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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감사하시는 주님 (욘 2:9, 요 11: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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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사과는 언제 따 먹는 것이 가장 맛있을까요?” 그 답은 “주인 없을 때”입니다. 실제로 사과는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을까요? 감사하며 먹을 때입니다. 음식은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겠습니까? 감사하며 먹을 때입니다. 삶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어떤 일도 진정한 행복을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18세기 가장 유명한 기도의 사람이며 영성가인 윌리엄 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이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린이 같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사와 원망의 교차 속에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이란 큰 감사를 잊어버리고, 고기라는 작은 것 때문에 원망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놓으니 자기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하는 격입니다.

  민수기 14:27에는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들리지 않게 원망할 것이지 들리니까 하나님은 얼마나 섭섭하였겠습니까? 원망도 해야 할 사람이 해야지 원망해서는 안 될 사람이 원망하니 하나님이 노하시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언 19:3에는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합니다. 성경도 원망은 미련한 일이라고 합니다. 옛말에도 “대인은 감사할 조건을 찾고 소인은 원망할 조건을 찾는다”고 합니다. 원망은 망국 백성의 근성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감사 없는 삶은 맹목적이고, 감사 없는 기도는 원망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리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주제파악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리 산수 공부를 열심히 해도 분수를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제일 가르치기 힘든 수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을 세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덧샘, 뺄샘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다른 경전과는 달리 ‘감사’란 말이 많 나옵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성경 원어에 나오는 감사란 말은 ‘카리스’입니다. 이 말은 ‘은혜’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신약성경의 상당수는 감사란 말을 ‘유카리스’라는 말을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좋은 선물’, ‘축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된 감사가 무엇입니까? 감사는 은혜 받은 자가 은혜 베푼 자에게 고마움을 보답하는 마음과 행동 그리고 입술의 표현입니다. 시편의 기자가 말한 대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자세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리는 선물입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도 하셨던 감사를 보면서 참된 감사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의 감사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감사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감사는 항상 하나님이 대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단 한번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마27:46). 그 외에는 모두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면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시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감사의 주제가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우리에게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시고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일밖에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 10:21에는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도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이 언제나 선하시기에 아버지께는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는 시체를 보았습니다. 섞은 냄새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체가 아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시체 섞는 냄새가 아닌 향기를 맡았습니다. 이 때 감사가 있습니다. 시체를 보면 원망이 생깁니다. 악취를 맡으면 절망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부활을 보고 소망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감사가 있습니다.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세상의 썩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눈을 돌리면 감사가 넘칩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하심을 풍문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1:3에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고 합니다. 바울의 감사의 대상도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옛 말에 “옷 입을 때에 베 짜는 여인의 수고를 감사하고 밥을 먹거든 농부의 노고를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사람이 감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나면 하나님이 감사의 대상이 됩니다.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노래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감사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이었고,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궁극적 자세이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였던 메튜 헨리는 이렇게 감사를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 강도를 만났지만 생명만이라도 살아 돌아와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또 제가 예수를 안 믿었더라면 나를 때린 강도같이 되었을 텐데 예수님을 믿고 강도가 아닌 목사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설령 제가 강도에게 맞아 죽었더라도 또 세상을 다 잃어 버려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소극적 계명과 적극적 계명이 있습니다. 소극적 계명은 “...하지 말라”는 계명들입니다. 적극적 계명은 “...하라”는 계명입니다. 성경에는 적극적 계명 보다 소극적 계명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감사는 적극적 계명입니다.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계명이 180번이나 등장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감사의 궁극적 내용은 응답하심입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감사의 내용은 말씀에 대한 아버지의 응답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대한 확신이 전 생애를 지배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들으시기 전에 먼저 감사부터 하셨습니다. 이루어질 줄 알고 감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선불 감사입니다. 아직 살아나기 전인데 먼저 감사부터 하였습니다. 감사부터 하는데 어찌 아버지께서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들으시는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어떤 유대인이 선불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먼저 감사드립니다. 로또에 당첨될 줄로 알고 미리 십일조를 낼 테니 로또에 꼭 당첨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그래 너 착한데 먼저 천당에 데려가마”라고 하셨답니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감사의 내용을 보세요. “하나님이 구원하여 내셨음이여 주의 성호를 감사하나이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감사한 것입니다. 응답은 곧 화목입니다. 화목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과 신뢰, 여기에서 감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목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응답하지 않으면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순환의 원리가 있습니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을 이룹니다. 구름은 또 다시 비가 되어 땅에 내려옵니다. 만일 물이 순환되지 않으면 만물은 다 죽고 말 것입니다. 신앙인은 감사순환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은혜에 감사로 응답하면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다시 은혜를 주십니다. 감사와 은혜의 순환은 하나님과 우리의 상호작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에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응답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추수감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구약의 절기는 출애굽과 구속을 감사하는 유월절과, 봄에 뿌린 밀의 수확을 감사하는 칠칠절과,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여 7일 동안 지키는 초막절이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는 모두가 감사의 표현입니다. 문자 그대로 감사의 제사입니다.

  구약의 제사 가운데 감사제는 레위기 3장에 나오는 화목제입니다. 감사제가 화목제인 까닭을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화목이 곧 감사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없으면 하나님의 응답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1620년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이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60여일을 항해한 끝에 그 해 11월20일 신대륙의 플리머스항에 상륙하였습니다. 그해 겨울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인디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듬해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씨앗을 준 인디언을 초대하여 수확한 곡식과 채소와 과일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음식을 나눠먹었습니다. 고난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독일의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노년에 시력을 잃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바흐는 당시에 유명한 안과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았습니다.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의사가 바흐의 눈에서 붕대를 풀었을 때 그를 둘러서 있던 자녀들이 물었습니다. “아버님, 뭔가 보이세요?” 그 때 바흐는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큰 슬픔에 잠겼지만 바흐는 오히려 자녀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작곡한 찬송가 145장 3절이었습니다.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 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 그가 부른 감사와 승리의 개가였습니다.

  ‘마라스머스’라는 병이 있습니다. 전쟁고아나 고아원의 원아들에게 발병되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 증상은 발육부진과 쇠약입니다. 때로는 이 병이 심해지면 죽기도 합니다. 이 병의 원인은 애정 결핍과 불안입니다. 감사하지 못한 사람은 이보다 더 심한 온갖 중병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감사 찬양의 2절을 보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절입니다.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결론

  탈무드에는 “혀에 감사합니다란 말을 버릇들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은 사람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이 감사를 잘 배워야 인생이 복됩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인 한 분을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고 은혜받기 전에는 항상 보복이 앞섰습니다. 어떤 사람과 재판 건에 걸려 소송에 이겨도 그 사람에게 100% 보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서하기보다 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용서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시간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감사가 쌓이니 남이 나에게 대한 것보다 내가 남에게 대한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기에 남의 잘못을 쉽게 용납합니다. 이런 삶을 살다보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세상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입니다. “오직 한 종류의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는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감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세상이 감사로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십시오. 감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감사로 세상을 치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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