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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 52:7-10, 롬 15:14-21, 막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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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교회 새 성전 건축이 4년 동안 오래 계속되기도 했지만 준공 날짜가 매우 유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 성전 봉헌 날짜도 역시 최근에야 잡혀서 이런 일들에서 매우 곤란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 교회로서는 이토록 역사적인 일을 하면서 그냥 넘긴다는 것도 마음에 허락되지를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명사초청 신앙 특강을 마련하여 한동대 김 영길 총장과 섭외가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메가톤급 부흥회 강사를 구했더니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설교가로 꼽히는 소망교회 원로이신 곽 선희 목사님과 연락은 되었는데 일정은 내년 3월에나 가능하다해서 할 수 없이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계획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봉헌하는 것도 매우 감격스럽고 영광된 일이지만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성전보다도 한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성전을 건축하노라고 정말 눈물과 땀을 흘리며 헌신하였지만 만일 한 영혼을 위하여 이런 힘을 쏟는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봉헌과 함께 “한 생명”을 봉헌하자는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일정이 너무 촉박했습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는데 이 정도의 일정은 오히려 일이 졸속으로 형식만 취하는 데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매우 망설여졌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우리 장로님 가운데 한분이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새 성전 봉헌식 때 적어도 항존직만이라도, 아니 항존직분자들이 앞장서서 새 가족을 인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아무리 절실해도 즉흥적으로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그 구상과 장로님의 그 제안이 제 머리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새 성전 봉헌 때 내가 전도할 대상의 이름만이라도 적어서 봉헌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결심과 소원이라도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고 명하시는 뜻인 줄로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이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서 봉헌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하여 아낌없이 드린 그 믿음과 정성을 반드시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여러분이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한다면 그 모든 것 보다 더 기뻐하실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않으시렵니까?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면 주님이 그냥 계시겠습니까?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에 최 권능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본래 이름은 최 봉석이셨는데 목사님이 되신 후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많이 행사했던지 아예 이름을 “권능”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한번은 오지 중의 오지인 평안북도 산골에 있는 화전민 마을에 전도하러 찾아 갔습니다. 적은 농토를 가지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화전민들을 보니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위하여 그 멀고도 험한 곳을 찾아간 것입니다. 다른 계층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도 그렇지만 화전민들에게 전도하는 일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어떻게 하면 전도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릴 듯 말 듯한 좀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화전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일하던 농기구들을 집어던지고 황급히 소리가 들리는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최 목사님은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면서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어림잡아도 한 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빙 둘러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최 권능 목사님은 “바로 이때다!” 싶어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여러분, 예수 믿으시오. 예수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사람 죽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으시오”하고 외쳤습니다. 지켜보던 화전민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이 영감 돌았군!”하면서 두들겨 패려고 달려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망을 치던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가슴에서 무엇을 꺼내더니 느닷없이 “암행어사 출도요!”라고 외쳤습니다. 목사님을 좇던 화전민들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만 해도 “암행어사”라는 말만 들어도 산천초목도 벌벌 떨던 시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진한 화전민들은 정말 암행어사가 출도한 줄 알고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목사님은 화전민들이 엎드려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기를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그리 아시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목사님이 “암행어사 출도요!”하고 내민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당시 노회에서 목사님이 전도 많이 했다고 그에게 걸어준 전도 왕 메달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어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한 생명을 사랑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 이름을 전해야겠다는 그 열성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최 권능 목사님에게 이런 일화는 숱하게 많습니다.

우리는 내년 2007년이 평양 대 부흥운동 100주년이라고 해서 교단마다 요란스럽게 계획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Again 1907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19007년의 부흥운동은 이런 불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단지 몇몇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열정 말입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새 성전 봉헌과 함께 한 생명을 주님께 봉헌하기 원하는 우리 각 사람, 우리 안동서부교회에 이런 열정을 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3.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리고 지상(至上)의 명령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집니다. 그런 만큼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께서 “땅 끝까지”라고 하셨는데 여기 “끝까지”라고 하는 말씀은 물론 공간적인 의미도 있고, 시간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일의 내용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우가 한 사람을 마음에 작정하고, 그 이름을 적어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감동에 대한 응답이요 비로소 행동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버리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립할 때 까지 부모의 끊임없는 배려가 있어야 하듯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가 따라야 합니다.

하루키라고 하는 아주 전도에 열성적인 한 일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루키는 큰 회사의 사장에게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반갑게 맞아주던 사장도 계속 찾아오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엽서에 성경 구절을 적어서 발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엽서를 받자마자 보지도 않고 빈 서랍에 넣어두곤 했습니다. 아무리 엽서를 보내도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루키는 계속 보냈습니다. 10장, 20장, 50장 이렇게 하여 99장까지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100장 째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사장은 회사일로 일생일대 최대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 인생을 정리해야 되겠구나.” 라는 서글픈 결론을 내리면서 서랍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서랍에 수북하게 싸여있는 엽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장은 그 중의 한 장을 집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성령께서 그에게 강하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서랍속의 엽서를 하나도 빼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다 읽었습니다. 엄청난 감동과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편지를 보낸 하루키를 불렀습니다. 믿기로 결심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그 사장은 교회당까지 지어 봉헌했습니다. 회사 직원들에게도 끊임없이 전도하여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셔도 아예 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기는 하되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 수고가 마치 길 가나 돌짝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 옥토란 복음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굳은 땅을 기경하고 옥토로 바꾸는 전도자의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1.1.1전도를 제창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 교회가 정책적으로 추진할 전도 방향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지난번에는 한 사람이 한 주일에 한 사람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한 사람이 적어도 1년에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자는 운동입니다. 우선 사람을 작정하고, 이름을 적어 주님께 보고 드리고, 그렇게 하고나서 지속적으로 집중적으로 사역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말씀은 전도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4. 때로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매가 없을 때 실망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일단 뿌린 씨앗은 하나님께서 싹이 트고 열매 맺게 해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비행기를 탔는데 옆 좌석의 청년을 보니까 전에도 한번 본 일이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를 소개하고 청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자신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목사님의 그 열성적인 전도에도 별무반응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목사님도 힘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어떤 사람이 목사님에 전화를 해왔습니다. 자기는 낮에 목사님 옆에 앉아있던 그 청년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아들에게 전하는 모든 내용을 뒷자리에서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아들에게 전한 그 복음의 말씀을 더 듣고 싶으니 좀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뜻밖의 열매가 아닙니까?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능히 하시느니라.”

성도 여러분은 교회를 위하여 눈물겹도록 사랑하고 봉사하며 섬깁니다. 나는 우리 서부교회가 새 성전을 봉헌하게 되기까지 여러분이 하신 일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을 해도 알고 안 해도 압니다. 하나님은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이루어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은총과 축복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결국 생각하면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일을 하실 때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저와 여러분을 들어 쓰신 줄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이 주어지니까 마지못해 할 수도 있고, 또 이것이 자극이 되어서 새롭게 헌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냥 쓰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면 반드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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