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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에 매여 사랑에 매여.... (출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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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혜에 매여 사랑에 매여....
본문 / 출 21:5-6

(출 21:5)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출 21: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김재진 씨가 쓴 “너를 만나고 싶다”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 뱉고는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다가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을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 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는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어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서 시인이 만나기 원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그런 사람” 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하나의 꿈 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그런 꿈들이 현실에서 자신에게 찾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람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났다가 헤어지고 또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욕심에 찬 만남은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와 허무와 눈물만을 남겨버리고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생기는 생채기가 두려워 사람들은 마음을 꼭꼭 닫아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홀로 쌓은 아성(我城) 에서 고독의 축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참으로 행복한 만남을 소개하는 한 음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이 시대에 이렇게 확실한 부르심이 어디 있겠습니까?

  쉼은 마음에 있습니다.
  짐이 무거워도 쉴 수 있습니다. 환경이 나빠도 편안할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쉼과 행복은 느끼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부요하고 행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은혜에 매여 사랑에 매여...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마음이 은헤에 매이고 사랑에 매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매인다는 것은 묶였다는 의미로 자유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내가 무엇에 매였다는 것은 그것에 묶여서 자유가 없는 상태 즉 종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매여도 무엇에 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단에게 매이면 사단의 종입니다. 돈에 매이면 수전노 즉 돈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나 세상 괘락에 매이면 썩어질 세상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에 매이고 사랑에 매여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 사회에 있었던 노예제도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적 규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종이 되는 경우는 사람이 너무 가난하여 경 빚을 지게 되고 그것을 갚지 못하여 채권자에게 의해 팔려가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돈에 팔려가기 때문에 돈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들 중에는 은혜에 매인 종들 사랑에 매인 종들이 있었습니다.
  똑 같은 종들이라도 빚에 팔려온 종들이 있었고 은헤에 매인 종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급기 21: 2절에 보면 “종을 사면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종을 사면 ..... 이라는 말은 경제적 이유로 채무를 값지하여 채권자에게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종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팔려간 종은 6년 동안 일하고 7년 되는 해에는 값없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 종의 빚이 얼마건 간에 해방 시켜야 했습니다. 이것은 한번 종으로 삼으면 죽을 때까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던 이방의 관습에 비하여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6년을 일하고 칠 년이 되어 섬기던 주인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고자 할 때 자유하는 종의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독신으로 종이 되었다가 독신으로 해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는 결혼한 자가 자기 아내와 함께 종이 되었다가 아내와 함께 자유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는 독신으로 종이 된 자가 종 된 기간에 주인의 선처로 주인의 여종을 아내로 주어 아들 딸 낳고 살다가 자유하는 기간이 되어 자유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아내는 여전히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자는 한번 종으로 팔려가면 그 집에서 평생 종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에게서 낳은 자녀들까지 주인의 종으로 남겨둔 채 원래 종으로 들어왔던 가장 혼자만이 자유의 몸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남종이 자유를 얻으려고 하면 아내와 자식들과 떨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혼자 자유를 얻느냐 아니면 그냥 종으로 주인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런 경우 종이 자유를 얻지 않고 주인집에서 영원히 종 되기를 원하면 그것을 허용도록 말씀하였습니다.
 
  은혜와 사랑에 매인 종

  출20:5-6절을 읽어봅시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했습니다.
  5절에서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 ” 라고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종이 자기 아내나 자녀를 사랑해서 종이 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자기를 부리는 상전을 사랑하여 영원한 종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 25:39-40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레 25:43절에서는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지켰고 그 결과 주종의 관계에 있어서도 신뢰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종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형제처럼 대우하고 사랑하였기에 그것을 아는 종들은 주인이 베푸는 사랑에 감격하여 그 주인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유하는 시기가 되었음에도 스스로 나는 평생 주인님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서약하고 평생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종은 주인에게 종의 서약을 하고 문설주에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서 영영히 그 상전의 종이 되었다는 표식을 했습니다. 

  사랑에 매인 종의 흔적

  귀고리는 자신이 종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특히 은혜에 매이고 사랑에 매인 종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종이라는 표식을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 것에 매여삽니까?
  히 2:15절의 말씀처럼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자” 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재물의 욕심에 매여 신앙을 팔고 자신의 영혼까지 마귀에게 팔아 넘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썩어질 부귀 영화에 매여 평생 그것들의 종이 되어 방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오직 우리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가 감격해서 기꺼이 평생 주님을 따르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옛날 히브리 노예들이 주인의 은혜에 매이고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에 매여 평생 종이 된다는 의미로 귀를 뚫어 귀고리를 달고 다닌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은혜에 매인 종이라는 흔적을 가져야 하고 사랑에 매인 종이라는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은헤와 사랑에 매인 종이었습니다.
  갈 6:17절에 보면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의 흔적이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는 고생을 의미합니다. 주를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자들에게 끌려가 수 없이 맞아 터지고 상한 상처의 흔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 때문에 받은 영광의 상처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자신이 죄인 괴수라고 고백한 그는 은혜받고 보니 구원받고 보니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은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격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얻어진 상처... 그것은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상처의 깊이 만큼 자신이 주님을 사랑했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① 사랑에 매인 종은 십자가를 기뻐합니다.
  ②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은혜에 매이고 사랑에 매인 종은 종으로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럽거나 고생스럽다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니까 스스로 아무런 댓가가 주어지지 않아도 기쁘게 헌신 봉사 했습니다.  스스로 7년 동안 사랑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창 29:18절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춘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봉사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하니 칠년을 봉사 즉 종으로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29:2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칠년이 몇 일 같이 흘렀습니다. 사랑에 매이고 은혜에 매이면 수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③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사랑에 매인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기꺼이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종으로서의 삶을 삽니다. 종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종의 삶은 오직 주인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랑에 매이고 은혜에 매인 종으로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땅에 기도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밖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이 이 땅에 천만을 넘습니다. 그러나 '고백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신자들' 역시 허다합니다. 그것은 사랑에 매인 종들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사랑에 매인 자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랑에 매이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합니다.,

  히브리 종들 가운데 주인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여 자신에게 보장된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귀를 뚫어 종신 종으로 살아가기는 종들이 있었는데 오늘날 기꺼이 주님의 종으로 살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누굽니까?
  주님의 사랑에 매인 종이 된 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 종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의지 내 뜻이 아닌 주인의 뜻을 세우고 주인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신앙인들과 종교인들의 죄라면 아마도 기도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 고백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일 것입니다. 우상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기꺼이 한알의 밀알처럼 썩어지거나 땅에 떨어져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내는 것으로 안식일을 다 지켰노라고 강변합니다. 안식의 참된 의미를 찾아서 실천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생각하기 보다 사랑에 매인 종으로서 은헤에 매인 종으로서 무엇을 할까를 언구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밀알 정신을 가지고 오직 우리의 주인이신 주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또 주고 살아갑니다. 즉 사랑에 매인 사람은 주님께 다 드리고도 더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잘해 놓고도 늘 부족함을 느끼며 자신을 치고 눈물을 흘리는 종들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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