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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만 바라볼지라 (시 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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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하여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포로수용소에서 혹은 지하감옥에서 무참히 학살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지하감옥에서 발견된 것이 있습니다. 벽에 손톱으로 다윗의 별과 함께 이런 글을 새겨 놓은 것입니다. "비록 태양 빛이 비춰오지는 않지만 나는 저기에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지금 사랑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나는 저기에 여전히 사랑이 존재함을 믿는다. 비록 지금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길이든 노련한 인도자만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 길에 하나님처럼 노련하신 인도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길이 옳은 길이고, 승리하는 길이고, 안전한 길인지 다 아시므로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가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바로 되면 어떤 자리, 어떤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며 부르짖은 기도의 시입니다. 비탄시이면서도 하나님께 가져야 할 바른 신앙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환난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인생 길에는 수많은 환난과 고통이 따릅니다.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올 수도 있고, 사람을 통해서 올 수 있고, 자신의 잘못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의 다윗은 어려움을 당할 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했습니다.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린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반석이 될 수 없고, 구원이 될 수 없으며 피난처는 더더욱 될 수 없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하나님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첫째로 나의 구원이시니

제3차 중동전쟁이라고 불리우던 6일전쟁 당시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던 모세 다얀(Dayan Moshe) 장군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습니다. 100배의 인구를 가진 아랍연합과 맞서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계는 그것이 틀림없이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을 능가하는 신무기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다얀 장군은 이스라엘 장병들을 일선에 투입하고 방송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전파를 통해서 전선의 이스라엘 장병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방패가 되시며, 보호가 되시어 결국에 승리를 안겨 주신다는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장병들의 마음은 극히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6일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세계는 다얀 장군의 최신의 무기가 궁금하였지만, 새로운 무기가 사용된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얀 장군은 승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최신 무기의 힘은 이스라엘 전 장병의 마음 속에 불타고 있는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애국심이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본문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는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한 것입니다. 여기의 '바라며' 는 원어로 '뚜미야' 라는 말로서,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 움직임이 없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구원의 문제를 맡긴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이 해결하시리라는 확신입니다.

문제를 만나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모든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구원이신 여호와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나아갈 때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고, 영광이 되시며, 머리를 들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소망이시니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 프레드릭 왓츠(F.Watts)가 그린 '희망(Hope)' 이란 제목의 그림이 전시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서 비파를 뜯는 그림인데,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으나 여섯 줄이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다가 비파의 줄은 끊어졌지만 이 여자는 한 줄을 가지고 비파를 계속해서 타고 있습니다. 그 줄은 희망의 줄입니다. 인생에 희망의 줄 하나가 남아 있는 한 노래는 계속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희망이란 희귀한 바람(望)입니다. 희망과 비슷한 말로 소망이 있는데 이것은 '바라는 바' 라는 뜻입니다. 소망은 일반적으로 잘 사용되지 않으며 오직 성경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희망의 반대말이 절망이라면 소망의 반대말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소망이 없으면 죽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의 희망은 불행과 결핍에서 시작되기에 모든 것이 만족한 상태에서는 희망을 잡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희망을 잃어버렸으며 그로 인하여 무력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자가 희망을 가질 수는 있으나 소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희망의 대상은 인간이 기대하는 모든 것이지만 인간의 바라는 바 소망은 부나 안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소망은 약속과 관계가 있습니다. 소망은 약속에 근거합니다. 소망은 약속하신 하나님이 존재하는 한 존재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며 한없는 평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의 소망이라는 말은 '카와' 입니다. 이 말은 '기대하다, 쳐다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라는 의미입니다. 희망이 인간의 필요에서 시작된다면 소망은 하나님의 갈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소망은 인간의 세상적인 희망이 끊어진 곳에서 시작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점점 밝아집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곤경과 어두움에 처했습니다. 자식에게 당한 일이기에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세상적 희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구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소망만 있으면 세상의 희망이 끊어진 모든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세상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의 영광이시니

미국의 흑인 가수 마리안 앤더슨(M. Anderson)은 세계적인 가수입니다. 그녀는 천재적 가수로서의 노래 때문에 23개국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식장에서 미국 국가를 독창하였습니다. 1958년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녀를 유엔(UN) 대표로 지명한 적까지 있습니다. 19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상패를 받았습니다. 40년간 성악가로서 명예를 떨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가 은퇴하는 시간에 남긴 말은 그 동안에 끼친 어떤 감동보다 더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내가 유명해진 것이지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했기에 하나님은 그녀를 평생에 크게 쓰신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다윗은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라며 하나님만 바라라고 합니다. 본문뿐 아니라 다윗은 시편을 통하여 구구절절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합니다.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담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붙드심으로 출입이 안전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 치려 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고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 중심, 물질 중심, 자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음으로 교만하여 모든 것이 헛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이심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문제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이 문제의 덩어리입니다. 고통의 멍에가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한 몸입니다. 병들고 상처투성이입니다. 빈궁하고 염려와 근심이 있습니다. 사업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있습니다. 수많은 영적 문제가 태산 같습니다. 마치 여인이 임신하였으나 해산할 능력이 없음같이 우리는 문제 앞에서 초라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이시기에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망이시기에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광이시기에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시로 의지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부디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삶의 방식이 전환되어,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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