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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요 15: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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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요한복음 15장18절~27절까지
설교제목 : 우리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서  론
  여러분!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도 달라집니다. 내가 군대에 속해 있으면 군인의 행동을 하게 되고, 회사에 속해 있으면 회사원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남자들이 제일 추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비군복을 입었을 때 입니다. 그렇게도 멋있던 사람, 심지어 의사, 변호사도 예비군복만 입히면 이상하게 아무데서나 소변보고, 침을 찍찍 뱉고 합니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속해 있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오늘 우리들을 가르켜서 우리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바로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도리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우리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게 되면 세상에 속한 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세상에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세상의 가치관에 두고 그것을 신으로 섬기며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이 신이 되고, 세상의 권력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는 세상적인 것들이 우선시 되어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은 그 분만이 나의 참 주인이시며, 그 분만을 기뻐해 드릴려고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20절을 보게 되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무엇이 온다고요/ 예! 바로 핍박입니다. 핍박이 무엇입니까? 바로 세상적인 것들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는 이런 핍박이 믿지 않는 남편, 자녀, 친구들을 통하여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인 부분들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핍박은 결코 우리를 넘어 뜨릴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세상의 엄청난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육신의 고통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저주하는 언어의 핍박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핍박을 다 이겨 내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를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속한 자! 하나님께 속한 자인 우리들에게 핍박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피할려고 오히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세상적인 방법들을 동원하게 되면 더욱 벗어날 수 없는 엄청난 핍박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러나 첫 순간부터 세상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위하여서는 내가 오늘 죽겠다는 각오로 세상적인 핍박에 대하여 맞설 때 세상의 핍박은 어느 한 순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여러분들에 부탁을 합니다. 오늘 하루가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때 우리는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게 되며, 또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들에게 엄청난 세상의 핍박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자는 바로 믿음으로 세상의 핍박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설교일시 : 2006년 4월 18일 새벽기도회 설교        찬송가 : 507장
설교본문 : 빌립보서 3장 17절~21절까지
설교제목 : 본을 보이며 살아갑시다.
서  론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들의 행동과 모습을 보면서 본받으려고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행동을 하게 될까요/ 마음놓고 자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우리의 행동과 언어에 상당히 조심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이 앞에서 자신을 가르켜서 ‘나를 본받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17절을 다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세상에 본이 되는 삶을 당연히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합니다. 소금처럼 세상이 썩지 않도록 하는 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되어 어두운 세상이 더 어두워지지 않도록 본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모습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육적으로 성숙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숙한 어린아이의 신앙과 삶에서 성숙한 성인의 신앙과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본받으라’ 본을 보인 바울은 성숙한 신앙과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 바울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바울이 성도들에게 본받기를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헌신의 삶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유익을 따라 살지 않는 헌신의 삶을 본보였습니다.
  “이기심”을 극복해야 헌신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에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있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 있습니다. 교회와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바울은 자신의 몸 시간 물질 모든 것을 아낌없이 헌신했습니다. 주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고난을 감수하였습니다. 고난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헌신하는 삶의 본이 되시기 바랍니다. 헌신하는 본이 있는 부모 밑에서 헌신하는 자녀들이 생깁니다. 헌신하는 직장인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영향을 끼칩니다. 헌신하는 일꾼이 있는 교회가 결국은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열매를 맺습니다.

  둘째는 복종의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쳐서 복종하면서 온전히 주님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때로는 권리도 포기합니다. 행복도 포기합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복종합니다. 항상 바울은 내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합니다. 바울을 보면 자기의 유익을 쳐서 복종하고 오직 교회를 위해서 주님을 위한 종으로 자기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권리를 주장하여서 권위가 서는 것이 아닙니다. 권리를 내려놓고 자기를 복종할 때 거기에 진정한 권위가 서게 됩니다. 교회 속에서 보면 자기 주장을 좀 내려놓고 묵묵히 자기를 쳐서 복종하시는 본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열심의 삶입니다.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경주자와 같이 주님의 상을 위해서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열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열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런 열심의 본이 있기를 바랍니다.
점점 좋은 것을 본받기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18절에는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다”라고 말하고 잇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받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의 쾌락과 욕심을 본받으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교회 안에 가짜 신앙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에 이런 자들을 가르켜서 결국은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기독교인들을 말한다고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증이 있는 사람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늘에 우리의 소속이 있는 백성들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영적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쫓아가는 것, 세상을 탐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우리의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돌르 본받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바로 20절에 언급을 하고 있는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는 것처럼 주님을 고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예수님이 오실까 감옥 안에서 오직 그분을 기다렸습니다. 왜 주님 만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까? 주님으로 인한 영광이 주어질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깨 내가 누릴 놀라운 특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새벽 시간에도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기도할 수 잇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이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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