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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서주일] 성경 : 하나님의 말씀 (시 1:1-6, 딤후 14-17, 마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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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6, 디모데후서14-17, 마태복음4:3-4 

1.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유한 농부가 추수를 마치고 하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한 손엔 성경책을, 다른 한손엔 20달러를 쥐고, “이제 수고의 代價로 너희들에게 보너스를 주려고 한다. 이 둘 중에 어떤 것을 갖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맨 먼저 마부가 말했습니다.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릅니다. 20달러를 받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또 정원사가 말했습니다. “가족이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돈이 필요합니다”. 요리사도 말했습니다. “저는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책 볼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하인들도 모두 돈을 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한 심부름꾼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새 옷을 사야겠으니 돈이 필요하겠구나”.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평소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수천 개의 금화보다 귀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저는 성경을 갖겠습니다”. 주인은 그 소년에게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소년은 성경책을 받자마자 너무 감격스러워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미리 성경책을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주인이 넣어둔 금화가 나왔습니다. 소년은 원하던 성경책도 손에 넣었고, 20달러의 몇 십 배가 넘는 금화도 얻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실업가로 나중에 미국의 체신부 장관까지 지낸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크는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통하여 성공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60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낡은 성경책 한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투자하는 것마다 성공하여 많은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저의 투자 중 가장 성공한 것은 내가 12살 때 2달러 50센트(우리 돈으로 3천원 미만) 주고 산 여기 이 빨간 가죽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성경책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낡은 성경책을 산 것이 제 일평생 한 투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뿐만 아니라 이 성경책과 그 말씀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새롭게 확인하고 다짐하기 위하여 지키는 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모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라든지 소중히 여기는 것,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그것은 무엇입니까? 혹 성경책이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해 보신 일은 없으십니까?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성경책만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신일은 있습니까?

6.25때 피난을 가면서 집을 짊어지고 갈 수도 없고, 그 소중하던 가재도구들을 하나도 가져갈 수 없는 그런 환경에서 그래도 소중하게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피난 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성경을 펼쳐서 읽었고, 교회를 찾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가 없는 곳에 가서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피난민들이 나중에 다 성공을 했습니다.

요새 교회에서 임직식을 할 때 임직자들이 임직을 기념하기 위해서 적지 않게 헌금을 하여 기념품을 마련합니다. 그러면 교회도 역시 임직자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런데 대체로 교회가 임직자들에게 주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고작 책 한권입니다. 그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경책을 기념품으로 주는데는 그 책의 가격으로서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새 임직자들에게 안겨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우리의 일반적인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책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 그러나 우리가 단지 성경책을 소유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일주일 내내 집안 어디 깨끗한 장소에 잘 모셔두었다가 주일날 교회 올 때 가지고 왔다가 본문 읽을 때 한번 펼쳐보고 다시 가지고 가서 모셔놓는다면 과연 그 성경책이 무슨 마술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주겠습니까?

그래서 저 유명한 유진 피터슨은 영성 시리즈 두 번째 책을 내어놓으면서 그 책 이름을 “이 책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계10:9에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책을 주면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그 책을 먹었더니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예레미야도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떡을 먹듯이, 즉 매일 밥을 먹고 살 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편 1편에도 보면 “복 있는 사람은.....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묵상한다는 말도 역시 소나 양과 같은 반추동물이 꼴을 먹고 나중에 되새김질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그리고 그 말씀을 되새김질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매일의 양식을 취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지 않고도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세상 것으로 배가 불러서 전혀 매력이 없거나, 아니면 병이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영적 건강 상태를 말씀에 비추어서 심각하게 체크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병이 들면 맨 먼저 나타나는 증세가 입맛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식사를 운반하는 카트가 뜨기만 해도 마치 입덧하듯 구역질이 나서 애를 먹었습니다. 신앙도 병이 들면 성경 읽는 것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아집니다. 설교가 싫어져서 설교자까지 미워집니다. 병들어 입맛 떨어진 사람이 괜히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짜증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시편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의 말씀이 내게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말씀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듯 한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억지로라도 먹으라”는 말입니다. 병든 사람은 겉으로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 같으면 억지로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라도 먹어야 병과 싸울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복이 되어집니다.

저는 늘 그런 말을 합니다. “밥이 보약이다. 못 먹으면 못살고, 안 먹으면 결국 죽는다”고. 그렇습니다. 말씀이 보약입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주의 말씀이 나를 고쳤나이다...주의 말씀이 나를 살렸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살고 건강하게 되기 위하여, 우리 교회가 살아나고 건강하게 되기 위하여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3. 어떤 신학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왜 성경을 읽습니까?” 그런데 학생들 가운데 아무도 이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그냥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읽었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교수님은 성경을 읽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일단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일단 태어난 우리가 자라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을 영적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자라나는 것은 단지 우리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성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게 됩니다. 지식적으로도 물론이지만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을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게 되며 결과적으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읽는 궁극적인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효과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지겠습니까?

(1) 지식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속언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만일 성경공부는 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경험에 치우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잘못된 데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일 그날의 식사를 하듯이 매일 분량을 정하고 그날의 말씀을 읽고, 그리고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신앙생활과 영성훈련을 위한 기본이 됩니다. 우리가 하루 여행을 해도 가야할 곳의 지리를 미리 익혀야 하듯이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영적 여행을 위해서 지도를 익히듯 성경을 통해 하나님 세계의 길을 익혀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의 식사를 할 때마다 내가 오늘 신령한 양식을 취했는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 체험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삶을 통해서 성경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매우 절친하게 지나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나를 속이고 배신했습니다. 얼마나 섭섭하고, 분하고, 아픈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후 창세기를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주신 인간이 사탄의 간단한 몇 마디에 홀딱 빠져서 하루아침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전에는 그 부분을 읽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신당한 경험 후 그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눈물 흘리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험으로 성경을 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왜 그토록 쉽게 원망하고 불평했는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건축하다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그것이 바로 우리 모습인 것을 알았습니다. 홍해를 건넜을 때,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감격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재개되고 입당했을 때, 헌당을 하게 되면서 그 감격이 바로 우리 것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경험을 통해서 읽을때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입니다. 여기 은혜가 있습니다.

(3) 영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영적 체험이 뒷받침 되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옛날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하늘이 열리면서 온갖 신비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스데반도 역시 긴 설교를 마치고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성경의 영적 이해는 우리가 노력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가능한 영역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의 원 저자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우리는 정말 성경의 신비한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보배,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이 성경이 오늘 내 손에 들어오기 까지 수고한 이들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고, 또 이 말씀을 열심히 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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