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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를 잃어버린 시대 (신 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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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이 시대는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곧 '감사 불감증'이란 이름의 병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게 풍부해야만 행복한 게 아닙니다. 행복은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할 때 찾아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다 하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행한 인생입니다. 풍부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감사함으로 행복해지는 겁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잘 사네 못 사네 해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거리마다 자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해마다 버려지는 음식이 8조억이 넘는 시대에 우리가 살지 않습니까? 뭐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자가용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됐습니까? 30여 년 전만 해도 마른 사람이 많아서 오죽하면 배가 나온 사람을 배 사장이라고 불렀겠습니까? 요즘은 역전되어서 뱃살이 있으면 핀잔 받기 일쑤가 아닙니까?

1960년대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유엔에 등록된 120여 국가 중에 필리핀의 국민 소득이 170달러 태국 220달러일 때 한국은 76달러였습니다.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낮은 나라는 인도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후진 국가였던 것입니다. 국가 경제를 재건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지만 한국에 돈을 빌려주려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고 일억 사천만 마르크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서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6,000명이나 몰렸습니다. 자격요건은 고졸 출신이었으나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습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 까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일부러 거친 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억 만리타국 땅 서독에 도착한 광부들은 지하 1000m이상의 깊은 땅속에서 열 시간이 넘는 고된 작업을 했습니다. 나이 어린 간호사들 역시 문화도 언어도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이 겪어야했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내 사정은 더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들은 서울 간 자식들의 학비를 보태 주려 아끼던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여공들은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가발과 공작품을 만들었고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으로 거두어들인 쥐 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라는 제품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했습니다. 1965년 우리나라는 수출 일 억 달러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세계가 놀랐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난날의 그 어려움을 다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이 과거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얼마나 행복해졌나? 따져보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 감사가 줄어서 그렇습니다. 감사 대신 불만 불평을 일삼는 시대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이제 감사의 달을 맞이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이 바로 그겁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 자신의 문제도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을 보면 출애굽 이후 축복의 땅 가나안에 막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혹시 감사를 잃어버릴까봐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감사를 잊어버리는 줄 아십니까? 무엇보다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출애굽 이후에는 광야 40년 동안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넉넉히 공급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주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을 띄우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띄우셔서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던 4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전적인 돌보심이 아닙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이들은 그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길목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18절에 보시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은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하게 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기억하라'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기억하라'는 말은 신명기에 16번이나 반복되는 말로서 과거 언약적 관계에 씌어지는 말입니다. 광야 40여 년의 역사와 교훈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신앙생활의 산 역사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우리들도 마음에 새겨야만 하는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은혜 베푸셔서 배불러지면 더 감사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교만해지고 배은망덕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힘으로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인간의 죄성이 바로 이겁니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 롬1:21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말세가 되면 이런 못된 인간성이 더욱 심각해진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딤후3:1-2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

따라서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감사는 환경 조건이 좋아서 풍부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악한 인간성으로는 아무리 풍부해져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풍부해질수록 배은망덕하기 쉽습니다. 호13:6 보면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배부를수록 배은망덕해지는 인간의 실상을 지적합니다. 잠언 30장 아굴의 기도를 보면, 아굴이 염려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혹시라도 물질이 풍부해져서 하나님은 배반하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잠30:8-9에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상 감사치 못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됩니다. 오직 신앙이 있어야 감사가 가능해집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를 인정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 이 곧 '감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가장 기본적으로, 우선적으로 감사해야 될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 생명이 코의 호흡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사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시고, 그 위에서 방울방울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무조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름지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나와서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가 아닙니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아신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아무것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영생을 주셨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을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구원의 감사가 기본입니다. 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없는데 잘된다고 감사하고, 돈 좀 벌었다고 감사하고, 건강하다고 감사하는 것은 의미 있는 감사가 못됩니다. 가장 큰 감사는 구원의 감사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이 오셔서 뜨거운 손으로 만져주시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구원의 감격이 다시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감격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어찌 그 뿐입니까?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광야 같은 세월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기간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 광야 같은 위기를, 광야 같은 역경을 한두 번씩은 경험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그럴 때 그 위기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넘기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돌이켜 보십시오. 눈앞이 캄캄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디를 가야 될지, 어느 쪽에 탈출구가 있는지 모르고 허우적거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기를 넘겼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과거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앞으로도 광야 길을 다시 걷게 될 때,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내 인생의 한 복판에 오셔서 변함 없이 사랑하심을 항상 잊지 않고 살아야합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감사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토다" 입니다. 그 말의 본래 뜻은 "내 던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나의 모든 것을, 나의 전 존재를,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께 내 삶을 ,내 인생을 드릴 때 우리 안에는 이 땅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샘 솟듯 일어나게 됩니다. 그 때 부터 어떤 여건, 어떤 환경 앞에서도 감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중에는 감사거리가 없어 감사하지 않아도 될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값없이 얻은 구원에 감사하지 못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높고 감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누굽니까? 광야의 어려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여기에서 제외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하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이 시간 감사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감사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 다 감사할 제목이 있습니다.

어느 평범한 주부의 간증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소 단조롭고 분주한 일상으로 마음에 불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있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고, 119를 불러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살다 가나?''이러다 그냥 죽는 건 아닌가?'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걷게만 해 주세요. 아니, 아이들에게 밥해 줄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아니, 일상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 그분의 병명은 '급성요추부염좌'였습니다. 다행히 한 달만에 퇴원합니다. 그 때 그분은 감격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감사 제목이 된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밀을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입니다. 곧 유월절 명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과 보리가 자라서 추수를 하는 늦여름이 되면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맥추절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명령하시기를, 3번 절기를 지키면서 감사를 드릴 때 반드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공수로 여호와께 나와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는 입의 감사와 동시에 마음의 감사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감사가 있어서 입으로 감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그분은 우리 모든 생각의 한 토막 한 토막까지도 다 알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세세하게 잘 아십니다. 우리의 약점까지도 다 아십니다. 즉 우리 마음이 재물과 쉽게 밀착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마음은 돈의 노예가 됩니다. 쌓으면 쌓을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돈에게 왕창 사로잡힙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부자가 구원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부자가 구원을 얻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이 많다 보니 마음이 자연히 그 쪽으로 가버리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섬길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마음으로는 있는 돈을 다 주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까 주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유하고, 자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내 마음이 자꾸 그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갑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그래서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위해 빈 손들고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보물을 네 손에 들고 나와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물을 손에 들고나오면 그 예물 때문에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 앞에 어떠한 감사를 드렸습니까? 입으로는 많은 감사를 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귀한 예물을 손에 들고 그 예물에 내 마음을 담아 드리는 감사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잘 하고 계십니다. 제가 감사헌금을 가끔 확인해 보는데, 감사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잘 담으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 없이는 한 순간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하루, 아침에 나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가정이 평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안심하고 앞날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부족한 게 무엇입니까? 물질도, 건강도, 지위도, 권세도, 명예도, 그 어느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감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해집니다. 모든 것 다 갖고 있어도 감사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신앙을 회복합시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오늘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디 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함으로 감사를 회복하시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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