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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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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키가 큰지 저는 아직도 자주 놀라게 됩니다.
  '중학생쯤은 되겠구나.'하고 짐작을 하면서 인사를 해보면 초등학생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옛날보다는 식생활이 좋아졌으니까 아이들 성장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빨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청소년들의 체질은 오히려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체격은 분명히 월등히 나아졌는데 잔병에 대한 저항력이라든지 체력 등은 옛날 사람들보다 더 약해진 것입니다.
  아마도 컴퓨터 앞에 많이 앉아있게 되는 생활습관이나 공해를 비롯한 환경적 요인들이 그런 결과를 낳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덩치는 작아도 소위 '작은 고추가 맵다.'는 기개를 발휘했었는데,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큰 고추가 싱겁다.'는 신조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과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겉모습이 크냐 작으냐 하는 것보다는 그 내면의 영적 체질이 강한가 약한가 하는 문제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라델비아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다른 초대교회들에 비추어 비교적 미약했던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는 매우 알차고 튼튼한 모습을 갖춘 교회로서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작은 교회였다는 사실은 본문 8절의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라는 말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교회가 교인 수자나 재정적 능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뜻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작은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였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빌라델비아교회는 비록 크기는 작았을지라도 그 체질적으로는 결코 약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판단하시기에는 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다른 다섯 교회들보다는 오히려 더 능력 있는 교회로 나타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강하고 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는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이 지상교회가 그 받은 복음전파의 사명과 전투에서 늘 그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강력한 교회가 될 수 있는 비결들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1. 복음진리를 지키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바로 인도하는 교회가 정말 힘 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주어진 주님의 첫 칭찬의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본문 7절과 8절에 "7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걸쳐 주님께서 '일곱 교회들' 앞으로 편지를 보내실 때 각 서두마다 그 교회에 형편에 따라, 혹은 지금 곧 주고자 하시는 말씀의 내용에 따라 편지의 발신자 되신 주님 자신을 각기 다른 표현으로 소개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나타나신 주님은 특히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구세주'의 모습이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란 바로 다윗성 즉 새 예루살렘의 열쇠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는 곧 천국문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해주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오직 우리 주님께서 그 "열쇠"를 가지시고 그야말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절대적인 주권을 발휘하고 계심은 두말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런 주님이 또한 "거룩"과 "진실"이라는 단어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주님의 하나님 되심 즉 '신성'과 또한 미쁘심 즉 '신실하신 성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구원이라는 사역은 절대적으로 하나님 편에 모든 주도권을 잡고 계실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벽하시고도 진실하신 성품을 따라 그 구원을 행해주시는 까닭에 사람은 아무 불만이나 의심 없이 따라갈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입니다.

  그처럼 인간 구원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바로 이 빌라델비아교회를 당신의 구원 사역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한 문으로 사용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빌라델비아교회의 크기는 작았을지 몰라도 그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아 천국으로 인도해 들이는 소중한 문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구령사역은 적어도 빌라델비아라는 지역 내에서는 오직 빌라델비아교회 안에서만 부단히 계속되어지고 있던 것으로서 세상의 다른 어떤 단체도 하지 못하던, 지극히 특권적인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는 그처럼 가장 귀한 일을 그 빌라델리바교회를 통하여 계속 역사하고 계셨습니까?
  왜냐하면 그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한" 교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 함은 바로 복음진리를 전해진 그대로 받고 이단의 도전으로부터 사수해내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는 말은 그 어떤 자리에서도, 특히 예수님 이름으로 인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리에서도 그 신앙을 변절치 않았다는 뜻입니다.
  비록 숫자는 적었을망정 빌라델비아교회 교인들은 이처럼 복음과 신앙에 투철한 진짜 신자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러니 그들을 통해 전도 받고 감화 받고 중생 받아 결국 구원의 문에 들어서게 되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약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그것은 교인 숫자가 적은 교회가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지킬 줄 모르는 교회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등록교인의 수는 많다 할지라도 그 신앙에 절개가 없고 파선하고 배반하는 일이 교인들 가운데 계속 생기는 교회가 정말로 약한 교회입니다.
  어느 교회 교인들을 주위의 불신자들이 볼 때 바로 그 교인들의 사는 모습 때문에 시험을 받아서 교회 한 번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시게 될 정도라면 그런 교회야말로 정말로 약한 교회인 것입니다.

  정말 힘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다른 것 모두 제쳐놓고 우선 지금 있는 교인들이 모두가 바른 복음, 바른 신앙생활 가운데 사는 성도가 되어야만 합니다.
  불신자를 전도하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는 이 일에 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교회가 될 때에는 비록 크기는 작다할지라도 이미 약한 교회는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천당구원의 복음이 없고 사람의 생명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참된 구령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회는 약한 교회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교회, 아니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은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으로써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힘' - 이것은 모든 구원의 권위와 능력을 한 손에 쥐고 계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지상교회에만 부여해주신 최고의 특권이며,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바로 이 구령의 힘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생명의 구원을 위해 사용되어질 수 있는 교회 - 우리 교회가 이처럼 진정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참된 복음으로써 전도하는 사명에 각자의 정성과 힘을 다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크고 작은 시험들을 말씀을 순종하여 인내함으로써 넉넉히 이겨내는 교회가 진짜 강한 교회입니다.

  이 역시 빌라델비아교회가 보여 준 또 하나의 강한 면모였습니다.
  본문 9절과 10절에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했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당시 초대교회들이 거의 모두가 겪고 있던 대표적인 시험을 당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로 인한 핍박이었습니다.
  이들은 기회만 있으면 기독교인들을 모함하여 특히 정치적으로 핍박을 당하게끔 사주하는 것을 일삼던, "거짓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원래 세상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며 살아야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으므로 사실 로마 정부로부터 특별히 탄압을 받을 만한 실제적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칭 유대인들은 정부의 관리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독교가 로마 정권에 큰 위협이 되는 반역적인 단체라고 모함함으로써, 순수하게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오도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비록 스스로는 유대인임을 내세웠지만 사실에 있어서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참된 유대인은 아니었으며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들을 가리켜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라고, 그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찔러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빌라델비아교회 교인들은 이들로 인한 시험을 잘 견디어내고 있었습니다.
  기독신자에 대한 온갖 중상모략을 다 받으면서도 이들은 성도로서의 사랑과 용서와 온유함을 지켜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힘은 그들이 바로 "인내의 말씀을 지킴"에서 공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라고, 신앙생활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가 꼭 필요하며, 누가복음 21장 19절에서는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라고, 말세에 성도와 교회가 환난을 당할 때에 특히 인내가 있어야만 최후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격려하셨습니다.
  바로 그런 '인내의 말씀'을 통한 격려가 이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에게는 실제 영적 전투에서 체험적인 승리를 거두게 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처럼 계속 인내로써 시험을 이기면 나중에는 기독신자를 적대하던 유대인들 중에서도 오히려 스스로 감동을 받고 회개하여 기독신자로 개종하게 될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주고 계십니다.
  그 유대인들 중에 "몇을 네게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겠다"는 말씀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런 핍박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앞에서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단지 '몇' 명뿐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 다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일부가 회심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장차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 때 기독신자들은 그들을 진정으로 이긴 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정말 어느 쪽을 "사랑하고 계시는 줄"을 그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작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그들에게는 또한 장차 닥칠 더 큰 시험도 극복할 수 있는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10절에 있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은 또한 시험을 이겨내도록 지켜주겠다는 뜻의 말씀으로 번역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험을 당하지 않고 통과하도록 해주시든지 아니면 당하더라도 넉넉히 승리하도록 도와주시든지 그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하여튼 확실한 것은, 이 빌라델비아교회 교인들은 장차 온 세상 사람에게 임할 큰 시험까지도 반드시 극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은 다 빠질 수밖에 없는 최악의 큰 시험이 닥친다 할지라도 그 시험조차도 빌라델비아교회 교인들만큼은 결코 넘어뜨릴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교회를 보고 작은 교회라고 부르거나 약한 교회라고 얕볼 수 있겠습니까?
  정말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작든지 크든지 시험을 잘 이겨내는 튼튼하고 강인한 영적 체력을 갖추고 있는 교회는 그야말로 '작은 고추가 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말씀' 중심이 되어서 평소부터 영적 '인내력'을 키워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감기 하나 이기지 못하고 콜록거리다 드러눕는 허약체질의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바로 이 간단한 원칙, 교회가 오직 말씀 중심으로만 서야 한다는 이 처방을 모르고서 소위 '민주적인 교회'를 세운답시고 온갖 사람의 목소리만 높이는 바람에,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교회가 되고 '많은 사공들이 산으로 배를 몰고 올라가는' 교회가 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외부의 큰 시험을 이기기는커녕 교회 안에서 온갖 시험거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일을 사서 저지르고 있으며, 잔병이 끊일 새 없는 약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고 있는 꼴인 것입니다.

  악이 비록 성하고 강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주장하시는 한에는 원래가 선이 악을 이기게 되어 있고 성도는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시험도 끝까지 선으로 대항하는 성도를 넘어뜨릴 만큼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 어떤 시험도 주님의 "인내의 말씀" 즉 '인내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끝까지 지키는 성도를 물고 늘어질 수 있을 만큼 질기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평소부터 오직 말씀중심으로 단련을 받아서 그 어떤 시험이 닥쳐도 오직 선과 인내로 이겨내는 각개병사들이 됨으로써, 이 교회를 더욱 강인한 공동체로 세워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중심의 삶에 뿌리박고 충성하는 성도들을 많이 배출해내는 교회야말로 진실로 강건한 교회입니다.

  그 충성심에 조금도 변함없을 확실한 일군을 생산하는 교회 - 이것이 또한 빌라델비아교회가 보유한 능력이었습니다.
  본문 11절로 12절에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임하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잡고 있으라는 명령이 빌라델비아교회 교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면류관의 상급을 받으려면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까지 변함없는 충성심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성도는 장차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될 것이라는 엄청난 축복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 등의 건축물에 기둥이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장차 임할 천국은 성전 자체가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에 기둥이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 일에 있어서 없어서는 아니 될 중요한 일군으로 사용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일에 충성하면 더 큰 일 위해 섬기는 것을 상급으로 받게 되는 원칙입니다(마 25:23).

  기둥이 건축물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특히 빌라델비아 시는 당시 잦은 지진이 일어났던 곳이었으므로 그 교인들은 이 "기둥"이란 표현에 담긴 무게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 나라 일에 중히 쓰임을 받는 일군이 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잘 지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단 기둥이 되면 그 건물에서 스스로 빠져 나갈려야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일단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선한 사업에 크게 쓰임 받는 신자가 되면 그 신앙도 결코 탈선할 수 없는 확고부동의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즉 바로 그 성도 위에 기록하겠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름을 쓰셨다는 말은 당신의 것으로 확인하셨다는 뜻입니다.
  결코 다른 데로 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의 확실한 소유물로 인치신 것입니다.
  교회의 기둥으로, 선한 구령 사업의 요긴한 일군으로 쓰이게 된 성도는 스스로도 빠져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코 놓치시지도 않는, 그야말로 그 현세와 내세가 확실히 보장된 든든한 인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멋진 '기둥'이 되어버린 성도들이 계속 교회를 받쳐나가고 있을 때 빌라델비아교회는 비록 작았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약한 교회는 될 수 없었으며 아무도 넘보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실로 강력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부실할 수밖에 없는 교회가 됩니까?
  그 교회를 통하여 신실하고 충성된 주의 일군이 배출되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누가 뭐래도 교회를 바로 지키고 충성으로 섬기는 자리에서는 요지부동할 줄 아는, 정말 교회를 사랑하며 거기에 내 생활과 신앙의 전부를 아예 뿌리박을 줄 아는 '기둥'들이 자리 잡지 못하는 교회야말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 참된 일군 없이 그저 허약한 교인 숫자만 많아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닥을 넓어지고 지붕도 확장되는데 그것들을 받쳐줄 기둥들이 함께 늘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되면 될수록 더 무너질 위험이 많아질 것은 상식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비록 숫자는 적다할지라도,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한 군데씩 떠받치는 기둥들이 되면 그 교회는 결코 쓰러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기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장로 권사 집사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나쁠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 직분에 충성하는 제대로 된 기둥들만 된다면야 전 교인들이 다 제직원이 된들 어떻겠습니까?
  오직 교회는 더욱 튼튼해질 뿐일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에서 쓰임을 받고 계십니까?
  가진 것을 굳게 잡고 계속 섬기시면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더 굵은 기둥, 더 튼튼한 기둥, 더 요긴한 기둥들이 되기를 서원하십니까?
  그런 과정에서 여러분 자신의 신앙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며 주님의 구원의 반열에서 결코 낙오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 한 사람부터가 이런 멋진 성전의 기둥이 되어 감으로써, 개인의 구원의 확신은 더욱 튼튼해지며 동시에 주님의 교회는 더욱 강해지는 일석이조의 역사를 함께 이루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님 여러분, 13절 말씀에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성령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교회를 키우시고 성도들을 교육시키시는 말씀은 얼마나 오묘합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작은 교회는 곧 약한 교회'라는 선입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저 '크게' 되는 것에만 몰두하고 '강하게' 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께서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을 정말 '귀 있는 자'답게 듣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은 오히려 작은 것을 귀히 여기시는 성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큰 헌금 내었던 부자가 아니라 적은 것이었지만 온 정성으로 바친 과부를 극찬하신 분이셨습니다.
  '서너 명'도 아니고 '두세 사람'만 모여 기도해도 당신께서는 그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자에게서 떨어져 나간 실로 무력한 양과 같은 성도들을 가리키시면서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슥 13:7)고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약속해주신 분이셨습니다.
  '작은 자들'이 이것을 모른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작다는 것을 이유로 삼고 작다는 것을 핑계로 삼아 스스로 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야말로 '작은 자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숫자가 작은 것이 약한 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통한 영혼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교회가 정말로 약한 교회입니다.
  예배당 없는 교회가 불안한 교회가 아니라 기초적인 시험조차 이기지 못하는 교회야말로 부평초처럼 약한 교회입니다.
  예산이 적은 교회가 힘없는 교회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일군 없는 교회가 정말 약한 교회인 것입니다.

  경향교회는 이미 양적으로는 '작은 교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대형 교회'도 아닙니다.
  하지만 경향교회는 33년 전에 을지로에서 80여 명의 교인들로 개척을 시작했던 '작은 교회' 시절부터도 이미 결코 '약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이 교회는 개혁주의 복음을 뚜렷이 선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부터 철저히 심어주었으며, 이것은 지금도 경향교회를 튼튼한 교회로 만들어주고 있는 제1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IMF라는 큰 국난이 이 나라를 흔들면서 모든 교회들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특히 예배당 건축 중에 있던 교회들이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도, 이 경향교회는 그 와중에 오히려 이 강서성전을 완공시켰으며 그 기간 동안 교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의 성도들이 평소에 얼마나 말씀으로 강인하게 잘 훈련되어 있었는지를 실로 멋있게 발휘했던 쾌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교회를 든든히 받쳐온 충성스럽기 짝이 없는 일군들에 대해서는 제가 무슨 사족을 달 필요가 있겠습니까?
  '직분을 맡아 섬기지 않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는 설 자리도 앉을 자리도 없다.'는 것을 아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래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감사함으로 섬기는' 숨은 기둥들이 이 경향의 구석구석을 떠받치고 있는 까닭에, 이 교회는 어느 한 곳도 넘어지려야 넘어질 수가 없었고 그렇게 교회의 기둥으로 아예 심겨져버린 성도들은 '다시는 세상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주님의 몸 되신 교회와 아예 일체가 되어 계속 튼튼하게만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적은 능력을 가졌을 때'부터 이처럼 큰 힘을 발휘하면서 더욱 강하게 자라온 이 경향교회는 앞으로도 꼭 같은 식으로 계속 성장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교회가 양적이 발전에 있어서 그 어떤 단계에 있든지 간에, 큰 교회라는 것이 자만이 되거나 아직은 미약하다는 것이 핑계거리가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복음에 전한 바 바른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진짜 신자, 어떤 시험이든지 선과 인내로써 넉넉히 이길 줄 아는 말씀의 용사,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박힌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는 일군 - 아무쪼록 우리 각자가 이런 '강건한 성도'가 됨으로써 이 경향제단을 더욱 '힘 있는 교회'로 진짜 '크고도 강력한 교회'로 함께 세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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