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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오직 감사뿐인 신앙 (대상 16: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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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농부의 집에 암소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한 마리는 붉고 다른 한 마리는 흰 송아지였습니다. 평소에 교회에 잘 나가지도 않던 남편이 너무 감사해서 흥분 된 목소리로 말합니다.“여보, 송아지가 자라면 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팔아서 헌금합시다.”이 말에 아내도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하는 말이“여보! 송아지가 한 마리 죽었소. 그런데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었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습니다.“아니 어느 것이 하나님의 송아지인지 어떻게 알아요?”이에 남편이 대답하기를“나는 말야, 처음부터 흰 놈을 드리려고 생각했거든....그런데 하필 흰 놈이 죽어버렸어”하더라는 것입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마는 사실 오늘뿐만 아니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면 그것은<감사>입니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도 우리에겐 하나님의 송아지가 잘 죽는지 모르겠습니다. 환경이 조금 변하거나 곤란스러운 일이 생기면 제일 만만한 것이 하나님의 송아지입니다. 감사하기로 작정했으면 비록 환경이 변한다 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은 변하지 말아야 하고, 비록 병이 들었다 할지라도 감사만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가 병들면 내 인생의 전부가 병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사란 과거도 감사한일이었고, 현재도 감사한일뿐이며, 또한 미래에 주어질 일들도 전부가 감사의 조건들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감사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 때부터는 불평과 원망이 못살게 만듭니다. 불행의 연속일 뿐입니다.

어디를 보나 나무랄 데가 없이 예쁜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는 한 가지 숨겨진 큰 컴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눈썹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이 여자에게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습니다. 남자도 여자에게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해 주었고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눈썹 때문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자기만의 비밀을 행여나 들키면 어쩌나 그래서 남편이 자기의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면 어쩌나 노심초사(勞心焦思)했습니다. 그렇게 삼 년이란 세월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않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일순간 망하게 되고 둘은 길거리고 내몰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연탄배달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람이 불던 오후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리어카의 연탄재가 날아와 여자의 얼굴은 온통 검정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고 답답했지만 여자는 혹시나 자기의 비밀이 들켜 버릴까봐 얼굴을 닦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꺼내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불안한 여자는 어찌 할 줄을 몰라 당황했지만 뿌리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내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내의 눈에는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눈물까지도 남편은 닦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눈물까지 다 닦아준 후 남편은 다정하게 웃으며 아무 말 없이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은 남편이 아내의 눈썹부분만은 건드리지 않고 얼굴의 다른 부분을 모두 닦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사랑한 남편이 너무 고맙고, 현재를 눈물겹게 살아가는 남편이 고맙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할 것 같은 남편의 배려에 뜨거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감사란 할수록 깊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감사란 할수록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제가 감사했으면 오늘은 더욱 감사한 일이고, 내일은 더 큰 감사가 기다리고 있는 법입니다. 감사는 쌓여서 더욱 큰 감사를 낳는 것입니다.

<마일리지 서비스>를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은행 카드, 전화요금, 심지어 화장품가게나 슈퍼마켓에서도 일정 금액 이상 사면 카드를 발급해 주고 일정금액이 적립되면 특별상품을 준다는<누적보상제도(累積補償制度)>가 그것입니다. 가정주부들은 이러한 마일리지카드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롯데마트에 마일리지가 등록 되어서 누구든지 가서 포인트 적립만 하면 우리교회 이름으로 적립이 되서 연말에 이웃돕기 성금이 얼마나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꼭 하고 옵니다.

이처럼 살아가면서 누적되면 될수록 좋은 것이 있고, 누적되면 오히려 손해인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과로, 폭음, 폭식, 미워하는 마음, 편견, 나쁜 습관, 과도한 소비는 누적될수록 손해입니다. 그러나 누적 될수록 좋은 것이 있습니다. 많이 웃으면 다른 사람의 머리 속에 좋은 인상이 누적됩니다. 많이 걸으면 건강이 누적됩니다. 칭찬이 누적되면 점점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마음에 교양과 품위가 누적될 것입니다. 약속을 지킬 때마다 신용이 누적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감사가 누적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마일리지의 특징은 처음 몇 번으로는 별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이용해야 그 점수가 누적되어 특별선물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감사의 마일리지 카드에는 얼마만큼의 포인트가 적립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만큼의 감사가 누적 되어져갑니까?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여러분에게 감사의 카드가 없는 사람은 하나씩 만드십시오. 그래서 감사의 마일리지를 매일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먼저 감사는 하지 않으면서 은혜만 바라는 것은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드린 감사의 기도문 중의 일부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법궤라고도 부른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론의 지팡이와 십계명 돌비와 만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신적 권위가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이 법궤는 이스라엘의 전부일 정도로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 때에는 이 언약궤가 70여 년 동안 변방에 방치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작업이 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놓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한 차례의 실패를 경험하고 이제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는 감격했고 안도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너무나 감격해서 감사하는 노래를 부릅니다.“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지어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34-36절)

우리는 오늘 이 다윗의 감사 속에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총체적인 감사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에는 다윗의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먼저, 다윗의 감사는 과거의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초라했든지 화려했든지 지난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돌이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난날 속에서 행복했던 일, 기뻤던 일들이 더 많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각자 뼈아픈 일들만 생각하고 원망과 불행했던 일들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가 감사로 여겨져야 성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참 기막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으로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골리앗과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사울로부터도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 기적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놓고 나서 감격의 감사노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구원하사 만국 백성 가운데서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감사할 과거를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분명히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 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다음 다윗은 현재의 은혜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현재를 감사합시다.”하면“나는 감사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볼멘소리를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업도 안 되고 직장도 없고 자식들도 잘 되는 일이 없는데 무슨 감사 할 마음이 있겠습니까? 감사에 극심한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내 생활을 가로막고 있어서 거저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요즘 성인병 때문에 많은 고생들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인병은 혈관이 상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통풍... 모두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병입니다. 혈관이 막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을 쇠퇴시하지 않게 탄력을 유지시키는 방법입니다. 근육에 탄력이 있으면 피의 흐름이 원활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뇌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뇌를 활성화시키려면 플러스 발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싸매고 걱정에 빠지면 뇌 속에 모르핀 분비가 중단됩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이 건강하고 정신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120-130세 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만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는 날까지 잘살다가 가는 게 중요하지요. 그런데 여러분, 영혼의 문제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생활은 일종의 동맥경화입니다. 감사가 막히면 신앙의 중병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감사가 생활화 되어야한다고 합니다.

어떤 부인이 일곱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갔습니다. 이웃집 부인이 아이에게 사과를 하나 주었는데 아이는 인사도 없이 얼른 받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다른 분이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지?”하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껍질을 벗겨주세요”라고 말하더랍니다.

타인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서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일곱 살 난 이 아이뿐이 아닙니다. 이 아이의 모습은 바로 어른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베풀어준 친절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침묵한 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돌아섭니다. 사과 껍질을 벗겨주지 않으면 사과를 준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오늘 현재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의 감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36절입니다.“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영원부터 영원까지”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 이상으로 앞으로도 베푸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앞날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장차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과 그 나라를 생각하는 생활입니다. 그것도 없이 살면 그것은 신앙도 아닙니다. 그래서<칼빈>은 임종시고통 속에서도“오늘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암송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세계는 위대한 것입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서울 신촌에 있는<세브란스병원>심장병동에 가면 무명의 詩가걸려있습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추수 감사주일을 맞으면서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과거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오직 감사가 있을 때만 아름다운 것입니다.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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