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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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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오늘을 강림절, 대강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주님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강림절 행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옛날 서구 문화에서는 강림절도 사순절처럼 잘 지켰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강림절을 뜻하는 촛불을 켜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화했습니다. 특별히 독일과 미국에서는 가정에서 강림절을 많이 지켰는데, 강림절 화환이라고 해서 집집마다 특별한 꽃을 장식합니다. 테이블 위에다 꽃을 만들어놓고 네 개의 초를 꽂아놓고 매주일 하나씩 불을 붙여서 크리스마스 때까지 네 개의 초를 밝혀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일은 아이들을 위해서 집안 빈 공간에다 구유를 만들어놓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기 예수님이 좋아할 만한 것을 너희들 아이디어로 장식해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거기에 말구유간과 같이 밀짚 같은 것을 까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싫어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고급 카페트천을 가져다 깔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유모차를 갖다 놓기도 하고, 맛있는 사탕, 과자, 장난감 등 별의별 것을 다 갖다놓고 12월 24일까지 계속 장식합니다. 그래서 12월 25일 새벽이 되면 큰 인형을 준비해서 아기 예수라고 중앙에 갖다 놓고 온 가족들이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 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곧 오소서 소망의 주 만백성 한맘 이루어 시기와 분쟁 없애고 참 평화 채워주소서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라 임마누엘” 아침 예배를 드림으로 대강절을 끝내고 크리스마스 행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미가 예언자의 예언서 중에서 메시야 탄생 장소의 예언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장 6절에 똑같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유대 땅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메시야 탄생의 징조인 하늘의 별을 따라 유대 나라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지리상으로 봐서 페르시아, 이란 땅에서 이 가나안 땅, 유대 땅까지 왔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수백 년 전부터 메시야 탄생을 예언 받고 산 민족이니까 더 잘 알 것이다. 그러면 메시야가 어디서 탄생할 것인가 그 장소를 알아보자.’ 가장 정확하게 보고를 받았을 사람이 헤롯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예수님 탄생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헤롯왕에게로 갔습니다. 헤롯왕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저 동방에서 하늘의 징조를 따라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수백 년 전부터 메시야 탄생을 예언 받은 백성이니까 메시야가 지금 어디서 태어나셨는지 장소를 가르쳐주십시오.” 이렇게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헤롯왕이 듣고 즉시 행동합니다. 자기도 모르기 때문에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동방에서 메시야 탄생 징조의 별을 보고 왔단다. 메시야가 나면 어디서 나겠느냐?” 그랬더니 서기관들을 얼마나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대답합니다. 그 대답하는 말이 오늘 말씀입니다. 예언서 미가 5장 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고 미가가 예언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가 나셨다면 틀림없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도 예수를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정확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그들의 예언대로 그들의 대답대로 오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BC 740~710년까지 활동한 선지자이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기록과는 약 70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700년 전에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옛날의 그 예언이 지금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 남쪽 800km 정도에 보잘것없는 산골짜기 마을이 있습니다. 그 산은 당시 예루살렘성에서 밀려난 소시민들이 양떼를 키우면서 사는 유목민 거주지로 형편없는 마을입니다. 편안한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을 만큼 돌멩이산, 비탈진 산골짜기 마을입니다. 그때나 이때나 그 사회에서 제일하기 싫어하는 일은 양떼를 키우는 유목민 생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3D 업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기 싫은 직업 세 가지를 일컫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직업도 유목민보다 낫습니다. 유목민은 마지막에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정착된 생활을 못하고 물과 풀을 찾아서 아열대 기후의 뜨거운 태양 볕을 피하여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로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학교도 안 보냅니다.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살다가 그것을 이어받아서 살게 되는 것이 유목민입니다. 지금도 베들레헴은 별 볼일 없어서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정부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너희들 그 쓸모없는 땅 가지려면 가져라!” 더 낮은 동네가 없을 만큼 볼 것 없는 동네를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을 놓고 사람들이 말다툼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 “이는 참 메시야다.” 어떤 사람은 “아니다.” “왜 아니냐?” “메시야라면 어떻게 이곳에서 탄생하느냐? 갈릴리에서 나올 리가 없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성경에 이르기를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틀림없다.” 막 말다툼이 계속되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목자의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으며 또 베들레헴은 말의 뜻이 ‘떡집’이라는 뜻이 있는데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강절, 강림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강림 계시가 나타난 종류를 생각해 보면서 이 강림절을 뜻 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요즘에 새벽기도에서는 히브리서 강해를 하는데 1장 1~2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인간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옛적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계시하시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특별 계시자로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림 사건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성경에 나타난 대로 우리가 구별해 보면 뜻있는 강림절이 되겠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강림 계시는 개인적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하나님이 아브라함 개인에게 나타나셔서 강림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한 사람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어떤 개인을 찾아 가시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다소 우리에게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때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는 스데반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순교자적 열정의 믿음을 가진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죽게 그냥 두지 마시고 하나님이 그를 두셔서 세계 선교사로 쓰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경 조직이 멀쩡한 사람을 마당 한복판에 세워놓고 주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돌멩이를 집어 던져 피투성이를 만들어 쓰러뜨려 죽이는 참혹한 현장에서도 스데반은 주님을 향하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는 현장에서 피 흘려 쓰러지게 하시고 그를 죽인 사람 사울을 붙드셔서 변화시켜 바울로 세계 선교를 성취하게 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의 차이입니다. 아브라함도 똑같습니다. 그 시절에도 이 가나안 땅에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성경에 다 나옵니다. 함의 후손인 가나안 족속들 12족속의 이름이 나옵니다. 시돈 족속, 헷 족속, 여브스 족속,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 브리스 족속, 하맛 족속, 스말 족속, 아르왓 족속, 신 족속, 알가 족속, 히위 족속 이렇게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미 살고 있습니다. 또 야벳 후손도 고멜 족속, 마고 족속, 마대 족속, 야완 족속, 두발 족속, 메섹 족속, 디라스 족속 이렇게 많은 족속들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이 그 멀고도 먼 갈대아 우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의 마을에서 우상 장사를 하는 데라의 집 아들 아브라함을 찾아가셨느냐 말입니다. 사실 다른 족속들에게 하나님이 강림하셨다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까지 그 먼 길을 올 필요도 없이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대로 쓰임을 받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개인적으로 강림하여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사역에 쓰신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은 한국인으로서 PCUSA 미국 장로교단에서 35년 동안 미국 목사들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아시아 선교 담당으로 큰일을 오랫동안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과 같이 중국 선교에 많은 사역을 같이 한 바가 있습니다. 함께 여행하면서 피차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주 특별하게 쓰신 분입니다. 그 목사님께 제가 물었습니다. “제 생각에 목사님은 이렇게 한국인으로서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PCUSA 교단에서 아시아 선교를 담당하는 그 중요한 직책에서 오랫동안 쓰임을 받고 계신데, 목사님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학교 졸업하시고 바로 미국 유학 오셔서 길이 잘 풀리신 것 같습니다. 저는 무척 고난의 여정을 살았습니다. 나는 개척교회만 열심히, 수없이 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그런 큰 자리를 35년 동안 변함없이,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으시고 하십니까? 정말 부럽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목사는 나와 이렇게 세계 선교에 동참하고 있으니까 부끄럽지만 내 과거를 밝히지요. 나는 청년시절까지 내 직업이 새우젓 장사였소. 옛날에는 마포에 새우젓 도매상이 있었소. 거기에서 새우젓 한통을 지게에 올려놓고 어디에 가서 팔았느냐면 주로 일산 지역에 가서 팔았습니다. 마포에서 새우젓 한통을 지게에 지고 일산까지 걸어가서 하루 종일 새우젓 사라고 소리치며 팔고 그 이튿날이면 또다시 그 장소에 가서 새우젓 한통을 사가지고 온 것을 생각해 보시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분은 지금도 한국에 오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시절이 하도 고난하고 내 인상이 하도 특이해서 지금도 일산 지역에 가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마포 쪽이나 일산 쪽은 쳐다보기도 싫소. 고달픈 나의 인생길에 어느 날 별안간 내 전환점이 생겼는데 하나님의 강림 사건이 나에게 생겼소. 그때부터 나는 전혀 내가 계획하지도 아니하고 전혀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35년 일을 했소.” 하나님의 계시 강림 사건은 개인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의해서 찾아가십니다. 강림절은 그러한 강림의 기대감을 가지고 맞이하는 절기입니다.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영적 강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강림 사건은 가문이라는 공동체에 찾아갑니다. 지금 이스라엘 나라의 국기를 보십시오. 삼각형 두개를 반대 방향으로 겹쳐놓아 별모양을 한 것입니다. 첫 번째 삼각형의 뜻은 하나님과 인간,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두 번째 삼각형의 뜻은 창조와 계시와 구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다윗의 방패’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다윗 가문에 강림하셔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된 가문이 되었습니다. 복음서에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다른 말! “다윗의 자손이여!” 이렇게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을 때도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개인에게 개시된 하나님의 강림 사건이 그 개인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강림의 역사가 가문으로 연결되어  대대로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타난 족보 이야기를 보면 무슨 뜻입니까? 아기 낳았다는 이야기를 계속 써놨습니다. 족보라는 것이 가문의 계보를 알리는 기록입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선택이 연결되고 또 연결되어서 마침내 그 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연결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 기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과 다윗 자손에게 임한 하나님의 강림 사건! 그 가문은 그렇게 큰 쓰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집안 과거 역사를 보면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를 다녀서 저의 가까운 가문에서는 제가 제일 먼저 예수 믿기 시작한 가문입니다. 불교,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 항상 기도 제목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교회 다니게 해주세요.” 그래서 새벽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 교회 다니는 것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는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제 속을 무지하게 썩이신 겁니다. 그 당시나 지금까지도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온 가족이 다 예수를 믿어 주일날이 되면 자녀들을 데리고 부모들이 함께 교회 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서글프고 ‘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저렇게 교회에 데리고 다니지 아니하시나?’ 주일날 예배드리고 가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야단맞을게 걱정이 되서 머릿속에서 잔머리가 굴려지는 겁니다. ‘뭐라고 거짓말을 해야 속아 넘어가실까?’ 걱정이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교회에 갔다가 재미있게 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저는 지금까지 그런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제 친구들 가운데는 4대째 목사가 된 친구도 있고, 집안의 5형제가 다 목사가 된 그런 친구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제 친구 한 사람은 4대째 목사가 되었는데 설교 준비를 할 때 은퇴하신 아버지 목사님이 옆에 계십니다. 그런데 설교 준비하다가 성경 구절 하나가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러면 성경을 찾아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그럴 필요가 없이 아버지께 물어보면 됩니다. “아버지! 성경의 이런 말씀이 어디 있죠?” 그러면 그 아버지가 “허허, 이거 목사님께서 그 중요한 것도 기억 못하시니…. 어디어디를 찾아봐라.” 그러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제가 물어볼 수가 있어야지 말입니다. 이런 친구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집사님인데 사회적으로 교육계에서 큰 인물이십니다. 중고등학교 선생을 30년 이상 하시고 덕망 높으신 어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목사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는데 아들이 저희 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서 “어르신, 먼저 식사 하십시오. 저희들이 뒤따라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펄쩍 뛰시면서 자기 아들을 보고 하는 말씀이 “오늘 강사 목사님이 계신데 내가 강사 목사님보다 먼저 먹으면 안 되죠.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강사 목사님 먼저 드십시오.” 자기 아들을 절대 앞세웁니다. 그리고 이 어른은 목사 아들에게 반말을 안 쓰고 항상 존칭을 하셨습니다. 다른 아버지 같으면 “야! 이리와라! 얘, 쟤, 김 목사 너 뭐하냐?” 그럴 텐데 존칭을 씁니다. “목사님, 이렇게 하시는 게 좋을 텐데….” 항상 아들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저희들이 “어휴, 어르신! 너무 그러시면 저희들이 더 불편합니다. 어서 드십시오.” “허허, 목사님들이 교육을 받으셨을 텐데….” 이런 가문 얼마나 훌륭합니까? 저는 그렇게 웃어른들을 모시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부럽고 ‘어휴,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계시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저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교회로 인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 온갖 속을 다 썩고 그랬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조사해서 발표했습니다. 에드워드 조나단 가문 5대가 내려가서 869명 자손이 번성했는데 그 가문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셨는가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 가문은 주일학교 선생만 186명 나왔습니다. 목회자와 선교사가 116명 나왔습니다. 문필 작가가 75명, 발명가가 21명, 사장이 73명, 대학 교수가 12명인데 그 중에 총장 4명이고, 상원의원이 2명입니다. “보라! 믿음의 가정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라.” 자신한테 달렸습니다. 여러분 가문의 계보가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지는 여러분 자신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맥슨 존스의 가문을 반대로 조사했습니다. 그 가문은 어떻게 되었느냐? 이혼한 사람들뿐입니다. 가정을 지킨 사람들이 없습니다. 마약중독자, 창녀, 전과자, 집 없는 사람들로 말할 수 없는 불행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호하는데 국가 경비가 얼마가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가 가문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강림 사건은 개인을 찾아가지만 가문도 찾아가십니다. 쓰임 받는 개인, 쓰임 받는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이왕 그런 가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갈보리교회 현재 권사님 중에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 이인하 권사님의 가문을 제가 조사했습니다. 현재 83세이신데 건강하시고 교회 잘 나오고 계십니다. 자손이 42명으로 번성했는데 100퍼센트 기독교인입니다. 권사, 집사, 장로 14명, 주일학교 교사 2명, 성가대원 5명, 주일학생 21명, 생업은 다 자영업이십니다. 권사님도 제가 보기에 돈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강림은 가문을 찾아갑니다. 내 가문이, 내 후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는 나한테 달려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 세상의 역사가 모두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이 큰 축복도 간수하지 못하고 엉터리같이 모두 쪼개버리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강림 역사는 민족에게 나타납니다. 처음에 유대 민족에게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특정한 민족을 선택하시고 강림하셔서 그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게 모든 것을 주시며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우리 신학에서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계약 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계약 종교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계약 관계에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희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성경은 계약 문서입니다. 이 계약을 잘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평안히 살 것이며 먹고 배부를 것이며 내가 재앙과 원수를 막아줄 것이며 땅을 기업으로 줄 것이며 아침 해와 같이 될 것이며 머리가 되게 할 것이며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줄 것이며” 그런데 반드시 하나님의 조건이 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여러분, 오늘 예배드리러 이렇게 교회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놀러 오신 겁니까? 계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행복에 필요한 것을 다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엿새 동안 내 행복에 필요한대로 시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영화 구경 갔다고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십니까? 친구들하고 밤새도록 논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네가 결정해라! 여행을 가든 무엇을 하든 내 마음대로 써라!” 결정 권한이 나한테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맘대로, 필요한대로 쓰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는 내거야! 안식일은 나한테 와서 예배드려!” 이게 계약입니다. 계약 종교입니다. 오늘도 십일조 내시려고 준비해 오신 교우님들이 30퍼센트 정도 되실 겁니다. 피땀 흘려 돈 벌어서 왜 교회에다 자꾸 내십니까? 그것도 계약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 사용의 권한 내게 있습니다. 맛있는 거 사먹는다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얼마든지 사먹어도 됩니다. 집을 사도되고 또 사도됩니다. 땅 사도됩니다. 다이아몬드 산다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좋은 집 사고 다이아몬드 사고 모두 네 마음대로 해라!” 건전한 소비와 지출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내꺼다. 십일조는 도로 가져와야 한다.” 이게 계약입니다. 하나님의 강림 백성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때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도둑 개념입니다. “너희가 왜 내 것을 도둑질 하느냐? 다 주었잖느냐? 그런데 그 하나의 계약을 잘 지키면 다른 것이 풍성하여질 것이다. 그런데 왜 안 지키느냐?” 만약 어느 민족이 하나님의 계시와 계약을 잘 지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번성케 하시고 그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요 인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영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21세기에는 대한민국이 택한 백성이 될 것이다. 이유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20년 정도만 지나가면 세계 선교는 미국보다 한국이 앞설 것이다” 19~20세기에는 미국이 그 역할을 해서 택한 백성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한국의 선교 열정이 미국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민족을 붙잡고 모든 것을 힘 있게 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손길을 영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깜깜한 사람은 아무것도 못 봅니다. 쓸데없는 일만 하게 됩니다.

12월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달입니다. 하나님의 강림의 역사는 구약 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개인에게 강림하시고 가문에게 나타나시고 민족에게 역사하십니다. 때로는 크게 역사하시고 때로는 작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인간됨의 최대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내 가문이, 우리 자손들이 쓰임 받고, 우리 민족이 쓰임 받고, 우리 교회가 쓰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유명한 그림하나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무엘은 최고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어느 날 민족을 이끌어나갈 왕을 구해야 되겠는데 다윗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은 유목민 생활을 해서 들판에서 새까맣게 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잘 봤습니다. “너 이리 와라!” 그래서 그 그림이 다윗이 목동 복장을 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사무엘이 한 손은 그의 머리 위에, 한 손은 하늘을 향하여 축복 기도를 합니다. 사무엘 16장에 무슨 말씀이 나와 있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 되니라.” 사무엘의 축복기도를 받은 후 목동 소년 다윗의 가문은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었고 그 가문은 변했습니다. 앞으로 성탄절까지 강림절 절기입니다. 여호와의 신의 강림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갈보리 교회에, 나가서 이 민족 가운데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강림절은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주님의 영적 강림이 내게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조용히 묵상하면서 기도하며 기다리게 하시고 우리 모든 성도 자신과 그 가문, 민족 전체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아버지의 사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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