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요 1:14, 빌 2:6-8)

  • 잡초 잡초
  • 306
  • 0

첨부 1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창1:28).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구주로 주셨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그리고 가장 귀한 것을 우리들에게 ‘주신’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는’ 것보다 더 귀하고 더 진하고 더 신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되는’ 사랑입니다. 가장 귀하고 가장 진하고 가장 신비한 사랑은 ‘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아무나 하는 사랑은 아닙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되는’ 사랑을 상상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성 프랜시스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사람은 ‘되는’ 사랑을 소원하며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나환자들을 사랑한 나머지 나환자가 되고 싶어한 사랑이 바로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이 지녔던 ‘되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되는’ 사랑으로 나타난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깊이 알았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 사건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은 인간들은 물론 천사들까지도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신비한 사랑이고 극치의 사랑입니다. 이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시므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임마누엘이란 이름 속에 하나님이 숨어있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사9:6).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아기 예수님을 가리켜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라고도 불렀습니다. 아기 예수님 속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숨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실 때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족보를 따라서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밀양 박씨로 안동 권씨로 김해 김씨로 인간의 족보를 따라서 태어난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의 족보를 따라서 태어나셨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족보를 길게 나열할 후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1:16).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소급해서 올라간 후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3:38).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의 아들로, 아기 예수로 태어나셨습니다. 구유에 알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신비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의 얼굴 광채가 세상 빛이 되셨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물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은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오직 동방 박사 세 사람들만 그 사실을 알았고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만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직 마리아와 요셉만 그 사실을 알았고 시므온과 안나만이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고 기절할 일이고 감격할 일이고 엎드려 감사할 일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사시므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잠깐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33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되는 것이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존 린튼 박사는 한국 사람들을 사랑해서 한국에서 4대째로 태어나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존 린튼 박사는 한국 사람들보다도 더 분명한 한국 사람이 되었고 전라도 사람들보다 더 분명한 전라도 사람이 되었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이민 가는 것을 좋아하고 사모하지만 존 린튼 박사는 자기더러 미국에 가서 살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시고 사람들과 함께 울면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마르다 마리야와 함께 우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가난하게 사셨고 사람들처럼 피난살이도 했습니다. 인간의 배고픔과 인간의 아픔과 인간의 슬픔과 인간의 고통을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사시므로 진정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엄청난 사랑의 사건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고 기절할 일이고 감격할 일이고 엎드려 감사할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죽으시므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은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 그러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본질상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사람처럼 죽으셨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사도 요한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사람처럼 죽으시는 모습을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4).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님이 흘리신 피를 가리켜 ‘하나님의 피’ 라고 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극치입니다. 우리들의 저주 받은 운명을 100% 짊어지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극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람으로 사셨고 사람으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극치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고 기절할 일이고 감격할 일이고 엎드려 감사할 일입니다. 지극한 사랑은 대신 죽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저주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우연히 대신 죽은 어느 어머니에 대한 감동적인 글을 읽었는데 그 글을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글을 두 번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이 수북이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눈이 수북이 쌓이도록 내린 어느 겨울날, 강원도 깊은 골짜기를 두 사람이 찾았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었고, 젊은 청년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눈 속을 빠져나가며 한참 골짜기를 더듬어 들어간 두 사람이 마침내 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이곳이 네 어머니가 묻힌 곳이란다’ 나이 많은 미국인이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한 미국 병사가 강원도 깊은 골짜기로 후퇴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아이 울음 소리였습니다. 울음 소리를 따라가 봤더니 소리는 눈 구덩이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눈에서 꺼내기 위해 눈을 치우던 미국 병사는 소스라쳐 놀라고 말았습니다. 흰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어머니가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던 것입니다. 피난을 가던 어머니가 깊은 골짜기에 갇히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아이를 감싸곤 허리를 꾸부려 아이를 끌어 않은 채 얼어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미군 병사는 언 땅을 파 어머니를 묻고 어머니 품에서 울어대던 갓난아이를 데리고가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자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하고, 그때 언 땅에 묻었던 청년의 어머니 산소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눈이 수북이 쌓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무릎 아래 눈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만에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청년은 무덤 위에 쌓인 눈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모두 치웠습니다. 그런 뒤 청년은 자기가 벗은 옷으로 무덤을 덮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듯 청년은 어머니의 무덤을 모두 자기 옷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곤 ‘어머니, 그 날 얼마나 추우셨어요.!’ 무덤 위에 쓰러져 한없이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대신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추운 겨울 날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서 통곡하여 울었고 1700여 년이 지난 후 아이삭 왔츠는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라는 찬송시를 써서 부르며 울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고 사람으로 사셨고 사람으로 죽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서 알몸으로 죽으셨습니다. 이 사랑에 감복하여 울지 않은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을 체 받은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은 그 사랑을 몸에 지니고 그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되는' 삶을 살고자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고전9:19-22).

  진정한 사랑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다른 종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경상도 사람이었던 손양원 목사님이 전라도에 가서 전라도 사람으로 살다가 전라도 사람으로 죽었습니다. 경상도 사람이었던 주기철 목사님이 평안도에 가서 평안도 사람으로 살다가 평안도 사람으로 죽었습니다. 평안도 사람이었던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도와 전라도에 가서 제주도와 전라도 사람으로 살다가 제주도와 전라도 사람으로 죽었습니다. 경상도 사람이 경상도 사람임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임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자기의 지방색과 자기의 기질을 끝까지 고집하며 지키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이방 사람들입니다. 성탄의 달 12월을 맞으면서 ‘주는’ 사랑과 함께 ‘되는’ 사랑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 몸에 조금씩이라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을 조금씩이라도 몸으로 실천할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심판을 이기는 길이고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고 행복으로 다가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정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몸에 조금씩이라도 채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