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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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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감사는 우리의 삶을 축복되고 풍성하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우리의 삶을 치료해줍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되도록 하여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더욱 깊은 관계성을 가지게 하여 성숙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삶 속에 풍요함이 넘치게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 감사의 삶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감사를 빼앗길 때에 감사의 자리에 불평 원망이 대신하게 하여 우리의 인격과 삶을 파괴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들의 감사하지 못함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1)

  신학자 디히트리히 본 훼퍼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구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즐겁고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아닌가의 차이뿐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서는 감사의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1년 중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의 감사의 절기를 지켰습니다. 감사의 절기는 바로 감사의 삶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임을 확신하고 체험하게 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의 축복을 안겨주시는 날입니다. 감사의 축복을 깨닫게 하고 감사하게 하시어 더욱 크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과 은총 안에 거하도록 하시는 날입니다. 우리에게서 감사를 빼앗아간 사단을 향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감사한다고 고백하므로 그의 영향력을 물리치는 날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 까요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골3:17)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감사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며 부족함 없도록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을 감사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감사의 조건을 찾고 확인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말씀에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에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조건을 확인하는데서, 더욱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옛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편 100:3)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감사의 조건을 확인하는 데서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깊은 영적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히12:5-9)

  히브리서 저자는 그 고난, 혹은 징계의 배후에서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감사의 조건을 찾았기에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재무장관을 지낸 ‘마르티 바덴’은 당시 집권세력인 극보수파에 밀려 젊은 시절 무척이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가 한 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깨어보니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도둑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마르티는 화가 나서 어느 놈이 신발을 가져갔느냐면서 욕하며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다니...”라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날이었는데, 여관 주인은 창고에 버려두었던 헌 신발을 가지고 와 빌려주면서 함께 교회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주인을 따라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는 교회에 앉아 예배드리는 중 옆자리에 앉아있는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마르티는 자신의 부끄러웠습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겠구나. 그에 비하면 나는 신발만 잃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될 것을 괜스레 남을 욕하고 저주하며 하나님을 원망 하였구나”

  마르티는 감사의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데서 더욱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삶의 의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부터 마르티의 삶의 태도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확인하는 생활로 풍요한 인생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후에 그는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경제에 크게 봉사하며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찾지 못할 때 불평하게 되고 분노하게 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의 조건을 확인할 수 있을 때에 감사의 삶이 넘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고 감사하는 조건을 찾고 확신함으로 더욱 풍성한 감사의 삶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열 살이 되면 6000개의 낱말을 알게 되는데, 그 중에 부모를 기쁘게 하는 말은 ‘감사 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성인이 되면 25000단어를 알게 되는데 그중에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도 ‘감사 합니다’라는 말입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은 그 말의 뜻을 실현시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하느냐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는 말은 맛을 내는 언어를 말하는데 그것은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감사 속에 주어지는 풍요와 축복의 삶을 원하시면 ‘감사합니다.’ 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감사의 말을 하지 않도록 갖은 방법으로 우리를 주장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 합니다’ 고 말하심으로 이 사단의 주장을 물리쳐야 합니다.

  감사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생활은 더욱 큰 감사의 삶을 만들어 축복된 삶이 되게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주는 생활은 우리로 더욱 큰 것을 줄 수 있는 축복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도 주는 감사가 될 때에 더욱 큰 감사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의 영어단어는 ‘Thanksgiving Day 입니다. ‘감사를 주는 날’이란 뜻입니다.  많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를 이웃과 나눔으로 더욱 큰 감사의 풍요를 간직하는 축복의 날이 추수감사절인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죤 하가이’란 분은 성공적인 목회자가 되려고 하던 1950년에 사랑하던 아들이 갑자기 뇌성마비로 쓰러지는 불행을 경험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불행한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행한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으로 그는 감사가 넘치는 영적 풍요의 삶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로 인하여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저의 아들로 인하여 주께서는 나를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만드셨습니다.  병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이웃을 향해 내 아들처럼 느끼게 하시고, 사랑을 베풀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죤 하가이는 저주스러운 불행 중에도 감사의 조건을 확인하며 자신을 향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었고 불행한 아이들에게 감사를 나누어 주었기에 주는 자로 살면서 그곳에 더욱 큰 감사의 축복의 삶을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감사를 주는 삶을 더욱 크게 함으로 더욱 큰 감사의 삶을 만들어 가는 축복 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감사로 영광을 돌림으로 감사하는 풍요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2)고 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서 더욱 감사할 수 있기에 그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을 향하여 신실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더욱 큰 감사의 풍요함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라는 학과목은 결코 졸업할 수 없는 과목이며, 지금까지 인간으로 태어나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 과목입니다. 인간 역사는 오랜 역사의 기록이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받은 유산이다.  그러나 감사만이 이 유산에 대한 우리의 정신을 정상화한다.  감사를 표시하고 받는 것이 심리치료의 원칙적 기본이 된다.”

  우리는 어떤 감사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사도바울의 권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으로 더욱 풍요한 감사를 감사의 생활을 이루어 가는 축복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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