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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는 이적을 낳는다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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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 살고있는 ‘맛지족’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내 머리가 흙 속에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은혜에 대한 최고 예의를 표할 때, 머리를 땅에 닿기까지 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감사하다는 말이다.

  그 반면에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입을 닦는 사람’이라고 한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떼든지 혹은 모르는 척 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성숙한 영혼의 표식이다. 우리는 감사하는 태도로, 영적 성숙을 측정할 수 있다. 감사하는 영혼은 아름답고 성숙한 영혼이다.

  영혼이 타락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게 된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감사하지 않는 영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감사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훌륭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감사에 있다.

① 다윗 왕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열하면서, 백성들에게 감사를 잊지 말라고 했다(시103:2-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다.

②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함을 알고도, 감사하면서 기도했다(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③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했다(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감사했고, 자신이 당한 고난과 과거의 실수마저 감사했다.

  더 나아가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권했다.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처럼 감사할 때, 우리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사셨다. 감사는 예수님의 습관이요, 이적을 만들어 내는 도구였다. 감사는 이적의 비결이요, 행복의 비결이다. 또 좋은 관계를 맺는 비결이며, 변화와 성숙의 비결이다.

1. 감사는 은혜를 깨달아야 표현할 수 있다.

주님께서 5병2어의 이적을 일으키실 때, 광야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쉬려고 하는데, 쉬지도 못하게 찾아오면 어떻게 하냐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셨다.

  또 찾아오려면 자기가 먹을 것은 가지고 와야지, 이렇게 그냥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평하지 않으셨다. 또한 병든 자들을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시지 않고, 감사하셨다. 주님을 인정하고,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하셨다.

  눅17장에서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다. 그런데 그 중 1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병이 나았다고 감사한다. 10명 가운데 딱 1사람,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만 와서, 감사를 표현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료하셨다는 사실을 말했다.

  감사는 깊은 깨달음에서 온다.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조금 받았어도, 깊이 깨달은 사람은 감사할 줄 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에게 감격하셨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때문에 실망하시고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셨다. 문둥병자의 가장 큰 고통은, 깨닫지 못하는 고통이다. 그들은 고통을 아는 신경이 마비되었기에, 고통을 깨닫지 못한다. 불에 손을 넣어도,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코가 문드러진다.

  문둥병자를 고치는 데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는, 병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통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나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문둥병자들의 소원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가장 귀한 선물은,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고통 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문둥병자다. 이와모도 집사님의 간증은, 감각이 살아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그는 문둥병으로, 신경이 마비되어 소경이 되었다. 나중에는 자신의 몸에, 감각이 있는 곳은, 혀끝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받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는 감각을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혀로 울룩불룩한 점자성경을 핥아서, 신구약 성경을 다 읽었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혀끝으로 더듬어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또한 “성경이 일용할 양식 되는 줄 미처 몰랐다”라고 감사했다. 받았지만 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영적으로 문둥병자다. 아픈 감각이 있을 때, 통증을 느낄 때,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병이 무섭기 때문이다. 암은 초기에 통증을 못 느끼기에 무섭다.

  작은 죄만 지어도 가슴이 막 뛰고, 양심의 아픔을 느끼십니까? 축복으로 아십시오.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양심에 화인 맞아 악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로 알고 있다면,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감사는 받았음을 느꼈기에 할 수 있다. 받았지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인 문둥병자들이다.

  영적인 문둥병자들이 되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는 편안할 때보다 고통을 느낄 때, 더 주님을 찾게 된다. 고통도 축복이 될 수 있다. 왜 광야로 백성들이 나갔는가? 고통 때문에 주님께 찾아 나섰다. 따라서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면, 절망하지 마시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란다.

2. 감사는 축복의 씨앗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가운데 하나가, 감사를 통해 이적을 창조하시는 원리다. 본문은 오병이어의 이적이다. 이적을 일으키실 때, 5병2어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축사하셨다. 감사하셨다.

  이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예수님의 손에 올려 드려야 한다. 예수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에 있으면 아무런 이적이 일어나지 않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면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므로,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자꾸 예수님의 손에 올려 드려야 한다.

  그리고 이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보셨다. 그 이유는 모든 도움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옴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 드리셨다. 감사 중의 감사는 아직 받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받았다고 선언할 때 나타난다.

  아직 받지 않았는데, 믿음으로 받았다고 감사하면, 하나님께 칭찬 받는 믿음임에 틀림없다. 받았을 때 받았다고 표현해도 귀한 일인데, 아직 받지 않았지만, 받을 줄 알고 표현한다면, 얼마나 귀한가? 따라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감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다.

  예수님의 감사는, 받을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먼저 감사 드리셨다(요11:4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11:6). 보통 사람은 보기 때문에 믿지만, 믿음의 사람은 믿기 때문에 보게된다. 믿기 때문에 아직 받지 않았지만, 미리 받은 것처럼 감사한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다. 구한 것은 이미 받은 것처럼, 믿고 감사하는 기도다(막11:24). 감사의 기도가 능력이 있다. 기도할 때 가장 강력한 기도는, 감사기도이다. 구한 것을 이미 이루어 주신 것으로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기도가 된다.

  감사의 말, 믿음의 선언은 이적을 창조하는 재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따라 역사하시므로,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한다. (민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을 따라 행하신다. 말은 씨앗이다. 말할 때마다 그 말이 내 삶에 꼭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 말하라. 좋은 말, 감사의 말, 축복의 말, 사랑과 존경의 말을 심으면, 우리는 좋은 것을 거두게 된다.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스펄전 목사님의 말을 기억하라.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이 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살게 되어있다. 마치 거미가 자기 몸에서 나온 거미줄로, 집을 짓고 사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말로 우리의 환경을 만들어 살게 된다. 감사의 말을 하면, 감사하는 일이 생긴다. 믿음으로 시도해 보라. 성숙하게 되고, 축복의 사람이 된다.

  감사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 펌프에 붓는 마중물 같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그리고 빨리 펌프를 움직이면, 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처럼 감사의 물 한 바가지를 부으면 축복이 넘치는, 감사의 생수가 수없이 올라온다.

  감사는 행복의 비결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만, 누릴 수 있다. 감사는 관계를 아름답게 맺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 주기에, 행복하다. 감사는 앤돌핀을 분비해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에 정말 행복해 진다.

3.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라.

예수님은 항상 감사하셨다. 항상 감사하는 삶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 감사의 훈련해야 한다. 훈련을 통해 감사의 습관을 형성해야만 한다. 어떻게 감사하는 습관이 들 수 있나?

(1) 날마다 받은 복을 구체적으로 세어 보라.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 보는 사람이다. 받은 복을 세어 보면 볼수록, 우리가 받은 복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눈에 띄는 복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복도 세어 보라.

  그리고 받은 복을 받았다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축복에 대한 반응이다. 따라서 자신이 무엇을 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깨닫지 못하면, 감사와 기쁨을 느낄 수 없다.

(2)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라.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다. 감사는 마음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입술로, 글로 감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를 표현하면 감동을 준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소수이기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 받는다. 행복해지는 비결이, 사랑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데 있음을 알고, 감사를 표현하여, 행복할 수 있기 바란다. 특별히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보자.

(3) 받은 은혜를 기록해 놓아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우리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기록해 놓고, 그 은혜를 다시 돌아보면, 감사를 잊지 않게 된다.

  낙심할 때도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 낙심된 영혼이 소생하고, 믿음이 강렬해지며, 다시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다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받았던 은혜를, 꼭 기록하라.

(4) 모든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함으로, 감사를 표현하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요셉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고통스런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약점도, 축복으로 알고 감사했다.

  우리가 해석을 잘 해야 하는 말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었다. 농사에서 가장 좋은 거름은 변이었다. 그래서 배가 아프도록 참았다가, 친척의 집에 가서, 변을 봐줬다. 그런데 일제가 우리 민족의 단합을 막기 위해, 잘못된 해석을 했다.

  따라서 사촌이 땅을 사면 기뻐하라. 사촌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게 마련이다. 힘들다고 고민하지 말라. 정상이 가까울수록, 힘들기 마련이다.

(5)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라.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이 말씀에 순종하라. 그러면 이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라.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일에도 감사하라.

  그때 하나님께서는 감사할 수 없는 사건을, 감사할 수 있는 사건으로 만드신다.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순종하려고 하라.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면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보게 된다. 이해하기에 순종함이 아니라, 순종하면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영성훈련은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훈련이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 감사 드리는 것이다. 염려는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염려를 기도로 바꿀 때, 이적은 나타난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감사는 인생의 자세다. 자세가 중요한 이유는, 자세는 방향을 의미하고, 방향은 조금만 바꾸어도,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면, 더욱 복된 인생이 된다. 감사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에, 행복하게 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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