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천국에 들어가는 길 (마 7:21)

  • 잡초 잡초
  • 458
  • 0

첨부 1


스위스의 어느 소년이 너무 공부를 못해서 그의 부모는 그를 비정상적인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소년의 선생은  쓸모없는 아이라고 불렸고 그의 친구들은 바보라고 그를 놀렸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이 소년은 취리히 대학에 입학시험을 겨우 쳤는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해 재수해서 다시 시험을 쳤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후에 비로서 그의 참된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성원리를 발견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진학을 위한 시험을 치루게 됩니다.

  시험은 시험하는 자의 뜻을 잘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임금님이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며느리를 고르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의 왕후가 될 사람이므로 가장 슬기로운 처녀를 찾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임금님이  며느리를 뽑는다는 광고를 듣고 아름다운 처녀들이 수백명이 궁전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임금님은 이 처녀들에게 시험문제를 내셨습니다. "너희들에게 쌀 한 되씩을 주겠다. 이것으로 한 달 동안을 먹다가 다시 모여라." 처녀들은 큰 걱정이었습니다. 쌀 한 되라면 하루에 다 먹어 버릴 만한 적은 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처녀는 멀겋게 쌀 물을 끓여서 마시기도 하고 어떤 아가씨는 처음부터 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들 중에 <달래>라는 어여쁜 소녀가 있었습니다. 달래는 임금님의 쌀을 앞에 놓고 밤새도록  연구를 했습니다. "훌륭한 임금님께서 이런 엉터리 시험 문제를 내실 리가 없다. 임금님의  생각이 무엇일까?" 아침이 되어서야 달래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릎을 탁 치고 방실 웃었습니다. 달래는 곧 부엌에 가서 그 쌀 한 되를 가지고 몽땅 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쁜 옷을 입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임금의 며느리 감 쯤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떡을 파니까 참 잘 팔렸습니다. 동네 총각들이 앞을 다투어 떡을 사먹게 되었습니다. 달래는 떡 판 돈을 가지고 다시 쌀을 팔아 떡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떡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달래는 떡 장사에 아주 재미를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남들처럼 굶는 것이 아니라 장사해서 번 돈으로 먹고 싶은 통닭이랑 불고기랑을 실컷 사먹었습니다. 그러니까 몸도 건강해지고 떡판을 이고 다니며 햇볕에서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얼굴도 알맞게 타서 아름다워졌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마감 날이 되었습니다. 임금은 높은 보좌에 앉아서 궁궐로 들어오는 처녀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인력거에 탔거나 아버지 등에 업혀 오는 처녀들은 사람이 아니라 뼈만 남은 송장들이었으니까요.

달래가 들어왔습니다. 달래는 힘차게 두 팔을 흔들며 들어왔습니다. 그 뒤에는 쌀가마니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들어왔습니다. "임금님이 주신 쌀 한 되로 장사를 하여 그 동안 제가 잘 먹고 남은 것이 한  달구지가 되었사오니 받으시옵소서." 임금님은 달래의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달래는 있는 것을 앉아서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그것을 불릴 줄을 알았느니라. 이 나라의 왕후는 일하기를 즐거워하는 달래가 되어 마땅하다." 달래가 왕자의 비로 간택이 되었습니다.

  시험을 치루는 가운데 지혜도 필요하고 협력도 필요 합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이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따라 갔다가 너무 추워서 자동차 안에서 시험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은 첫 시간 시험을 보고 쉬는 시간에 담 넘어로 어머니를 잠깐 만났는데 시험을 못 봤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래, 미안하다. 지금부터는 내가 저 솔밭에 가서 기도할 터이니 최선을 다하여라하고 당부하고선 추운 땅에 꿇어앉아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들은, 시험을 보는 동안 줄곧 어머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올라 큰 힘이 되어 시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잘치르었다고 어머님께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잘 치루면 좋은 결과 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기도자들은 큰 시험을 받았던 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위대한 기도와 큰 시험은 나란히 가는 듯합니다. 하지만 기도의 삼각형에서 세 번째 동반자가 있는데 그것은 기도로 얻은 위대한 승리입니다. 이 승리를 맛보고 싶으면 나머지 둘도 있어야 합니다. 위대한 기도 전사였던 조지 뮬러는 어떻게 하면 믿음이 강해지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강한 믿음을 터득하는 유일한 길은 큰 시련들을 잘 견디는 것입니다. 저는 혹독한 시험들 속에서 굳게 섬으로써 믿음을 배웠습니다.” 혹독한 시험이 생애에 주어진 몫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험들이 지나간 후에 큰 승리를 주시려고 계획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귀한 성도들을 위해 정하신 바로 그 길을 허락하신 것을 인하여 기뻐하십시오. 당하는 천 가지 시험은 모두 유익을 끼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훨씬 더 큰 용기와 부지런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숭고한 기도-닉 해리슨-예화뱅크- 큰 시험, 위대한 기도)

시험을 치룬다고 다 합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선교회에서 선교사를 뽑기위해 채용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교회에서 예비 모집을 하고 "내일 새벽 4시 정각까지  여기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후보자들이 시험을 치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불평이 나오고 화를 내고, 가버리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8시가 되어서야 문이 조금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안내원은 문을 조금 열고서는 들어 오라는 말도 없이 고개만 내밀고  "여러분 하나 더하기 하나는 얼마죠?" "해는 어느 편에서 뜨나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런 단순한 질문만 하더니 "예 이제 시험이 끝났습니다.
집에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선교사를 뽑기 위한 시험의 전부였습니다. 며칠 후 한 사람에게 합격 통지서가 날아 들었습니다. "당신은 선교사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4시 정각에 온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인내의 시험에도 합격하셨습니다. 4시부터 8시가지 잘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또 혈기가 있나 없나 보는 시험에도 합격하셨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질문에도 화내지 않고 온유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시간 지키기, 인내,  온유는 선교사의 3대 조건입니다."

  이 세상은 크리스챤들의 시험장입니다 언제 어떤 문제로 시험을 치루게 될지 모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시험, 인내의 시험, 겸손의 시험, 신뢰의 시험, 사랑의 실천시험... 우리가 제대로 쓰임받기 위해선 부지불식간에 치루어 지는 이런 주님의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이 선교사 지망생과 같은 느닷없는 상황 속에 쳐해 졌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 할까요? 우리의 인격과 됨됨이는 이와 같은 데에서 평가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그릇에 따라 쓰임 받게 됩니다.

  학생들이 진학을 위해 시험을 치룬다면 우리는 천국을 바라 보며 나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9:62)

고린도 전서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9)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1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전 15:50)

갈라디아서에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 5:19)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20)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1)
계시록에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0: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 22:15) 합니다.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주여 주여 하지 말며 주의 이름을 부르거나 담대히 고백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롬 10:13)합니다. 그러나 또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 6:46)고 질책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은 없으면서 모양만 가지고 주여 주여 부르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르려면 반드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 1:4)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며 거룩한 생활을 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말과 행동은 종종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가겠소이다"하고 말한 자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마 21:29).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8)  맏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대답만 하고 순종하지 아니했고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나중에 순종했는데 어느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이냐는 것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여 주여"하면서 아주 끈질기게 탄원하고 그들에 제시하는 것에 관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고서 그리스도께 호소합니다.
    "주여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한'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발람과 가야바는 예언하도록 강요받았고, 사울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선지자들 중에 있었으나 그 사실이 그들을 구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의 이름을 사용한 것 뿐입니다.
    "주여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낸'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것도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도  귀신을 쫓아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멸망의 자식이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참된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내세울 만한 선한 행실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탄원이 거절됩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23절). 하십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으러 나갈 때에 등만 들고 갔을 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등은 기름이 없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섯 처녀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주님을 맞을 실제적인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어리석고 미련한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음으로써 정작 신랑이 올 때에 기름이 없어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0-12) 합니다.

  입술의 고백뿐이고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봉사에는 나아가지 않는 자들을 주님은 받지 않으시며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인정하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신앙의 고백이라도 멋대로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도 지지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들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들음이 행복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며 듣고 행한다면 복되리라는 것을 반석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으로 비유를 들어 가르치십니다(24-27절).
말씀을 듣는 자들이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한 부류는 들은 바를 행하는 자들이며 다른 부류는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행합니다.  비교적 극히 소수일지라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듣는다는 것은 겨우 그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은총입니다.  '너희 귀는 복이 있도다'(마 13:16,17).  그러나 만일 우리가 듣는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제정하신 율법 뿐만 아니라 계시하신 진리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며 기억하고 말하고 반복하며 그것들에 관해 논쟁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듣고 행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주시고  '이것을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 하셨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들만이 '복이 있으며'(눅 11:28; 요 13:17) 그리스도의 혈족입니다(마 12:50).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듣는 것에만 만족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의를 행한 백성들이 그의 길 알기를 즐거워한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그것을 행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겔 33:30,31; 사 58:2).  그것은 마치, 씨는 뿌려졌으나 도무지 싹이 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만 하거나 행치 않는 자들은 천국에 이르는 길 도중에 앉아서 여행의 목적지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는 주일은 추수 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범사'('엔 판티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입니다(in all circumstances, NIV).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동참해야 합니다. 

시험을 치루는 학생은 정답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아는 대로 답안지에 옮겨야 좋은 점수를 받아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행하여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강성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