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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 100:1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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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한 해에 한 번씩 가을 곡식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제를 올리는 날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지극히 표면적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저의(底意)는 가을 추수를 포함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감사의 동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재발견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일차적인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보은의 삶을 서원하는 것이 추수감사절 의미의 압권(壓卷)이라고 하겠습니다.

Ⅰ. 감사절의 유래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의 초기 국면은 당시 영국의 최고 통치자였던 헨리 8세의 정치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헨리 8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옹호자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8세는 그의 결혼문제로 로마 교황과의 관계가 순탄치 못했습니다. 그는 수렵과 궁술과 테니스를 즐겼습니다. 그의 형 아더(Athur)는 스페인의 공주 아라곤의 캐더린과 결혼했습니다. 아더가 죽자 인색한 왕 헨리 7세는 캐더린에게 지참금을 주지 않기 위하여 교황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리고 캐더린과 헨리와의 결혼을 허락하는 면장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헨리 8세는 스페인 왕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의 딸이었으며 형 아더(Athur)왕의 아내였던 캐더린(Catherine)과 결혼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교회법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교황의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결혼 후 15년 동안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가 사산(死産)이 아니면 일찍 죽고 병약한 딸 메리 한 사람 밖에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헨리 8세는 자기 대를 이을 남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때 그는 궁녀 앤 불린(An Boleyn)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궁녀와 결혼하고 캐더린 왕후와의 결혼을 무효라고 선언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캐더린의 조카인 독일 황제 카알 5세의 보복이 두려워 헨리의 요청을 거절 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크게 노하여 토마스 그랜머(Thomas Granmer)라는 신학자와 유럽 여러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헨리 8세는 그랜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대법관에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토마스 크롬웰(Thomas Cramwel)을 기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밀리에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결혼식을 진행시켰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왕이 전에 캐더린과 결혼했던 것은 불법이며 앤 불린이 법적인 영국 왕후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들은 프로테스탄트였고 앤 불린은 이들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황은 10일 이내에 앤 불린과 이혼을 선언하지 않으면 파문에 처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헨리 8세는 1534년에 국회의 의결을 거친 교회 수장령(Act of Supermacy)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로써 영국의 국왕은 지상에서 영국 교회의 유일한 수장인 것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영국교회는 로마교회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1547년 헨리 8세가 세상을 떠나자 10세 된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헨리에게는 자식이 셋 있었습니다. 첫째 딸 메리는 캐더린이 낳은 자식입니다.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앤 불린이 낳은 자식이고, 에드워드는 제인 시모아(Jane Sey-Mour)라는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사내 아이였습니다.
에드워드 6세는 남자였기 때문에 누이들을 제치고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겨우 7년간 왕 위에 있다가 죽었습니다. 에드워드 6세에 이어 1553년에 피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메리(Mary)가 즉위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머니 캐더린이 이혼당한 날로부터 서자(庶子)의 한을 품고 자랐습니다. 그녀가 37세에 즉위하기까지 20여 년을 그늘에서 지냈습니다. 따라서 메리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원한이 깊었기 때문에 영국을 다시 옛날의 로마교로 돌아가게 하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메리는 메리 자신의 아버지 헨리가 제정한 법령을 폐지시켰습니다. 메리부부는 국회의원을 대동하고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로마교회로의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살인적인 핍박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일생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그랜머 감독을 포함한 신교의 지도자들을 줄줄이 화형 시켰습니다. 그녀는 1,200여명의 성직자를 파면시키고 감옥에서 죽은 자 말고도 286명이나 되는 신교 지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녀는 말년에 피의 여왕 메리라는 소름끼치는 이름과 함께 인생의 초라한 막을 내렸습니다.
1558년 영국의 정치사상 가장 위대한 왕 엘리자베스 여왕이 25세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그녀는 신교의 지도자들의 영향 아래서 성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리의 박해로 흩어졌던 프로테스탄트들은 기독교의 자유라는 환상을 가지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현실정치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획일적인 카톨릭의 경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카톨릭을 포용하는가하면 여기에 반기를 드는 자들은 가차 없이 징계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마침내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는 1603년으로 끝났습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영국에서의 신앙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청교도 Puritan)은 1620년 9월 6일 브르웨이트라는 지도자를 따라서 두 척의 배(스피드 윌리와 메이플라워)에 나누어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문제가 생겨 스피드 윌리호는 도중에 돌아갔고 메이플라워호(180톤짜리 작은배)는 102명(남 78명, 여24명)을 태우고 76일 3,400마일의 먼 뱃길을 항해하게 되었습니다. 한치 앞을 보장받을 수 없는 위험천만한 항해 길이었습니다. 선상에서의 그들의 기도는 울부짖음 그 자체였습니다.
마침내 1620년 11월 20일 꿈에도 그리던 미국 동부해안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협약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퓨리탄의 유명한 51명의 명의로 된 선상협약(Promouth Statement)입니다.
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장래의 생활목적을 설정한다.
② 우리는 나라를 세울 국민들의 계약에 의한 민주정치를 구현한다.
그들은 다음날 곧 1620년 11월 21일 메사추세츠 플리머스(Freemouth)에 도착했습니다. 102명 중 한 사람은 항해 도중에 죽고 한 사람이 태어나서 102명이 상륙했기 때문에 처음 숫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오나아스(태양)"라고 지었습니다.
그들은 미 대륙에 상륙하여 모질고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고 토인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제일 먼저 자기들의 집을 짓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를 지었습니다. 먹을 양식도 없었습니다. 47명의 사랑하는 형제를 그곳에 잠재우면서 그들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역사가는 말하기를 "만약 그들이 교회가 아닌 자기들의 집을 먼저 지었다면 오늘의 세계를 이끄는 미국이 없었을 것이요, 굶주림과 풍토병, 토인들의 습격,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낸 원동력은 교회를 통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오늘의 세계의 요셉의 창고인 미국입니다
그들은 옥수수를 심고 고기를 잡으며 열심히 일을 해 1621년 10월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 축복을 감사하기 위해 토인들을 초청하고 자기들이 수확한 과일과 곡식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3일간 축제를 벌였습니다.
앞서간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음식을 나누면서 같이 즐기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것이 감사절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에 지사(행정관)는 윌리암 브랏포드(Bradford) 였습니다. 그 후 1623년 메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습니다.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일로 개정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감사절 하루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32대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1939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개정하게 된 것입니다.

Ⅱ. 진정한 의미에서 추수감사절의 의미

레위기 23장 43절에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지키라고 한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이 초막절 절기의 계승입니다.

1)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 되심에 감사입니다.
본문 100편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본문 100편 3절에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라고 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본문 100편 3절에 『…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라고 했습니다.
(3) 우리의 양육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본문 100편 3절에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2) 우리의 죄를 용서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6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3)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신명기 16장 13절에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감사절기 입니다. 맥추절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거둔 첫 수확에 대한 감사라고 하면 수장절은 최종 수확에 대한 감사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4절에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4) 장차 있을 마지막 재림의 소망에 대한 감사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0절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추수의 열매를 보면서 가라지가 되지 말고, 알곡이 되어 천국에 가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5) 장차 풍성한 물질 축복을 확신하는 감사입니다.
신명기 28장 6절에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37편 25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10-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나아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서 7장 10절에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6) 영적 추수에 대한 서원입니다.
요한복음 4장 31절에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추수를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추수에 동참하겠다는 서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각에서는 추수감사주일과 우리의 추석을 같이 생각하는 웃지 못할 발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우선 대상부터가 전자는 하나님이고 후자는 조상신, 우상입니다. 감사는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존재 전부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능동적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 마땅히 할 올바른 태도이며 보은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감사는 의무이자 당위적 성질의 것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의 부인은 그의 회고록에서 말하기를 "대 성공자들의 특징은 감사를 진심으로 잘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마음 속의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는 지난 일에 대한 감사의 여부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우아한 형식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감사는 남자들의 멋이며 여자들의 우아함이라고 했습니다. 영국 속담에 "감사가 있는 집을 찾으라. 그 집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뿐 아니라 손님을 대접할 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아들의 장래이며 딸의 미래"라고 했습니다.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역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기가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그 은덕을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이스 사화집에 기록하기를 "즉석의 감사는 가장 유쾌하다. 만약 지체하면 모든 감사는 헛되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의 본질입니다. 이 세상은 무섭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도그마(본질)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메도스(방법)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육체의 生이라고 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 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남편들의 직장은 흐를 사이도 없이 말라버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은 2,000만으로 숨이 찹니다. 한두 번 유혹에 넘어간들 그 누구도 탓하지 못할 만큼 되어 버린 세상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감사를 찾을 줄 아는 자만이 추수감사주일의 진정한 맥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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