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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 옛날이여(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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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옛날이여
말라기 3:1-6

사람들은 누구나 옛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과 비교를 하지요.  특별히 옛날에 좋았던 때와 오늘날과 비교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지요.  옛날에는 어땠는데.  그래서 이선희라는 가수는 “아, 옛날이여”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래요.  과거에 누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참 좋았어요.  그럼 늘 그 사람이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그 누구를 다시 만나도 옛날에 아무개는 어땠는데 하면 지금 만나는 사람은 별볼일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지요.  그래 그러지요.  옛날이 좋았는데.  아 옛날이여.
그런데 사람은 늘 자기 중심적이어서 자기가 비교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내가 그 사람을 비교 하고 있다면, 그 사람도 나를 비교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요.  그 사람이 만난 최고의 사람과 나와 비교하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축구 감독은 오래 하질 못해요.  그래 외국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외국사람이 감독을 맡았어요.  그래 비교해 보니까 별볼일 없거든요.  그래 옛날에는 어땠는데.  아 옛날이여 노래를 하고 있어요.  옛날 아무개 감독은 좋았는데.  지금은 별볼일 없다는 거거든요. 
그럼 감독은 가만히 있느냐?  감독도 똑같아요.  옛날 네널란드 사람들은 좋았는데.  한국 사람들은 형편없어.  최악의 사람들이야.  그럴 수 있는 거지요.  결국 이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좋을 수는 없어요.  모두를 다 비참하게 만들 뿐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미 지나간 날은 다시 올 수 없습니다. 떠나간 임은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좋았던 행위와 좋았던 습관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교해서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어요.  물론 그 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해서 지금 옛날의 좋았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어요.  그 사람도 변했고 나도 변했으니까.  하여튼 과거와 비교해서 아 옛날이여만 노래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예요.  지금은 과거와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씀이예요.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외식이 진실을 가리고 있을 때, 말라기 선지자는 말씀으로 그들을 깨우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의식적이 되어버렸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사라졌습니다(말1:6).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며(말1:7),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주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토색한 물건,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죄를 저질렀습니다(말1:13). 이방인의 딸과 결혼하여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신앙인의 구별된 삶이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선지자 말라기는 외칩니다. 원래 그랬듯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백성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과거와 비교할 때 나의 모습은 변질되었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것 같고.  내 신앙이 이전같지 않고.  그래 과거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비교한다고 해서 나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거울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나의 모습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예요.  물론 나의 모습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거울 앞에 서 있는 것도 중요해요.  현재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모습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내 신앙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스스로 생각하고 점검하는 일이라는 말씀이지요. 
우리들의 신앙은 늘 스스로에 의해 점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지요. 

당시 이스라엘은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웠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전 다윗 왕의 영광이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던 메시야만 오시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영광은 없고, 갈수록 삶은 힘들어 갑니다.  그래 한 두 사람 신앙의 원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방 여인과 결혼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거지요.  하나님 우리는 기다릴대로 기다렸는데.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유다 백성들의 한 가지 불만이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다음에 유다 나라를 독립시키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이들은 나름대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고 스룹바벨의 성전은 완공했지만 기다리던 유다나 이스라엘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세계는 지금 급변하고 있는데 하나님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우리도 그러잖아요.  새롭게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어요.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무엇인가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삶이 조금이라도 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내가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확 열리는 미래가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지요.  그런데 여전히 똑같아요.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지요.

1. 하나님의 뜻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준비된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래 오늘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온다고 말씀합니다. 
1절 上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이 말씀에서 우리는 3가지 사항을 알 수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다.  그 사자는 하나님보다 먼저 온다.  그 사자는 하나님 오실 길을 예비하신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사자는 대사를 말씀합니다.  전령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일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오면 당장 그들이 원하는 유다 나라나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줄로 생각했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르겠다고 다짐하면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변할 줄로 생각했지요.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일 줄 알았지요. 
제가 위장이 좋질 않아서 3년 전에 국선도, 우리 전통 심신 수련법이라고 하는 국선도를 배운 적이 있어요.  그래 많이 좋아졌는데요.  제가 만나는 사람마다 국선도를 소개해서 어떤 사람이 국선도를 다닌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절 만나면 “목사님 제가 국선도를 하니까 지상에서 3Cm는 떨어져 다녀요.”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날아 다닌다는 거지요.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어요.  무엇을 하면 금방 어떻게 될 것으로 우리는 생각해요.  신앙 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방식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오시기 전에 사자가 먼저 와야 하는데, 아직 그 사자도 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사자가 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오시지 않아요.  대통령이 어디를 가도 먼저 가는 사람이 있어요.  먼저 가서 준비하고, 경호에 무슨 이상이 없나 살펴보는 사람이 있어요.  어디 놀러를 가도 선발대가 먼저 가요.  먼저 가서 준비하고 그러지요.  하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와요. 
유대 나라의 회복,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전에 되어야 할 일이 있다는 거예요.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사자의 역할이 뭐예요?  왕을 맞이 하기 위한 준비잖아요.  그렇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 이 말씀은 사실 사자로서 세례 요한을 말씀하고 있고, 이어서 오실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유대 나라의 회복이 더뎌져서 절망스러울 때 하나님의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가 가까웠다는 거예요.  이 때 해야 할 일은 준비라는 것이지요.  그냥 내 삶을 될대로 되라,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아직까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아직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았으니까, 아직 유대 나라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될대로 돼라.  이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준비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도 그래요.  우리 신앙 가운데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준비 된 사람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로마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듯이 하나님의 뜻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자고 일어 났더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더라가 아니예요.  오늘 조금, 내일 조금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요.  오늘은 아니더라더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거예요. 

2.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연단됩니다.
2절입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가장 중요한 것이 이거예요.  그가 임하실 때는 어느 누구도 그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멸망이나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를 멸망시키시기 위하여 임하시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는 노아의 홍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싹쓰리하실 정도로 무서운 분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하나의 다른 축이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면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예요.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라는 말씀이예요.
오늘 말씀도 그래요.  하나님의 뜻은 늘 멸망이나 싹쓰리에 있지 않아요.  늘 구원이고, 늘 사랑이고, 늘 소망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두 가지의 단어에 우리가 주목합니다.  하나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또 하나는 ‘표백하는 자의 잿물’이예요.  이것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보통 자연 가운데 금은 여러 가지 불순물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금을 얻으려면 그것을 불에 넣어 녹여야 하지요.  녹이더라도 약간 녹여서는 안되고 완전히 녹여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찌꺼기가 다 분리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순수한 금이 만들어 지는 거에요.
잿물도 그래요.  옷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지금이야 비누로 빨지만 옛날에는 다 잿물에 빨았지요.  심하면 양잿물에 넣어서 삶기도 했어요.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칠 때는 빨래도 그렇고 금도 그렇고 힘들어요.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순수한 금이 만들어지고, 깨끗한 빨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이게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라는 말씀이예요. 

내가 대충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예요.  대충 대충 산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표백이 되어야 내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요.  철저하게 녹아져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앞팍으로 삶으시고 드들기시고 열을 가하셔요.  그래서 우리 안에마지막 남은 거짓과 더러운 욕심을 다 토해내게 하셔요.  그래야 우리에게 기쁨과 새로운 소망을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바로 유다 왕국이 회복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요.  어영 부영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조금 해 드렸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단절할 것은 철저하게 단절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지요.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거예요.  일제 시대에 순사 노릇해서 잘 살았던 사람들이 일제가 망한 다음에도 잘 살았어요.  일본 군인 했던 사람이 대통령까지 했으니까 할말 다 했지요.  독립 운동 했던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래 자손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독립운동은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지요.  왜냐하면 너무 힘드니까.  일제 시대 경찰에게 쫓겨 힘들고, 해방되니 자기 부모를 잡아 고문하던 사람이 떵떵거리고 잘 살고 그러니 어느 누가 열 안받겠어요?  그러니 누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서 무엇 하려고 해요?
프랑스는 독일에 부역했던 사람은 다 찾아내서 죄를 물었어요.  그러니 이후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른 나라에 부역하려는 생각도 못할뿐더러 국민들의 생각에 민족을 위해 살아야 내 인생도 잘된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나라의 생각이 건전해 지는 거지요.  단절할 때는 깨끗하게 단절해야 바로 설 수 있어요.
우리의 죄악에 대해서도 그래요.  단절할 때는 철저하게, 깨끗하게 단절해야 한다는 말씀이예요.  그럴 때 우리 하나님의 영광에 내가 참여할 수 있어요.
이걸 위해 당하는 이스라엘의 어려움과 고통이라는 거지요.  이스라엘을 이렇게 살다가 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예요.  오늘 우리들이 당하는 어려움에는 이런 뜻이 있어요.  나를 이렇게 고통에 빠뜨려 고통 스럽게 죽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러기에 내가 철저하게 나를 죽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나를 의지하려는 마음을 뿌리에서부터 뽑아내려는 의지가 나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준비된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연단됩니다.  그러기에 절망하지 말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의 그 길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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