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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집념의 사람 (히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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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의 사람(히브리서 3:12~14)
 
  사회학자 율리히 벡(Ulich Beak)은 현대사회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난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진단했습니다. 이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한 역기능적인 결과입니다. 모든 교통수단은 더 빨라지고 건물들은 더 높아지고 인구는 한 곳에 집중하여 과밀화 되어가는 관계로 인하여 그 만큼 대형사고와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사소하고 하찮은 사고도 대형참사로 연결되고 맙니다. 한가지를 예를 든다면 지난 번에 일어났던 대구지하철참사라든지, 서해안고속도로28중충돌 사고같은 것은 소달구지나 인력거나 자건거로서는 도저히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사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악한 의도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위험은 더 깊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사고 뒤에는 언제나 악한 마귀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현대들의 마음에 상실감, 미움, 원망, 복수심 이런 감정들을 부추기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적 사탄의 정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래학자들조차도 정치 경제적으로 5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잘 알지 못하겠다고들 합니다. 심지어는 1년 후의 상황도 어떻게 전개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들합니다. 그 만큼 이 시대는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위험한 시대이며 불확실한 시대이며 불확정의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글보벌 기업들은 어떤 때에도 어떤 일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누가 5년 후, 아니 1년 후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측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참 인재가 될 수가 있을 것입니까? 바로 영적으로 구비된 인재들입니다. 

  머리가 좋고,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도 인재이지만 집념의 지수가 높은 사람, 집념의 사람이야 말로 참되고 좋은 인재인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머리 좋은 사람, 감성이 좋은 사람을 뽑으신 것이 아니라 집념의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3년이 넘도록 예수님을 따라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변함없이 주의 일을 할 사람들을 제잘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당시는 가난한 시대였는데 3년씩이나 가장이 집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다닌다면 그 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족들의 비난, 사회적인 냉소 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까지 나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만큼 흔들릴 가능성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떤경우라도 잘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집념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지칠지라도 침체를 경함할지라도 끝까지 집념을 가지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좌절을 겪고 시련을 겪고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지속으로 한결같이 주님과 함께 달려갈 사람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2절에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14절에"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라" 그리하여야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하셨습니다. 

  낙적천석이란 한자어가 있습니다. 처마 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지속적으로 바위 위에 떨어지므로 마침내 바위을 뚫는다는 뜻일 겝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처마의 낙수는 그 힘이 지극히 미미하나 그 미미한 물방울이라도 한 자리에 몇 해 동안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다 보면 단단한 바위덩어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셔야 합니다. 너무 가볍게 처신하고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처음에 확신한 것을 잡아야 하고 그리고 그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를 키우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나무를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무는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습니다. 나무를 키우려면 심어놓은 자리에 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거름도 주고 필요를 채워줘야 합니다. 인내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인내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이, 더 좋은 일이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본문 말씀에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하셨습니다.

  조급하면 안 됩니다. 세월이 약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단번에 바다를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먼저 작은 고랑부터 만들고 냇물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작은 냇물이라고 해서 업신여기고 경멸하는 자는 바다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대해(大海)는 작은 물방울의 많은 모임이요 집합입니다. 태산은 작은 티끌의 합동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인생도 영원도 결국 순간의 연속이지 않습니까? 거목도 연약한 순의 자람의 결과인 것입니다. 거대한 탑도 벽돌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누가 충성된 일꾼이며 누가 최종적으로 영혼을 추수할 일군입니까? 누가 끝까지 동역할 일군입니까? 바로 집념의 사람들입니다. 변덕이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언제나 같은 말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같은 열매를 맺여가며 달려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의 몸된 이 교회가 나의 뼈를 묻을 곳, 나의 무덤, 나의 납골당이 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소속감이 확실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애착심과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를 통한 내 개인의 풍성한 삶과 지역복음화, 민족복음화 세와 열방 복음화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반드시 역사의 주역으로 쓰실 것입니다.

  한결같이 충성한 사람, 끝까지 자기관리를 잘한 사람에게는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 9:25~27, 눅 9:23)을 주십니다. 자기관리가 어떤 관리보다 사실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른아이가 참 많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관리가 잘 안됩니다. 부모나 선생님이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리더 지도자 일군 사명자는 무엇보다도 자기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인재는 바로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관리를 잘 하면 이 세상에 어떤 일일지라도 잘 대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결같을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참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기후나 날씨처럼 조석변하기 쉽습니다.
  하나님만이 동일하시며 신실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영으로 성령으로 지금 우리 안에 우리 겉에 거하십니다. 지금도 거하시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집념의 사람으로 변함없이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로 살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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