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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로 돌아오라(말 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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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게로 돌아오라
본문  말라기 3장 6절 - 12절

이제 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선거운동 연설을 듣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경제가 밑바닥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통령이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지요.  그래 이 대통령을 심판해야 한다고 해요.  지금 대통령이 잘못해서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이야기해요.  자기들이 국회의원 많이 당선되면 마치 한국 경제가 달라질 것처럼 이야기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정말 그런가?  과연 지금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어서, 그리고 지금 발언하고 있는 그 사람의 정당이 다수의석을 확보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인가?  지금 경제가 죽은 것은 대통령 때문이고, 그 사람의 정당이 소수여서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는 고질병에 걸린거예요.  미국 경제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것이 우리나라예요.  미국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 경기는 살아날 수 없어요. 
우리나라 IMF 때 말레이시아도 힘들었어요.  나라 망한다고 했지요.  우리나라와 비슷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IMF가 하라는대로 다 했어요.  그래서 금도 모아서 팔고, 기업도 다 팔아먹었지요.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IMF가 하라는대로 하지 않았어요.  빚 갚을 돈이 없다고 해서 당분간 빚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지요.  그래 우리는 말레이시아는 망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말레이시아가 망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힘들어요. 
우리나라 경제의 고질병이예요.  너무 외국에 의존적인 우리나라 경제예요.  그래서 힘들었어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어느 정당이 국회의원 많이 되든 상관없어요.  문제는 완전히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안돼요.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순간 조금 좋아질 수 있겠지요.  만은 결국 도로묵이 된다는 거예요. 

아는 목사님 딸이 아토피예요.  피부병인데 가려워서 저녁만 되면 정신이 없다고 해요.  긁느라고요.  그래 병원에 가 보고, 약을 발라보고 해도 고쳐지질 않아요.  어느 병원에 가든 고칠 수 없어요.  왜 그래요?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아토피는 고칠 수 없어요.  약을 바르면 그 순간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좀 지나면 도로묵이거든요.  그래 체질을 바꿔야 하는 거예요. 

말라기 선지자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흉년에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닥쳤습니다. 물은 메말라 갔고, 나무들도 말라 죽었습니다.  농사는 메뚜기나 병충해 때문에 엉망이 되었어요.  포도 농사도 맺히기는 많이 맺혔는데 중간에 다 떨어져 버려서 수확할 것은 없었어요.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예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 고통스러운 상황이예요.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했어요.  그리고 성벽을 다시 세웠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런 메시야 왕국만 임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기다리던 메시야 왕국은 오지 않고 어려움만 오는 거예요.  고통만 오는 거예요.  나는 할 것 다했고, 준비할 것 다 했는데 왜 기다리던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고 어려움만 생기냐는 거예요. 

7절 上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여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그 이유가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게로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지금 당하는 그 어려움, 고통,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던 그 고난의 원인이, 치료의 방법이 여기 있다는 거예요.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  즉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 지긋 지긋한 어려움은 끝장난다는 거지요. 

7절 下입니다.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뭐라고 했다고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말씀하신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몰랐어요.  이해할 수 없었지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돌아왔잖아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했잖아요.  그리고 성벽을 다시 세웠잖아요.  그리고 지금 메시야 왕국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에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말하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이미 돌아갔는데 또 돌아오라하시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더 바라시는 겁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는 이미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돌아오라”  몸이 와 있다고 다 돌아 온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뭐 좀 해 드렸다고 해서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바로 완수할 때 돌아온 것이라고 우리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땠나요?  겨우 자기 자신을 위한 형식적인 예배로 만족하고 있었어요.  그것도 눈이 멀고 다리를 저는 제물로 드리는 억지 제사였지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바라시는, 그리고 뜻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사명이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억지로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억지로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앙, 억지로 돌아선 신앙은 다시 얼마든지 하나님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님께도 돌아왔다면 무엇인가 달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냥 형식적으로 예배드리고, 형식적으로 재물을 드리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예요.  몸이 여기 있다고 해서 다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 길은 무엇인가?

8절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최소한의 것을 요구하십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다시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즉 이 말씀을 비추어서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십일조와 헌물을 내지 않고 있다는 말이예요.  바벨론에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리고 예배는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드리지 않고, 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드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있어요.  헌금은 뭐예요?  돈이예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까 모든 것은 돈으로, 상품으로 생각해요.  제가 가슴 아픈 것 가운데 하나는 먹을 것을 상품으로, 돈으로 여기는 세상이예요.  어제 대장금 총 정리하는 것을 보니까 상궁이 장금이에게 물을 달라 하지요.  그러자 장금이가 물어봅니다.  배는 아프지 않으신지, 화장실은 다녀 오셨는지,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다른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때 상궁이 하는 말이 “물을 음식으로 본다”는 말을 해요.  음식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상태나 상황에 맞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음식은 상품이예요.  나를 돈 벌게 해 주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싼 재료를 가지고 많이 팔아서 이윤을 남겨야 하지요.  그러다 보니까 넣지 말아야 할 것, 방부제 같은 것을 넣고 그래요.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그냥 돈이 보일 뿐이지요.  음식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헌금은 뭐예요?  예,  헌금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헌금은 우리 마음이어야 해요.
십일조 하라니까 고민해요.  내 십일조는 얼마일까?  연봉 얼마를 받는데 그 중 세금을 빼면 실제로 내가 받는 금액은 얼마인데.  세금을 내고 내가 실제로 받는 금액의 십분의 일을 내야 하나?  아니면 세금 내지 않는 내 연봉의 십분의 일을 내야 하나?

월급을 받은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었어요.  아버지가 월급받은 돈 가운데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바쳤어요.  물론 아이들에게 준 용돈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그럼 아이들이 용돈을 아버지에게 받았는데 아이들은 그 용돈에서 십분의 일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헌금은 뭐라고요?  네.  헌금은 마음입니다.  헌금은 계산이 아니예요.  헌금은 마음이예요. 
조금만 내야지, 아깝네 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으면 그 헌금의 액수와는 상관없이 그 헌금은 이미 아무 것도 아닌 것이예요.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거예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삽니다.”라는 신앙고백이,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 거예요.
감사헌금도 마찬가지예요.  얼마나 드려야 하나? 하면 벌써 잘못된거예요.  내가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면 되는 거예요.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우리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예요.  삶이 감사한 거지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도 내 뜻이 아니야.  내 아이를 세상에 오게 한 것도 내 뜻이 아니야.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도 내 뜻, 내 의지, 내 능력이 아니야.  정말 나는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어.  그래 감사한거야.  이 마음이 중요한 거예요.  이 마음이 담겨져 있을 때 이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헌금이예요.  교회에 나와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도 그래요.  어떤 이는 시계만 본다고 해요.  그래 서울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시간 1시간이 좀 넘으면 난리난다고 해요.  설교만 조금 길어지면 난리난다고 해요.  그래 바로 당회가 열려서 설교가 기네 어쩌네 그런다고 해요.  그 몇 분이 아깝고 빨리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왜 몇 십분씩 차를 타고 교회에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안되는 거예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어요.  드리기는 드려야 하겠는데.  애라 모르겠다.  그리고 병든 것 드리고.  예배를 드리기는 드려야 하겠는데 애라 모르겠다.  대충 와서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고.  그러니 몸은 여기에 와 있으나 몸은 하나님께로 돌아 앉아 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거야.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거야.  그래 우리 하나님께서 돌아 오라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들이 그렇지 않던가요?  몸은 신자야.  그래서 교회에 앉아 있고, 기도는 드리고, 입은 열어서 찬송은 드리고, 헌금을 드려.  그런데 마음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열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은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해요.

돌아 오기만 하면 돼요.  그럼 그 결과는 놀라운 거예요.
10절 下입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선지자 엘리야가 기근 중에 사르밧에 갑니다.  그 곳 성문에서 과부 한 사람을 만나요.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는데, 이 사람도 너무 배고파 먹을 것이 없는데 집에 있는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이야.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마지막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이제 죽으려고 할 때에요.  그리고 이 사정 이야기를 엘리야에게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 과부에게 떡을 하져오라 해요.  먼저 나에게 떡을 가져오고, 남을 것으로 너와 아들이 먹어라 그러지요.(왕상 1&:9-)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지막 떡을 먹고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먼저 달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였을 때 3년 반 동안 그 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래요.  이게 우리 하나님의 방식이예요.  이게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조금 희생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많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예요. 

오늘도 말씀하시잖아요.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
어떻게 하면?  십일조를 잘하면, 헌금을 잘하면.  돈을 하나님에게 잘 내면?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서 헌금하라 그러셔요?  헌금은 뭐라 그랬어요?  헌금은 마음이예요.  돈을 내는 형식을 빌어서 내가 이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 때문입니다.  내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얹혀 사는 인생입니다.  그 고백이 헌금에 담겨진다는 사실이예요.  이 고백과 이 마음이 담겨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십일조의 말씀은 단순히 ‘십일조를 내라 그러면 복을 부어 주겠다’는 말씀이 아니예요.  오늘 우리들이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내 잘난 맛에 사는 삶이 아니라, 내 것이라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내 능력과 내 의지와 내 뜻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살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때문에 내가 삽니다.  이 고백이 늘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조금 희생할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약간의 시간을 사용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이예요.

우리 인생에 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기를 원해요.  늘 감사가 넘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넘치고, 늘 하나님을 드러내 세우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부어 주겠다.” (정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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