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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눅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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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눅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어떤 사람이 외국인들이 놀라는 우리 나라 말을 연구했답니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좀 죽여주세요.’ 이 말을 듣고 너무 놀란답니다. 미장원엘 갔더니 정신병원에서 온 사람들처럼 하나같이 ‘내 뒷머리 좀 제발 죽여주세요. 부탁이에요.’ ‘내 앞머리만큼은 제발 살려주세요.’ 하더랍니다. 

  또한 ‘애태웠다.’는 말, ‘애먹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개를 잡아다 먹는다는 얘기는 알고 있지만 설마 애까지 잡아먹을 줄이야 몰랐다는 거지요. 또한 식당에서 ‘얘야, 손님 받아라!’는 말. 식당에 갔더니 ‘손님 받아라!’ 하더랍니다. 그래서 아, 한국 음식점에서는 손님이 오면 입구에서 안아다가 음식점안으로 던져버리나 보다. 생각하고 조심했다고 합니다.

  문화가 다르면 이런 오해를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오신 여러분이 이런 오해가 없기를 바라고 모두 은혜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에게) ‘잘 오셨습니다. 축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당돌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눅 15:12). 

  이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까? 순간 아버지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당장 유산을 내놓으라니요. ‘유산(遺産)’이란 말 그대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물려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유산을 달라고 하니 마치 ‘아버지보고 빨리 죽으라.’고 하는 말과도 같은 거지요. 칼만 안 들었지, 아들이 아니라 강도나 다름없습니다.   

  허긴 요즘에도 부모 앞에서 유산문제를 가지고 다투는 자녀들이 있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저도 연로하신 어머니가 계신데, 통장이 몇 개 있는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어떤 통장이 있는지 한번도 보여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서운하게 생각하실 까봐요. 

  지난주간에 이런 신문 기사 보셨습니까? 의사 아들이 돈이 없어서 병원 개업을 못하자 어머니가 자기 소유의 건물에 개업을 하게 했습니다. 그후부터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를 방에 가둬 밖으로 못나가게 하고 밥도 혼자 먹게 하고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 소유의 건물을 몰래 자기명의로 이전시켰습니다. 한술 더 떠 자기 어머니가 치매증상이 있다며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시켰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생들이 이 소식을 듣고 나와 병원을 찾아가서 어머니를 퇴원시켰는데 치매증세나 정신병 증세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괘씸해서 빼앗긴 건물을 돌려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어떻든 부모의 재산을 탐하는 자는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우리 얘기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공기, 물, 햇빛, 자연, 식물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자녀들까지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그런데 내것인줄 알고 내 마음대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유산을 내놓으라는 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1.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타락한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때부터 이렇게 하나님을 반역을 했습니다.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무슨 말로 유혹한 줄 아십니까?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어 살라고 유혹했습니다. 이것이 사단의 독침(毒針)을 맞고 부터 인간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살게 된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없이 사는 ‘인간 중심적 삶’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기 위주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차단되면 당장 죽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 관계 속에서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기는 엄마의 품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을 때 행복한 겁니다. 새는 공기가 없으면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고자 하는 겁니다.

  사람이 다른 죄를 짓지 아니했어도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 자체가 죄(罪)입니다. 가령, 여러분의 자녀가 특별한 죄를 짓지 않았어도, 어느 날 슬그머니 집을 나가, 부모를 등지고 부모 없는 사람처럼 소식도 끊고 산다면 그것이 부모에게 죄짓는 것 아닙니까? 

  저도 한 주일에 1-2회씩 저의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드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가 전화 딱 끊고 어머니 없는 사람처럼 산다면 그보다 더 큰 불효(不孝)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할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등지고 살 때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아프셨습니다. 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아버지가 눈물 흘리며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옆에 분과) ‘우리 이제 하나님을 떠나지 맙시다.’ 

  결국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 먼 나라로 갔습니다. 아버지 그림자도 안보이고 연락도 할 수 없는 곳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이 아들은 3가지 주의로 살기로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중심주의, 둘째는 물질주의, 셋째는 쾌락주의입니다. 이것이 현대인이 사는 모습입니다. 이게 현대인의 우상이요, 하나님 대체세력입니다. 자아, 물질, 쾌락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고 사는 겁니다. 

  참 좋을 것 같지요. 이제 아버지 잔소리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거기다가 돈도 많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욕망대로 삽니다. 둘째 아들은 순식간에 세상의 온갖 유혹에 빠져들었습니다. 술, 마약, 도박, 섹스 등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여러분, 이 둘째 아들이 행복했을까요? 행복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이유를 파스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온 천하를 가지고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구덩이가 있는데, 이 욕망의 구덩이는 오직 예수로만 채워질 수 있다.’ 사실입니다.

  인간이 그런 물질적, 육체적인 것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면, 마릴린 먼로가 왜 자살을 했겠습니까? 무엇이 부족해서요? 만인의 연인이요, 뭇 남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미모의 여배우의 자살은 많은 것을 암시합니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나는 젊고 아름답다. 나는 돈도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았다. 수백 통의 팬레터도 매일 받는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데 웬일일까? 나는 너무나 공허하다.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결국 마릴린 먼로는 어느 날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을 닫는 해수욕장과 같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습니다. 영적 존재인 인간은 세상의 모든 행복의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낙을 누린 사람이 누굽니까?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그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나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전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날, 둘째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렇게 물처럼 흥청망청 쓰던 돈이 다 없어지고 빈 지갑 속에 동전 몇 개가 남은 겁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그 많던 돈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돈 냄새를 맡고 몰려왔던 친구들, 여자들은 썰물처럼 사라졌습니다. 세상 인심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이제 낯모르는 타국에서 빈털터리 노숙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그 나라에 흉년까지 겹쳤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2.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결국 파국과 불행을 맞게 된다는 겁니다.

  둘째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어느 집에 가서 빌붙어 살게 되었는데, 그 주인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돼지는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부정한 짐승입니다(레 11:7). 그래서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당시 돼지를 치는 일은 가장 천박한 노예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일을 하는 겁니다.

  그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며칠째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돼지가 먹는 곡식껍질인, 쥐엄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것마저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하기 그지없는 신세가 됐습니다. 

  여기 둘째 아들의 가련한 모습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겁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금수의 형상으로 추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돼지처럼 육신의 배만을 위하여 사는 어리석은 인생을 가리킵니다. 이제 희망(希望)이라고는 없고 오로지 절망(絶望)뿐입니다. 한숨과 탄식뿐입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성도여러분,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는 법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고통은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어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라는 사랑의 손짓입니다. 

  혹시라도 여기 계신 분 중에 이렇게 탄식하는 분이 계십니까? 무슨 어려움에 직면하여 있습니까? 잘 되던 일이 갑자기 꼬였습니까? 자식들이 속을 썩입니까? 직장에서 생각지 않은 일이 터졌습니까? 물질적으로 꽉 막혔습니까? 집안에 우환, 질고가 있습니까?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겁니다. 지금이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시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여러분, 군대에 나간 아들이 언제 부모생각이 날까요? 몸이 아플 때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신나게 놀다가 언제 갑자기 ‘엄마! 아빠!’ 부르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옵니까? 위험한 일을 당할 때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고 고난도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일이 잘 되고 술술 풀리고 잘먹고 잘 살 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으시고 어서 돌아오셔야 합니다.     

          #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이번에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보십시오.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는 둘째 아들에게 희망의 빛이 비쳐왔습니다. 며칠째 굶어 기진 맥진하여 있을 때, 갑자기 아버지 집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겁니다.

(눅 15: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러면서 튀어나온 말이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도 배부른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자기 집에 일하는 품꾼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에 아버지께 엄청난 죄(罪)를 짓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마음이 불현듯 듭니다. 아버지를 떠나고 나서 처음 이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참으로 복 받을 마음입니다. 둘 때 아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주 잘 하는 겁니다. 


3.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빈손으로 아버지께 돌아오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悔改)입니다. 회개란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빈손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겁니다. 자기 의나 공로가 전혀 없이 그야말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무언가를 들고 오려고 하면 안됩니다. 무슨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지금은 애기가 너무 어려서요’ ‘생활이 좀 안정되고 나서요.’ 안됩니다.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성경에는 없는 얘기지만 둘째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가 또 집을 떠났답니다. 아버지는 반대하셨지만 둘째아들은 돈을 벌어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5년 후 둘째아들은 크게 성공했고 많은 돈을 벌어서 아버지에게 드릴 좋은 선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한 달 전에 병(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둘째 아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아버지의 유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단다.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너였단다. 너와 함께 있는 것이었단다. 아들아, 네가 정말 보고 싶구나.’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렇게 보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다른 외모나 조건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가 다 준비해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그냥 아버지께로 오면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구원을 위하여 오직 예수 십자가만 의지하는 겁니다.

      #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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