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6-7)

  • 잡초 잡초
  • 256
  • 0

첨부 1


1. 감사지수가 중요하다

  지난 주간에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와 대화를 잠시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냐고 물어보니 다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할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택시를 갖고 계시고, 게다가 직접 운전까지 하시니 보기에 참 좋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기사님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긋지긋합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왜 지긋지긋합니까? 요즘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홈플러스 같은데 일해도 몇 푼 못 받는데, 자기 택시를 갖고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는데 감사하지 않습니까?” “듣고보니 그렇네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 분은 남편과 별거 중이었습니다. 대학교 다니는 자녀가 둘이 있는데, 둘 키우느라 몹시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감사하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겠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감사하고, 자식이 있어서 감사하고, 개인택시를 갖고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이 분의 남편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그러니 직장도 없고,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남편 복이 지지리도 없다고 생각하니 불평뿐이었을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된 지자(知者)는 모든 교우에게 배우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强者)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富者)는 가진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남과 비교하여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 불평할 것 밖에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지능지수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20세기 말에 와서는 감성지수가 더 중요하다는 이론이 나왔습니다. 또, 21세기에는 사회성 지수(SQ)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인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감사지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깊이를 재는 가늠자입니다. 얼마나 감사를 많이 하느냐 하는 것이 그의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시100:4)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6-1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2. 감사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장애아를 둔 부모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까?
암 선고를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까?
이력서를 수십 군데 넣어도 취직이 되지 않아 낙망해있는 젊은이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까?
오랜 지병으로 투병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이 시간 진정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말이 쉽지 그게 그리 쉬운 일입니까?
이런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은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것이 상식입니다. 불평과 원망과 신세타령이 나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남의 일이라서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라고 쉽게 말하지, 자신이 당해보라지요.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역설(逆說)이 있습니다. 도무지 감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라” 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감사할 수 있다면 명령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3. 감사하면 은혜가 임한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밀레(J. Millet)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고 계시는 이 그림이 바로 '만종'입니다. 옛날 이발소에 가면 이 그림 하나쯤 걸려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이 그림은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만종>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농부가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는 아주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그림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이 그림은 그렇게 평화롭고 낭만적인 그림이 아닙니다. 이 그림에는 슬픈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유심히 보면, 망태기 안에 호미와 씨감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망태기 속에 씨감자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애지중지하던 사랑하는 아기의 시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고픈 시절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땅에 씨감자를 심으면서 겨울을 보냅니다. 봄이 되면 풍성한 결실을 맺어 배고픔을 달래주리라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가 봄이 오기도 전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만 것입니다. 농부 부부는 이런 슬픔 속에서 싸늘한 시체로 변한 자신의 아기를 땅에 묻기 전에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바로 [만종]이라는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그림이 안 팔리니 아기대신 다른 것을 그려 넣으면 좋겠다 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 충고를 밀레가 받아들여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 넣어 출품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이 그림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 담긴 세계적인 명작으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슬픔을 감사로 바꾸면, 은혜가 임합니다.
일본의 위대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감사는 은혜를 담는 그릇” 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감사하기로 결단하고 감사할 때, 그 마음 깊은 곳에서 평안이 찾아오고, 기쁨이 생기기 시작하고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감사의 용량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이 더욱 커집니다.

4. 예수님 때문에 감사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서는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감사드려야 할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主)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개인적인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 영원한 기쁨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걱정, 근심, 염려를 다 맡아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담당하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의 형벌인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순간, 우리 마음의 무거운 짐이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를 갖고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셨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만져주셨습니다. 위로해주셨습니다. 치료해주셨습니다.
몹쓸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주님께서 만져주심으로, 말씀하심으로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잃은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기쁨을 얻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불안이 사라지고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불평, 불만, 원망이 감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행동합니다. 예수님에게 인생의 뿌리를 내립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인생을 세워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더욱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병을 흔들면 물이 쏟아지고, 술병을 흔들면 술이 쏟아져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흔들면, 무엇이 쏟아져 나올까요? 예수님의 향기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감사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5.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데일 카네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감사할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책 읽는 시간, 맛있는 음식,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다정한 친구들.....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것은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사상이었다.”
(데일 카네기, <인생은 행동이라> 중에서)
그렇습니다. 매일 감사할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감사는 하나의 중요한 습관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함을 넘치게 하십시오.

헬렌켈러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녀는 보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했으며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내가 3일 동안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글을 써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보고,
저녁에는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강단에 장식된 꽃을 보고 과일을 봅니다. 동트는 아침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 노을을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헬렌켈러가 3일 동안만 눈을 뜨게 해 준다면 보고 싶다는
그 3가지의 소원이 우리에게는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감사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고… 건강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눈물 흘리며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감사함을 더욱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재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