럽고 추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보다는 깨끗하고 밝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더 갖춰져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도무지 사람답게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아주 불량한 부모 밑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혹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저런 곳에서 이런 사람이 나올 수 있었을까 싶은 그곳에는 반드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가지야 말로 우리 삶을 바꾸는 귀한 요건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물론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도 될 수 있고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믿어 영생을 얻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어쩌면 맹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셨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난 다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어두움 속으로 죄 가운데로 헤매고 다닐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하다못해 죄 가운데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대신 내어 주실 정도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받으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은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사랑 그것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서 헤매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우리들의 복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깨우쳐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요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입을 열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주시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주시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우리가 지금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시인은 지금 “나는 여호와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바로 이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 간에 이 사랑을 확인합니다.
부부 간에 “당신 나 사랑해?” 하고 묻습니다. 자녀들은 또 부모에게 묻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세요?” 연인들 사이에도 끊임없이 이 사랑을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죠? 물론 무뚝뚝한 어느 지방 사람들처럼 그걸 꼭 말로 해야만 아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보다는 마음으로 뜨겁게 살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을 상대방도 내 마음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를 쓴 다윗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는 작은 마을 힘들게 살아가는 목동의 막내아들로서 그 역시 양을 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실수투성이 인간일 뿐입니다. 그 역시 못된 짓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를 그토록 귀하게 여겨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따르라 아니면 죽는다 하고 협박이나 하는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도망 다녔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목자가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나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백보다도 더 귀한 고백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랑한다는 말이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이야 말로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이제 우리 역시 이 고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그 어떤 감사와 찬양보다도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여 주시고 또한 나를 찾아 만나주시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가장 큰 감사와 찬양을 이 시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서 하나님의 귀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뿐 아니라 선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아니 엘리야처럼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하고 청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부부간의 갈등 때문이든지 아니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 때문에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나를 헤치려고 덤벼드는 그런 사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떤 환경이 아주 나빠져서 도무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바라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삶이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좌절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건강을 잃어 죽음에 이르는 그런 절망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환난이든 시험이든 아니면 좌절이든지 간에 이런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런 자기의 입장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음의 밧줄이 나를 옭아맸으며, 무덤의 고통이 나를 덮쳤습니다. 나는 괴로움과 슬픔으로 억눌려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죽음의 밧줄이 나를 옭아맸다고 말할까요? 그러나 그는 좌절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구원해 주소서.”
그런데 그의 이러한 간구와 고백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나는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도와 달라는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주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셨으므로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부를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올바른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과 더불어서 이 사랑을 우리의 행동으로 옮기기를 원하십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우리가 아파하고 방황할 때 주님은 정말 가슴 아파하십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면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라는 말씀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을 잘 아는 시인은 시편 118:7을 통해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했으며 또한 시편 54:4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아니 이런 고백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네 방패이다. 내가 너에게 큰 상을 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아니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아니라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도무지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주시고 모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고침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감사드려야 합니다. 아직도 힘들다고요? 그렇기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정말 힘들고 지쳐있지만 정말 피를 말리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노라고 믿음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는 순진한 자들을 보호하시며 내가 큰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오 나의 영혼아, 이제 편히 쉬어라. 이는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선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주는 내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 내셨고, 나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셨으며, 나의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여호와 앞에서 걸을 수 있고,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성령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서 중보하며 기도케 하십니다. 그만큼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하나님이 더 원하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하나님께 나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서 부르짖어 간구함으로 올려 드리십시오. 그것도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고 아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어느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풍성히 임할 것입니다.(빌4:6~7)”라고 했던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그렇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이 감사함으로 아뢴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간구를 드릴 때 그렇지 않아도 우리를 돕기 위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하나님께서 신이 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곤경을 돌이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큰 고통 가운데서 그리고 실망이 가득할 때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셨노라”고 고백합니다. 그 하나님이 또한 우리도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내가 어떻게 여호와께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께 드린 나의 맹세를 지킬 것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약속을 이룰 것입니다. 주의 거룩한 자들이 죽는 것을 여호와는 귀중하게 보십니다. 여호와여, 정말로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입니다. 주는 나를 쇠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께 드린 나의 서원들을 지킬 것입니다. 주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 뜰에서 나의 서원들을 지킬 것입니다. 오 예루살렘이여, 네 가운데서 내가 서원들을 이룰 것이다.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모든 곤경에서 돌이키시는 하나님,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그 감사와 찬양은 단지 입술로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기도할 때 나름대로 마음에 작정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마음에 어떤 작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이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날마다 만나고 싶어 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고 우리와 같이 있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 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만나야 되고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만 하나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해서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여실 때 기쁨으로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 길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요? 아니요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가장 좋은 길로 그리고 가장 안전한 길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한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에는 조금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따르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요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다윗은 “여호와여, 정말로 나는 주의 종입니다. 나는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입니다.”라는 말로 나타냅니다. 즉 다윗은 “저는 주의 종이요” 라는 말로 주인 되신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주시던지 그대로 따르겠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작정했던 대로 약속했던 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첫째 감사와 찬양이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그것이 또 다른 감사요 찬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설사 그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해도 기쁨으로 그 길을 가십시오. 그러면 참 생명의 길이 열려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위해 먼저 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쇠사슬에서 풀어주셨습니다. 나를 옭아맸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리고 약속한 모든 것을 지켜나감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올 한해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습니까? 무엇을 깨달았고 무슨 은혜를 받았으며 오늘 무엇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지만 다른 것을 다 잃어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을 우리가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노라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자녀이기에 더욱 자녀가 잘 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좋은 길로 이끌어 가시고자 해서 우리에게 비전도 주시고 어떤 새로운 길도 열어 보이시며 때로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라고 하시기도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길이 아름답게 열려지기를 주님이 원하셔서 계획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기쁨으로 따르십시오. 무엇보다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리십시오. 가장 큰 감사와 찬양이 바로 이 사랑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이 시간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길도 기쁨으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돌이키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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