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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만해도 족하니라 (신 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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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전하는 사랑의 편지 50」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아들아! 너는 하루에 몇 번이나 웃는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니?
집에서도, 길에서도 곧잘 웃던 네가 언제부턴가 점점 굳어가고 무표정한 얼굴로 변하는 걸 보니 왠지 아빠의 마음이 안타깝구나. 슬프고 괴로울 때 웃는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거다. 하지만 너에게 부탁을 하고 싶구나. 어느 때건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거울 앞에서 억지로라도 크게 소리내어 웃어보아라. 거울 속 웃음이 기쁨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천사가 되어 너의 몸을 감쌀 것이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웃음의 실천방법을 알려주마.
  첫째, 눈을 뜨자마자 힘차게 웃어라. 하루가 즐겁게 시작될 것이다.
  둘째, 거울을 볼 때마다 웃어라.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다.
  셋째, 밥을 먹을 때마다 웃어라. 밥맛이 좋아질 것이다.
  넷째, 만나는 사람마다 웃어라. 친구가 많이 생길 것이다.
  다섯째, 집에 들어올 때마다 웃어라. 가족이 행복해할 것이다.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건강, 가족, 일, 공부, 신앙,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됩니다. 웃는 것은 자신과 남, 그리고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 성취욕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한 인간에게 성취욕을 제거해 버린다면 무기력한 생을 살다가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성취욕을 절제시키거나 억제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허무한 생을 살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 의욕과 목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도와 목표에 맞는 삶을 살면 반드시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순종하면 자다가도 떡을 먹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좋으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렇게도 소원했던 가나안을 눈앞에 둔 지금, 그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25절)을 밟지 못할 것임을 계시함으로 모세의 욕망과 성취욕을 억제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간곡히 원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헌신하며 애쓴 모세의 간구를 왜 거절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크게 은혜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허물이 있습니다

  본문 26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신 광야에서의 므리바 물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민20:10-13). 목마르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으나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감정과 방법대로 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로 일하던 모세가 백성의 허물을 온전히 처리하지 못함으로서 약속의 땅 문턱에서 모세의 평생 소원이 좌절되었습니다. 지도자의 책임과 짐이 큰 것입니다. 결국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이 좌절된 원초적인 까닭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크게 보는 마음과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허물은 크게 드러내어 말하지만 자신의 허물은 감추고 무감각한 경우도 많습니다.

  고난은 우리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교만이 깨어진다는 데 실패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 자체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팡세」에 보면 "하나님을 섬기라고 내게 건강을 주셨건만 나는 세상을 위하여 전부 다 써버렸습니다. 이제 나를 일깨워주시려고 나에게 병을 주셨습니다"라는 파스칼의 병상 고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병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더 핑크는 "고난은 나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무가치한 존재인가를 발견하게 만든다. 또한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분이신가를 깨닫게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고난은 내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 반대로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깨닫게 만든다는 것이 핑크의 고백입니다. 또 C. S. 루이스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고난은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작게 들리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들리게 한다. 고난을 통해서 저 멀리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 내 옆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들리게 된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서도 자신의 허물을 보고 엎드려 회개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의 범죄와 분냄과 불순종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받지 못한 하나 때문에 받은 아흔 아홉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만해도 족하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자신의 허물을 보고 회개하는 더 큰 축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 27절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보라 네가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사해 동북쪽 약 3km 지점에 아바림 산맥이 있는데, 그 산맥의 북쪽에 비느가 산이 있었고, 또한 비느가 산의 정상에 느보 봉우리가 있었습니다. 느보산 정상에 서면 요단 강과 가나안 서편 지역 뿐 아니라 저 멀리 헤르몬 산까지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그곳에 올라 약속의 땅 전역을 바라보았을 터인데 정작 출애굽 사역의 최대 일꾼이었던 모세 자신이 지척의 거리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운명 지워진 것은 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소원이 좌절된 이유는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간구에 대해 "그만해도 족하니라"라고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120년의 삶, 특별한 성장 과정과 미디안 광야의 목자 생활, 그리고 소명을 받아 종되었던 히브리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했던 그의 지금까지의 삶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던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받은 은혜를 보고 더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받은 은혜가 더 많고 더 큽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성취 욕구를 절제시키는 대신 과거의 은혜를 회상케 함으로써 자족할 수 있는 또 다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자족하고 감사하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해군장교 가와가미 기이치가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불평과 불만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그의 몸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후치다는 그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하루에 1만 번씩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감사의 마음이 당신의 병을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는 병석에서 매일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 개를 건네주었습니다. 가와가미 기이치는 손을 내밀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굳었던 몸이 풀리고 질병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과 저주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갑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은혜가 계속 생각납니다. 정비례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시를 없애 달라고 간구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시'가 있을 때 감사하면 은혜가 됩니다. '가시'를 축복의 도구와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과 믿음 생활하는 것과 예배드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결코 낙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낙심과 불평은 이미 은혜가 부족하거나 고갈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이때 더욱 기도하고 말씀 충만함으로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과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만족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그만해도 족하니라"의 더 큰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본문 28절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하고 그를 담대케 하며 그를 강경케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로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요단 동편 땅을 정복한 후 모세가 여호수아를 백성들의 새 지도자로 선정한 일에 대한 회고입니다. 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을 안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 행한 일인데 자신의 사후에 생기게 될 지도자의 공백과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후계자 쟁탈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새 지도자로 세움을 받는 여호수아에 대하여 모세는 신앙의 권면을 들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40년 간의 광야 여정 중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노익장의 신앙 간증과 격려는 여호수아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결코 실패나 중단이 없습니다. 모세의 일이 있고 여호수아의 일이 있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셨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종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청지기입니다.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찾아야 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담대케 하며 강경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여호와 신앙으로 무장케 하라는 뜻입니다. 후임자에게 부담이나 짐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참견하고 간섭하는 차원이 아닌 힘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마치 자신의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권력과 인정에 메마른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 여호수아에게 옮겨갔음을 인정하고 기뻐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높게 여기고 존중해야 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인물은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일은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도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전도하러 보내실 때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함께 일할 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았지만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홀로 생각하고, 홀로 걸었습니다. 예수님과 뜻을 같이 하지 못했고 마음을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보조를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사역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 일할 때보다 함께 일할 때 훨씬 큰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할 때 상승효과가 나타납니다. 스코틀랜드 산 클라이즈데일(Clydesdale) 말 조련사에 의하면, 보통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짐은 대략 7,000파운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두 마리가 동시에 함께 끌 때는 1만 4,000파운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팀을 구성하여 적절한 훈련을 시키면, 두 마리의 클라이즈데일은 2만 5,000파운드의 짐을 끌 수 있습니다. 이는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짐의 세 배가 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 즉 상승효과의 위력입니다. 상승효과는 둘 이상의 사람들이 협동하여 작업한 결과가 각 개인의 작업한 결과의 총합보다 더 큰 결과를 낳는 현상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시대와 연령과 환경을 초월하여 협력하여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분열과 싸움은 모두를 멸망케 하는 것입니다. 불행이고 불신앙이고 저주입니다. 모세가 되고 여호수아가 됩시다. 서로를 담대케 하고 강경케 합시다. 위로와 기쁨과 축복이 됩시다. 여기에 족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모두가 "더… 더"하면서 난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허물과 은혜와 여호수아를 보면서 만족하고 행복하게 믿고 섬기고 충성하는 이 시대의 모세와 여호수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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