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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생활의 기적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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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둘 것은, 감사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성한 의무일 뿐 아니라 위대한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신 에베소서 5장 20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요즘 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하지요?”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범사에 감사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줍니다. 그것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또는 그를 힘입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감사할 이유가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매년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해 동안 우리의 영육 간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특별히 회상하면서 감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성탄절과 부활절과 같은 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별도의 날을 정해서 감사절로 지키는 것은, 우리의 감사생활을 점검하고 향상시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유익이 됩니다. 이 시간 저는 “감사생활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함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 심령에 은혜가 임합니다.

앞에서도 말씀한 대로, 그리스도인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권면하기를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고 했습니다.

불같은 시험을 당하면서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켜서 생각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되므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우리 심령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역경 가운데서도 마음에 평안이 있고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감사생활을 등한히 하고 늘 불평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심령이 나날이 곤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우리의 감사생활에도 해당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한번 결심을 하시고 감사생활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으로 곰곰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해 보십시오. 나 같은 죄인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65억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쩌다가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으로만 감사할 뿐 아니라, 입술로 감사하는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를 그토록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또한 큰 소리로 감사의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가를 펴서 몇 곡이고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을 부를 때, 놀랍게도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평강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아서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는 평강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평강은 감사하는 마음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가 가장 크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감사할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강을 주신 것,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온 것,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직장과 사업을 통해서 쓸 것을 공급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잘 자라는 것, 하나님의 은혜인줄 아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 어려운 일을 만난 성도님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절망하지 아니하고 그 어려움을 이겨낸 데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을 통해서 나를 정금같이 연단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살아온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지만 실은, 오직 이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살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기껏해야 노후 대책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로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루하루를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기 쉽습니다 마는, 불평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 결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뿐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셔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한편, 감사생활에 힘쓰는 성도는 사람들과도 화목한 관계를 이루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을 먹으면서 어떻게 다투지 않고 화목할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할 때 그것이 가능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려 놓고서도 다투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마음에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목한 가정은 가족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루어집니다. 가장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해서 가부장적인 위세만 부리고 아내나 자녀들에게 감사를 받으려고만 하고 가족에게 감사할 줄을 모른다면 그 가정은 수용소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용소에 가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내와 자녀들은 가족을 위해서 땀 흘려 수고하는 가장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가족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할지라도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역식구들은 구역장님의 수고에 감사해야 하고, 구역장님은 구역식구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감사할 때 구역이 화목하고 부흥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베푼 작은 친절에도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따뜻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내다보면 때로는 서운한 일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런 것은 가급적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은 잊지 않도록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한번 감사했으니 됐다 할 것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좋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렇게 살면 불행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하시거든, 이 속담과 거꾸로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감사생활에 힘쓰심으로 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감사할 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에서의 후손인 에돔 자손과 연합해서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당시 유다는 갑작스런 침공에 아무런 대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믿음이 좋은 왕인지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고 공포했습니다. 이에 많은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와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장정들만 아니라 여자들과 어린이들도 동참했습니다. 왕과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때에, 하나님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습니다. 이에 야하시엘이 이 같이 말했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말을 들은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과 의논하고 성가대를 조직하고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나아가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막강한 적군을 상대하러 전쟁터에 나가면서, 예복을 입은 성가대가 맨 앞에 서서 찬송을 부르면서 나가다니, 도대체 상식에 맞는 행동으로 보이십니까? 그러나 성가대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큰 소리로 찬송을 시작하였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찬송이 시작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적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압몬 자손과 모압 자손이 힘을 합하여 에돔 거민을 멸하고, 그러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싸워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이 와서 보니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고 하나도 피한 자가 없었습니다. 성가대가 적진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하필이면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감사의 찬송을 불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의 비결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야 응답을 받지, 감사가 없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항변이요 불평에 불과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실 리가 만무하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고 말씀합니다.

절박한 형편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원망, 불평하지 아니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너무나 기묘해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감히 예측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빛이 있으라” 명하시니, 빛이 생겨났습니다. 삶이 칠흑같이 어둡고 암울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 구원의 빛을 비추셔서 모든 어두움을 일거에 사라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그의 무덤에 가셨을 때, 하늘을 우러러 보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런 다음,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시니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제 발로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에 앞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올리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는 기도가 응답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무슨 어려움을 만났습니까?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을 체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는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말씀하시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은 반드시 제사장에게 가서 병이 나은 것을 보이고 증명서를 받아야 다시금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문둥병을 고쳐주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과연, 열 문둥이는 제사장에게로 가던 중에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마 서로의 상태를 확인해 주면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한 걸음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래서 다들 제 갈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열 사람 중에 단 한 사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도 다른 아홉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시 바삐 제사장을 만나 자기 몸이 나은 것을 확인 받은 후에 그리운 가족을 만나러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도 급하지만, 먼저 그를 치료해 주신 주님을 찾아뵙고 감사드리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속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배여 있습니다. 그들은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었으나 그렇게 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서도 감사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선민에 들지 못하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 처지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고 하셨습니다. 아홉 사람은 육신의 문둥병을 고침 받은 것으로 그쳤으나, 이 사마리아인은 육신 뿐 아니라 그 영혼조차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홉 사람의 처사가 너무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생활을 돌아다보면 감사생활에 힘썼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을 해결 받고서도 마치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 자신이 차지한 적은 없는지, 잘된 결과를 보고 기뻐하느라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을 망각한 적은 없었는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은 아무리 자주 할지라도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생활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오해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오해가 무엇인가 하면, 헌금을 많이 바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흥정을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복을 주셔서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러면 제가 지금보다 몇 배나 더 헌금을 바치겠습니다. 선교비도 더 많이 내겠습니다.” 그럽니다. 그런 사람의 병은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늘 부족하게만 생각되어 감사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은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7)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이 같이 말씀하십니다.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

하나님께서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으시므로 우리의 재물을 원치 않으십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할지라도 하나님과 흥정하는 심산으로 드리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오직 감사로 드리는 예물이라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환난 날에 위대한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감사하지 않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라고 하였으며,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이 타락한 자들의 공통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감사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냐, 아니냐를 구별 짓는 기준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감사생활을 등한히 해 것을 회개하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민감하게 깨닫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들으신 말씀대로 감사생활에 힘쓰심으로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며, 환난 날에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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