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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 (신 28: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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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라고 요약될 수 있는 신명기 28장은 아마도 성경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장(章)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순종은 축복이요, 불순종은 저주’라는 이 사상을 신명기 사관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서나 열왕기서, 역대기와 같은 이스라엘 역사는 대부분이 신명기 사관에 근거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 사관의 역사서들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왕도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라도 복을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으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자신들이 저주 받을 뿐만 아니라
나라까지도 저주 받게 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신명기 사관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원리요, 우주를 통치하시는 근본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명기 사관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신명기 사관은 이방인이 아니라 언약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당되는 공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순종하면 축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방인들, 혹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축복과 저주라는 말 자체가 해당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축복이나 저주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축복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빼앗으시면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택함 받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축복을 누릴 수 있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로 축복이나 저주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축복과 저주가 주로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용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그림자요, 그 그림자는 신약에서 영적인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신명기 28장의 물질적인 축복은 결국 축복의 실체인 신약의 영적, 내세적인 축복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가 물질에 대한 축복만 선포하면 기복주의라는 비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28장은 물질 축복을 넘어서 영적인 축복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로 축복과 저주에 관한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는 강도 높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주로 인해 멸망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술궂은 악의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에 가만히 지켜보는 부모가 있습니까? 부모라면 가지 말고 돌이키라고 강력하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이든 저주든 그 경고는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넷째로 축복과 저주는 내세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치의 증감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복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증가되는 것이요, 저주는 성도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감소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현세적 가치든, 내세적 가치든, 물질적 가치든, 영적인 가치든 간에 가치가 계속해서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런 가치들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명기 28장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순종(obedience)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종해야 축복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보다는 순종이 더 중요한 단어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순종을 ‘섬김’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사람은 섬기는 대상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순종과 섬김은 같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누군가를 섬기며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과 같은 자세로 아무도 섬기지 않고, 아무에게도 섬김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대상을 찾아서 섬길 때에 기쁨도 오고 축복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누군가 실직을 당했다는 것은 섬겨야 할 직장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실연을 당했다는 말은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섬겨야 할 상대방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실직이나 실연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길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만 봐도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아무도 안 섬겨. 내가 오늘 예배 나와서 앉아 있는 것은 내 아내 때문이지 하나님을 섬기려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야. 나는 오직 나만 섬기지”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되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오리겐과 펠라기우스,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처럼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유와 선택과 권리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날 자유를 가지고 출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 가운데 자유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섬기며 누군가의 뜻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1. 섬김의 두 가지 대상

이스라엘의 민족 역사는 좁은 의미로 개인의 역사를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타난 축복과 저주의 원리는 한 성도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을 때는 외적들이 침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는 외적들이 쳐들어와서 그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블레셋과 아람, 모압과 암몬, 앗수르와 바벨론,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하다가 이 사실을 깨닫고 다니엘서 9장을 통해 자신의 깨달은 바를 기록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우리 민족이 바벨론에 70년 동안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의미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이 외적의 종이 되어 외적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로구나.” 그래서 다니엘은 눈물로 회개하면서 다시 기도하면 돌이키시겠다고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돌이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길 수 있는 대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고, 둘째는 외적들입니다. 그런데 섬길 대상은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면 되는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외적들을 섬길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만 이스라엘도 지정학적인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언제든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지키는 능력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나 경제력, 정치력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능력은 오직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손(Invisible hand of God)'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있을 때는, 어떤 외적들도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설령 쳐들어왔다고 할지라도 패배하고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은 거두어지고 외적들이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을 노예 삼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1-2,4).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지키시면 아무리 군사력과 경제력이 약하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은 약하지 않습니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비교대상도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우리를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어주시고, 언제나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치를 자꾸 증가시켜 주십니다. 별로 존귀하지 않던 사람도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존귀해 집니다. 말단 사원이던 사람이 큰 기업의 사장이 됩니다. 수년 전에는 형편없던 사람이 성자와 같이 변합니다. 술 먹고 허랑방탕하게 생활하던 사람도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 됩니다. 재물과 명예와 건강의 가치가 더해집니다.

그러나 원수들은 어떻습니까? 언어도 다르고 용모도 흉악하며, 노인과 아이들도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잔인한 백성들입니다. 게다가 한 민족도 아니고 수많은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이 민족을 만족시켜주면 저 민족이 쳐들어오고, 저 민족을 기쁘게 하면 이 민족이 분노합니다.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가치를 빼앗고 착취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신앙, 재물 등의 가치를 빼앗기 때문에 외적을 섬기다보면 저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주신다는 하나님의 통치의 대원리입니다.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영육간의 축복을 주시고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요즘 북한이 핵을 가지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북한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미국도 김정일을 못 당해내는 것 같고, 유엔이 아무리 제재를 한다고 해도 북한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김정일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김정일을 잠깐만 휩쓸고 지나간다고 해도 김정일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켜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제대로 섬겨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이 개인에게든, 가족에게든, 교회에게든, 국가에게든 유일한 살 길이며 축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섬김의 두 가지 태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때도 그냥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본문 47절을 보면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떤 단어를 강조하여 읽느냐에 따라 이 말씀이 주는 의미의 뉘앙스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섬기지’를 강조하여 읽으면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할 때 48절의 고통이 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를 강조하여 읽으면 하나님을 섬겨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겨야 축복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고 약할 때에는 하나님을 만복의 근원으로 알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다가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모든 것이 풍족해지면 그 때 마음이 변질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섬겨도 예전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이 그저 의무적인 자세로 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일에 날씨가 좋으면 ‘날씨도 화창하고 놀러가기에 너무 좋은 날인데 오늘이 벌써 주일이군. 할 수 없이 교회에 가야겠네’라고 생각합니다. 또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목사님. 그건 목사님께 해당되는 이야기지요. 제가 지금 예배당에 앉아있는 것만 해도 충분하니 그런 신앙생활은 목사님께서 전공으로 하시지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면 하나님을 섬겨도 그 결과로 축복을 얻지 못하고 48절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십니다. 시편 100편 1-2절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는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또 느헤미야서 8장 10절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9장 7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헌금을 해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십일조 떼먹었다가는 열 배로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는 것이 낫겠지. 내긴 내되 다 낼 거 뭐 있나?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생활비의 십일조만 내지’하는 태도로 마지못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릴 때도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이 잘 되었는지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기쁨이나 즐거움이 전혀 없으면 그 사람 영혼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하여 웃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매일 나를 짓누르는 고통을 이기기 위한 무기로 나는 웃음을 선택했다. 내게 웃음이 없었다면 나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었을 것이다.” 노예 해방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정치를 이끌어 나가다 보니 링컨 대통령에게는 적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이 모든 사명을 다 이루고 역사의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항상 마음의 기쁨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억지로라도 웃어야 합니다.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어도 몸이 착각하여 엔도르핀을 많이 생성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웃음을 선택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지 않으면 48절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지 않으면 섬김의 대상이 바뀝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원수 대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섬김의 대상이 바뀌고 섬김의 태도에도 변화가 옵니다. 철 멍에를 목에 매고 원수가 끄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끌려가지 않으면 목이 부러질까봐, 고통이 올까봐 할 수 없이 짐승처럼 대우를 받으며 대적들을 섬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지금 47절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지난 20년 동안 축복을 많이 받아서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난할 때는 기뻐하였던 신앙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많은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 기쁨과 즐거움 대신 교만과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결국 우리 목에 철 멍에가 오게 될 것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으로 세계와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위정자들의 목에 철 멍에가 매어졌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기상황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는 48절의 상황에 완전히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47절에서 48절로 넘어가는 문지방에 와 있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여덟 살에 왕으로 즉위한 요시아 왕은 어린 나이에 왕에 등극했지만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마음에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신명기를 발견합니다. 요시야가 신명기를 읽으면서 왜 이 나라가 저주를 받고 고통이 임하게 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발견한 요시야 왕은 겸비하여 통곡하며 회개한 후에, 백성들을 모두 모아 언약을 갱신하고 유월절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렀습니다.
우리 한국의 성도들도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 듣고 은혜 받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도 신명기를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신명기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반성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한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다시 기쁨으로 섬기는 백성이 될 때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의 손이 이 나라를 지켜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앞에는 북한도, 핵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죄악이 문제일 뿐입니다.

3. 섬김의 두 가지 결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와 외적을 섬길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요, 자기 백성을 축복하셔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면 자꾸 가치를 증가시키십니다. 신명기 28장 2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복은 물질의 복, 현세의 복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복, 내세의 복도 포함하는 복입니다. 다시 말해 영육간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물론 영육간의 축복이 충돌될 때는 영적인 축복이 더 중요하지만,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질의 복, 현세의 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육간에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명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여호와를 기쁨으로 섬긴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모두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버린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다 멸망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 사상을 세상에 내 놓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온 백성이 모두 잘 살 길이라고 믿고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공산주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역사의 원동력을 물질이라고 보고 하나님을 부정하며 배척했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대로입니다. 공산주의를 택한 나라치고 부자로 잘 살거나 백성이 영육간에 풍족함을 누리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육신적으로도 망하고, 영적으로도 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거나, 섬긴다고 하면서도 외형과 형식으로 섬기는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결국 육적으로 가난해지고 영적으로 피폐하여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 론

우리는 누군가를 섬겨야 될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유일한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잘못된 대상을 섬기고 있는 분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섬김의 대상을 바꾸십시오.
어떤 목사님의 전도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무슨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저는 ○○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목사님은 다시 “그 종교를 믿어서 행복하고 잘되셨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잘 되긴 뭐가 잘 되요. 다 굶어죽게 생겼구먼!”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도전하였습니다. “아니, 굻어죽게 만든 그 종교를 왜 계속 믿고 있습니까? 바꾸세요. 예수님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시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자 그 분이 ‘바꾸세요’하는 말에 은혜를 받았는지 정말로 다음 주에 예수님을 믿고 축복된 삶을 누리게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잘못된 대상을 섬기는 분들은 오늘 당장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내일 당장 굶어 죽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와야 합니다. 얼굴에 기쁨을 띠고 마음에 즐거움을 택하십시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바른 섬김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른 태도로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육간에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영적인 복도 더하시고 육적인 복도 차고 넘치게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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