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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세 계단 (막 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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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 15:20-24)

우리의 신앙생활은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대학생 되듯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거기 오래 머무르면 낙제생이 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도 한곳에 머무르면 옳지 못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그래서 한 계단에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거기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 계단으로 성장해야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당부하기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신앙생활의 계단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계단은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있지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크게 세 계단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나는 지금 어느 계단에 서있는가 발견하시고 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셔서 좋은 신앙생활로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이 첫 번째 계단입니다.

구레네에 사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아프리카 북부에 사는데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시가지를 지나가다 보니 한 사형수의 행렬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형수는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진 하셔서 십자가를 지고 자꾸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 상태로는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은 그 십자가를 대신 질 사람을 찾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이 눈에 띄였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시몬을 보자 그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게 했습니다. 시몬은 이 일을 하기가 정말 싫었지만 로마군인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어서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15:21)

구레네 사람 시몬이 당한 환경이 바로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의 계단입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이런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의 계단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다 억지로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체면을 보느라고 억지로 나오고 자기를 인도한 속장님이나 집사님 얼굴을 봐서 오기 싫지만 억지로 오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또는 자신의 직분 때문에 하기 싫은데도 안 할 수 없어서 헌금하고 봉사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다 억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여기 오래 머물러 있어서 예수 믿은 지 오래됐는데도 억지로 하고 있다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을 했습니다. 자기들을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 시켜준 모세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 비위를 맞추느라고 억지로 모세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곧잘 원망하기도 하고 불평하기도 하고 애굽을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억지로의 신앙생활에 오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억지로라도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생활의 계단에 오래있으면 낙제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지로의 신앙생활에 있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말씀을 들으시고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으신 분은 빨리 한 계단 올라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처음에는 로마군인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올라갈 때 쯤 되어 자기 뒤를 따라 오시는 사형수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분을 마음에 영접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온 가족이 인가귀도 되었고 훌륭한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을 도와서 충성을 다하여 바울의 선교를 동역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후에 이들을 칭찬하고 자신의 어머니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롬16:10)

루포는 시몬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시몬의 아내였습니다.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억지로의 신앙생활에 거하시는 분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시작은 억지로 했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마시고 빨리 한 계단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가나안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됩니다. 억지로라도 했으니 안한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는 합리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셔서 믿음의 신앙생활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받고 누리는 복된 만안교회 성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이 두 번째 계단입니다.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보다 한 계단 높은 자리는 두려워서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예를 들자면 요즈음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사업이 잘 안됩니다. 식구들이 아프고 자신에게도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때 아하 내가 요즈음 기도생활 소홀했더니, 주일 성수 안 했더니, 감사하지 않았더니 하나님이 징계하시는구나 생각하고 그 징계가 두려워서 기도도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십일조도 하는 신앙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가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손길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상태니까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꽤 믿음이 자란 신앙생활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의 계단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앙생활은 축복의 가나안으로 나아갈 수 없고 헛된 자리에서 자꾸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고 수고하고 애써도 하나님의 축복과는 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이 그것입니다.
사막의 햇빛은 정말 따갑습니다. 그래서 중동사람들이 터번이라는 흰 천을 머리에 두르는 것도 바로 이 따가운 햇볕을 피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 이스라엘 백성이 나왔으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광야 길이 힘들고 어렵다고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애굽에 놔두었다면 이 고생 안 할 것 아니냐하며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뱀을 창궐케 하셔서 그것에 물려 많은 사람이 죽고 괴로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원망하고 불평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와서 잘못을 회개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꿰어 매달고 그것을 보는 자는 낫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대로 하였더니 보는 자마다 낫게되는 치유의 복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그러고 또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또 원망과 불평을 자행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같은 만나를 먹다가 싫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애굽에는 부추와 마늘과 수박이 풍족했는데 여기는 만나 밖에는 먹을게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온 백성이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너희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날만큼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추라기를 광야에 사방 20리에 1미터 높이로 쌓이게 하셨습니다. 저들은 이렇게 많은 고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기는커녕 그렇지 못하고 자신이 더많이 먹겠다고 고기를 앞에 두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고기가 이빨 사이에 있고 삼키지도 못했을 때에 진노의 재앙을 내리셔서 많은 사람을 치셨습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민11:33-34)

하나님의 동행과 기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뱀에 물리는 징계만 두려워하고 두려움이 끝나면 또다시 욕심을 부려 징계를 받는 악순환을 만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우리는 주시해야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이 또 다른 징계를 가져와 통곡을 할 정도로 먹고 싶었던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징계를 당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에서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이 그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은 이같이 방황하는 삶을 살게 하고 똑같은 자리에 있어서 축복의 가나안을 향하여 달려가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밟는 땅을 다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나님이 출애굽을 할 때 약속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밟은 땅은 곡식 한톨 얻을 수 없는 광야만 밟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악순환만 만들게되는 것입니다.

고라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모세와만 말씀하시고 명하시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모세를 귀하게 쓰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사람이 불평 할 일이 아닌데 고라는 불평하고 대적하다가 250명이 몰살을 당하는 화를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려움의 신앙생활로는 결코 축복의 자리에 이룰 수 없다고 고린도 전서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9-11)

사랑하는 만안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이 주시는 책망이 두려워서 하는 신앙생활이 아닌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한 계단 더 올라가셔서 믿음으로 밟는 땅마다 다 복된 것을 밟고 소유하고 누리는 만안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감사와 기쁨의 신앙생활이 세 번째 계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에, 깨닫지도 못할 때에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달라고 떼를 써서 해주셨다고 해도 감사한데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에 대속해 주신 이런 주님의 은혜가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감사로 인하여 주일도 성수하고 그 구원의 기쁨으로 십일조도 드리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일 높은 계단에 서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생활을 해야 자원하는 삶이 나올 수 있고 기쁨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2편에 보면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과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1-6)

감사로 한 기쁨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같이 믿는 성도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형통의 축복, 평안의 축복, 삶의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30여년전에 어떤 의사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암치료에 특별한 특효약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약으로 돈 많은 사람을 치료해서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고 자신도 큰 돈을 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가진 약이 꼭 필요한 환자가 왔는데 정말 가난한 파출부하는 홀어머니와 사는 여고생 환자였습니다. 귀한 약값을 받기는커녕 보태주어야할 처지여서 자신은 고칠 수 없다고 거절해서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환자의 어머니가 자신이 특효약을 가지고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것 같이 의사 앞에 무릎을 꿇고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의사는 자신도 이 약을 공짜로 얻었으니 공짜로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약을 써서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한 6개월쯤 지나서 환자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더니 그냥 돌아갔는데 앉았던 의자에 봉투에 싸인 물건이 있습니다. 궁금해서 풀어보니 그때 250원하는 사이다 한 병이 들어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은 있는데 가난해서 아무것도 드릴게 없고 사이다 한병 사왔으나 그것도 부끄러워 드릴 수 없는 과부의 마음이 찡하게 자신의 마음에 전해져서 그 사이다를 먹지 않고 6개월을 책상 앞에 놔두고 매일 보며 큰돈 번 것보다 더 행복한 마음으로 그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대 재벌 록펠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만일 처음 교회 갔을 때 말씀을 듣고 월급 6달러 중에 십일조 60센트를 심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과 같이 백만 달러를 십일조로 바칠 수 없었을 것이다” 록펠러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학교도 못 다녔던 그가 어느 주일날 교회에 가서 감명 깊게 들은 말씀은 십일조란 복의 씨앗을 하늘 농장에 심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난에 찌든 록펠러지만 그 말씀대로 실천했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 상당히 큰 재물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서 금광에 손을 대면 더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광업에 손을 대었는데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번 것 다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광부들이 찾아와 밀린 임금을 내놓으라고 농성을 해서 거의 자살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광산 모퉁이에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펴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어김없는 진리인줄 믿습니다. 어린 종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한이 되고 원이 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성껏 십일조도 드리고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런 캄캄한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난한 저를 광산 사장도 하게 하시고 큰 사업도 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그래서 무릎꿇은 그 자리를 기계를 대고 깊이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때가 되기를 기다리며 팠습니다. 놀라운 열매가 열렸는데 그곳에서 금광이 터진 것이 아니고 석유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가 다시 회생하여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려운 자리에서 이렇게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지혜와 그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가 하나님을 감동시켰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억지로의 계단과 두려움의 계단에 서신 성도여러분!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 머물지 마시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쁨으로 신앙생활 하는 계단에 우뚝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능동적인 감사의 신앙생활로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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