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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자의 비밀(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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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자의 비밀(신33:29)

  행복의 원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많이 소유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존재인지 알면서 살아가는것일까요?
  영국 신경제재단에서 행복지수를조사한 결과 1등이 호주옆 섬나라 바누아투였습니다. 이 나라의 평균 수명은 68.6세,1인당 국민소득은 2944달러에 불과합니다. 2등은 콜롬비아, 3위는 코스타리카였습니다. 다른 연구조사에 의하면 방글라데쉬나 필리핀등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부 못사는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국민소득 만오천달러이며 경제적으로 하면 11~2위의 국가인 우리 한국사람들의 행복지수는 102위였고 영국은 108위, 프랑스는129위 미국은 150위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분명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가진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행복을 이야기할 때 소유의 많고 적음의 여부를 놓고 판단합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적게 가진 자보다 행복하리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갖는 것이 더 나은 인간으로 대접받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산의 증식이 행복을 이루는 척도이며 디딤돌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가질수록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가진 것으로 하면 지난 번 자살한 이건희 회장의 딸은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살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살했습니다. 그년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소유는 자신을 남과 구분하고 구별하는 행위지만 결코 소유가 행복을 보장하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소유하면 행복할 줄 알고 정말 미친듯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애인으로나 아내로 맞으면 행복할 줄 알고 찾고 찾아서 소유하려고 합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미인을 지키고 관리하는데는암청난 비용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잘 생긴 잠자를 관리는 하는 댓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쌓여져 가는 전자제품과 귀금속들, 커져가는 아파트 평수가 참된 행복 지속적인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살다보면 신비로움은 없어지고 그렇게 감격스럽던 것들이 무감각해지고 살다보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소유중심, 소유지향적인 사람에게는 늘 지금까지 가진 것을 잃을까 하는 불안, 더 얻기 위하여 집착하고 몰두하는 중독증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이 가지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소유하지 못함을 인해서, 그리고 자신보다 더 많은 소유를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기분 나쁘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남에 비해서 작게 보이고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행복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입니다. 행복의 가치를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으려는 욕망이 자신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남의 떡을 더 크게 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최선의 것으로 보고 감사하는 태도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마음껏 헤엄칠 때 행복하고,공중의 새는 하늘에서 큰 날개를 휘저을 때 행복하고,길짐승은 땅을 밟으면서 살아갈 때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존재 중심, 존재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존재적으로 행복자인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백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을 자신의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외부적인 정황들의 피해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갈등, 권모술수, 경쟁, 전쟁, 비인간화, 만인의 만에 의한 무한 투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나 모든 정황들이 풍부하면 그것들이 자유를 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것들에 의해 속박당하여 스스로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습관입니다. 불행도 습관입니다. 평소에 행복의 선택을 훈련함으로 나의 행복은 결정됩니다. 불행은 원치 않으면 불행한 생각을 거부해야 합니다. 불행한 생각을 선택해서 행복해 지는 법은 없습니다 . 

  그렇다고 무조건 가난하다고 행복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빵이 해결되지 않고 머리둘 곳이 해결되지 않을 만큼 빈곤한 삶이 얼마나 힘들고 맥빠지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할 수만 있으면 부자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더 풍성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행복자로서 굳게서는 것은 풍부한 물질적인 삶에 있지 않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을 누리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내 안에 흐를 때 나는 행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황홀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 염려에 매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유익하게 하시고 선하게 하시는 것을 확실히 믿기에 어떤 일을 만나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참으로 행복한 자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핍박시대에 핍박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참많았습니다. 그곳을 카타콤이라고 하는데 그 벽에 낙서들이 있는데 "빛을 발하라", "새처럼 날자" 등과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부정적이고 불행한말은 없고 이와 같이 밝은 말들로만 가득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교들은 복음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존재를 즐기고 누려야 합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음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습관화, 의식화, 체질화가 시켜야 합니다. 이런 삶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최선의 것으로 보고 감사하는 태도가 행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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