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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름 위를 바라봅니다 (마 26:47-54,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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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첫 주일입니다. 금년이 다 끝나는 또한 내년을 바라보는 한 달을 남겨두고 지금까지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금년을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저와 우리 온 교회와 이 민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무엇보다도 대선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일에 온 국민이 마음이 모아지고 큰 기대를 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염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당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본인들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뽑아야 합니까? 어떤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어떤 지도자가 나올지라도 이 민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사람에게 기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간의 만남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겠습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할 사람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만나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위하여 좋은 사람을 보내어 주시도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임하여 이 나라의 길이 잘 열리도록, 우리는 기도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의 문제, 국가의 문제는 어떤 변화나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것 ‘이거 다 고쳐야 된다. 이거 다 바꾸어야 된다.’라는 논리, ‘이 모두가 다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으로는 인간, 사회, 국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며, 어떤 만 가지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바로서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만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 사회는 전반적으로 바로 서고 해결됩니다.

  1978년 하버드 대학교에 러시아의 솔제니친이 와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두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인 것을 우리는 잊어버렸습니다.’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이 세상을 다 바꾸어야 한다. 다 못쓴다. 고쳐야 된다. 그래서 이 나쁜 놈들 다 없애야 한다. 죽여야 한다.’라고 해서 수 천 만 명을 죽이고 모두를 다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바꾸고 나니 좋은 세상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왔습니다. 비극이 왔습니다. 가난이 왔습니다. 모두 파멸 되었습니다. 남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나쁜 것이니까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과거 러시아는 이 지상에서 일등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4류, 5류 국가가 되고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동토의 땅이 되었습니다. 가장 불행한 나라, 거지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부산에도 러시아 여성 8천 명이 와가지고 몸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잘났다고 하는 그들의 딸들이 나가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 비참함이 어디서 왔습니까? 개혁에서 온 것입니다. 고쳐야 된다는 데서 왔습니다. 솔제니친은 잘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될 일을 하나님 앞에 가는 걸 뒤로 미루고 다 뜯어 고쳤더니 궁궐이 나중에는 거지의 지붕으로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남은 생애를, 남은 한 달을, 내년을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어디에 기대를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름위에 계신 주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 우리를 다스리시려 다시 재림하시는 주님, 영원히 살아계셔서 영광 받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갈 때 우리는 앞으로 이 나라에 황금시대가 올 수 있고 최고의 세계적으로 번영하는 날이 주 안에서 분명히 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붙들려 가려고 하니 베드로가 와서 칼을 들고 쫙 빼가지고 예수님을 잡는 사람의 귀를 잘라버린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나쁜 아저씨’ 이러면서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 내가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므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내가 닦으러 간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간다. 인간의 생각으로 보지 말라. 그것이 나를 돕는게 아니다. 그리고 칼을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느니라.’ 칼로 나를 도우려고 하면 칼이 나를 오히려 찌릅니다. 칼로 적을 해치려고 하면 그 칼이 내게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칼로 임하지 않습니다. 개혁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떨어진 귀를 말고의 귀에다가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물론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이것을 경험 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확실히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어려서 장난이 심해서 낙동강에서 제 친구하고 둘이 보름달 밝은 밤에 저 친구는 저쪽에서 막 뛰어오고 저는 이쪽에서 물 있는 곳으로 막 뛰어가다가 둘이 딱 부딪혔습니다. 무슨 딱 소리가 났습니다. 이상하다 머리가 깨졌나 하고 머리를 보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가 어디 갔나 했더니 혀 밑에 이가 두 개 들어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꺼내가지고 버리려고 하다가 한 번 꿰어 맞춰 보자하고 갖다 집어 넣었습니다. 넣었더니 제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 말을 못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두 나를 무식하다고 이걸 안 믿을 것 같으니까... 누가 이걸 믿겠습니까? 갖다 집어 넣으면 들어가서 계속 40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믿을 것 같아서... 우리 교회에는 치과 하시는 집사님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집사님! 제가 진심으로 무얼 고백해야 하는데 의학적으로 이 빠진 이를 갖다 내 손으로 집어 넣으면 됩니까?’ 하니까 빨리만 집어 넣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떨어졌을 때 빨리 갖다 붙이니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건설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어디던 다 계십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여기도 계시며, 저기도 계시고 우리 모두 마음에 계시며, 주님은 또한 하나님 나라에도 계십니다. 주님은 안 계시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기도문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다 모아놓은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시옵소서’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의 나라가 내게 임하시옵소서. ♬주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에 임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라에 임한다는 말은 주님이 통치자로 내게 오신다라는 말입니다. 통치자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까? 한 나라도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통치자가 없으면 나라가 아닙니다. 내게도 주님의 나라가  임해야 하는데 주님의 나라는 주님이 오셔야 주님의 나라지, 주님이 없는 나라는 주의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다스리시고 나와 함께하시며, 나의 모든 삶과 인격을 주장하실 때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기독교는 내 안에 천국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천국을 건설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내게 왕의 왕으로 계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성도의 축복은 주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내게 임하여 주의 뜻이 나로 말미암아 내 안에 주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벌을 보면, 여왕벌이 없으면 벌은 다 날아가 버립니다. 내 안에 왕의 왕이신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내 집은 다 빈 집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개혁할 때 인간의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이 문제가 어디서 왔습니까? 내가 나를 다스리기 때문에, 주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다. 정욕이 나를 다스립니다. 교만이 나를 다스립니다. 음욕이 나를 다스립니다. 욕심이 나를 다스립니다. 온갖 이기적인 불의와 온갖 악한 마음이 나를 다스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고 이렇게 자살하며, 이렇게 탈선하는 것은 내가 나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려고 결혼을 해도 행복이 없는 것은 내가 나를 다스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내를 다스려도 안 되고 아내가 나를 다스려도 안 되며, 내가 자녀를 다스려도 안 되고 내가 세상을 다스려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많은 통치자들이 자기 가정의 비극을 막지 못하는 것은 인간은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양’ 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주님이 나의 랍비가 되셔서 나를 가르쳐 주시며,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에게 모든 일을 말씀해 주시고, 주님이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주님이 나를 다스려 달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왕의 왕이신 주님이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선하신 목자가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지혜의 왕이시오 능력이 많으신 주님이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다스림이 바뀝니다. 주인이 바뀝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던 삶이 이제는 주의 평강이 나와 함께 하여, 주님이 나를 다스려 주셔서 평화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며, 소망이 넘치고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이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타락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다스리는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 이렇게 지식이 많고 과학이 발달하며, 정보사회에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다스리지 아니하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이 시대를 어떻게 탈출하고 내년에 좋은 지도자가 오기를 바라는데 내년에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예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다스려야 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다스려야 합니다. ♬전능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 다 한 번 일어서서 불러 보겠습니다. 찬송가 34장 1절과 4절, 우리는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나오는 것은 주여 나를 다스려 달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다스려 주세요. 통치해 주세요. 내 생명을 다스려 주세요. 내 앞날을 다스려 주세요. 내 노후를 내 건강을 다스려 주세요.’ 현대인들은 건강을 자기가 다스리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이 질병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 수많은 질병을 자기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내가 자녀를 다스리니 자녀가 너무 짐이 되고 피곤합니다. 내가 내 인생을 다스리니 고민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내 사업을 다스리니 사업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들고 피곤합니다. 우리 인간은 다스리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겠습니다. ♬전능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성삼위 일체께 한없는 찬송을 드립니다 존귀한 주님을 영광중 뵈옵고 영원히 모시게 하옵소서. 아멘♬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을 영원히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집이 좋으냐 나쁘냐, 직장에서 높으냐 낮으냐, 자동차가 좋으냐 싸냐 비싸냐 이런데에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모시는데 있습니다. 주의 왕국이, 하늘나라의 Kingdom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데 축복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영광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장로님 한 분이 건설업을 하는데 작년 연초에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강남으로 이사 오세요.’ 자기들이 아파트를 공사하는데 좋은 아파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정도 하느냐 하니까 한 그 때 70억 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때 저는 20, 30억짜리는 들었지만 70억짜리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게 있느냐 하니까 ‘목사님! 너무 모르시네요. 너무 좋답니다.’ 합니다. 그래서 요사이 짓는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세계에 어디가도 안 빠진답니다. 최고로 좋아서 거기 살면 천국 가기 싫답니다. 너무 좋답니다. 저는 강남을 좋아합니다. 강남 사는 분 존경합니다. 강남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남을 안 가는 것은 교회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까이 길동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주변을 떠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집을 샀더라면 지금 몇 배나 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집이 참 좋습니다. 집값이 안 올랐습니다. 10년 전하고 지금 1%도 안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집이 참 좋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주님이 함께하시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집이 의로운 집이냐? 경건의 아파트냐?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아파트냐? 성령이 임재하시는, 성령이 함께하는 아파트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무리 집이 좋아도 성령이 없는 아파트, 믿음 없는 아파트, 기도가 없는 아파트는 그건 생명이 없습니다. 킹덤은 아닙니다. 주의 왕국은 아닙니다. 적어도 주님이 계시면 왕국인데 주님이 안계시면 왕국은 아닙니다. 은혜의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믿음의 이불을 덮고 잠을 잡니다. 소망의 의자에 앉아서 감사의 음식을 받아 나눕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성령의 카페트에 앉아 있습니다. 비싸냐 좋으냐 이게 아닙니다. 밤에는 천사가 집을 지켜줍니다. 천사가 왔다가 갔다가 합니다. 꿈을 꾸면 주님을 만납니다. 말씀해 주십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밥그릇이 좋으냐 반찬이 좋으냐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반찬들입니다. 그래서 밥맛이 좋습니다. 한 번도 비싼 집 부러워 해 본 일이 없고 ‘가고 싶어 한 번 가봐야 되겠다.’ 이 마음 먹어 본 일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집을 누가 산다고 하면 한 5조 8천억 정도에 내어 놓겠습니다. 사 갈 분이 없겠지만 저희 집은 5조 8천억보다 더 비쌉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까? 그곳에 있다가 떠나면 천국으로 올라가는데 어떻게 이 집을 세상에 있는 그런 평수하고 그런 사람이 만든 것하고 비교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도 주님이 없으면 불안의 아파트입니다. 절망의 침대에서 정욕의 이불을 덮고 잘 수밖에 없으며, 근심의 음식을 먹으며 허무한 생활을 보냅니다. 거기에는 가정예배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모릅니다. 잘 하면 주몽이야기 하고 뭐 그런 이야기지 다른 이야기는 모릅니다. 구원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는, 저 구름위의 이야기는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걸 모릅니다. 땅의 것은 빤하게 알아도 그것 소용없습니다. 사람은 위에서 왔기 때문에 위를 보고 걸어야 사람이며, 위의 지식을 위의 정보를 알아야 사람이 지혜롭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능력 있지, 위에 계신 분이 없는데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그래서 속상해하고 자살하며, 정신이 돌고 낙심하며 좌절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할렐루야! 구름타고 오시리라고 성경은 무수히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킹덤이 있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밖에 있는 사람, 세상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뭔 말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땅을 잘 살 수 있는 길을 안내했기 때문에 세상의 공식으로 보는 분은 성경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을 살아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을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이 세상도 잘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킹덤을 주셨습니다. 열 두 제자들에게... 그래서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보면, ‘주여! 로마를 멸하고 주님 나라, 이 땅위에 멋진 나라를 하나 건설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야. 내 나라는 여기 있는 게 아니야. 내 나라는 저기에 있어. 그런데 관심 갖지 말고 너희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여 너희가 능력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계에 확장시켜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역군이 되어라.’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전에는 욕심이 땅의 욕심이었습니다. 여러분! 땅의 생활이 얼마나 잠깐입니까? 몇 년 전에 모두 입성했던 그 능력 있는 분들이 다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잠깐입니다. 이 세상에 잠깐 아닌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전부가 다 잠깐입니다. 백퍼센트가 잠깐입니다. 사랑? 잠깐입니다. 애들도 울 때 너무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애 울음소리도 잠깐이면 끝납니다. 우리 집에도 저녁이 되면 저희 집사람하고 둘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전에는 밤새도록 앙 앙 애들 울음 때문에 설교는 해야 되는데 너무 잠을 못자고 속상했는데, 요사이는 애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 울음소리 잠깐입니다. 세상 모두 다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를 보고 살아야 영원한 축복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하늘위의 구름위의 주님을 바라보고 늘 사모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땅에서도 잘 삽니다. 유럽을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나라들은 땅의 나라도 일등 나라입니다.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어져서 살아가는 분들은 땅의 나라도 땅의 문화도 최고의 국가로 만듭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려면 하나님의 킹덤이 먼저 여러분에게 이루어져야 이 나라도 좋은 나라가 됩니다.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리라고 기대하면 몇 년 지나면 폭삭 우리가 속고 후회합니다. 이 나라가 개혁을 통하여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하여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 안에, 여러분의 가정이, 우리 교회에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이 이루어질 때 이 나라는 좋은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안의 종교입니다. 철학도 실존주의 철학에는 내면적인 자아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그 다음에 밖에 보이는 외적인 내가 또한 있습니다. 내가 계급장을 달고 학력, 외투, 의복 이런 것은 다 외적인 ‘나’ 입니다. 그것은 걸친 코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짜 나는 내 안에 있는 내 영혼이 진짜 나입니다. 진짜 나의 변화는 개혁은 주님을 만나야 주님을 모셔야 주님이 나를 다스려야 내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참 인간다운 인간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 모두 불행해졌습니까? 자신이 자신을 다스리다가 불행해졌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다가 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보이는 가정이 있고 내면적인 가정이 있으며, 교회도 보이는 교회 모습이 있고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교회가 있습니다. 주의 나라가 임하는 교회는 이 안의 교회가, 보이지 않는 이 교회가 거룩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의인이 많은 교회이고 살아 있는 믿음의 교회는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 종탑을 아무리 높이고 건물이 화려하며, 설교가 대단한 것 같아도 성가대가 아무리 장엄한 것 같아도 이 안에 주님이 우리 교회를 안 다스리면 이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됩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주여! 저의 목회를 다스려 주옵소서. 저의 설교를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의 재정을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 성도들을 다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이 다스리는 곳에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으며 구원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너무 현혹되지 않습니다. 어디 가도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이 만드신 저 천국의 아름다움을 믿고 위를 바라보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새롭게 살아갑니다. 그의 나라는 너무 광대합니다. 큽니다. 우리나라가 크고 지구가 큰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이 큰 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때 세상의 나라는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잘 믿는 주의 나라에 임하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다 포기합니다. 모세처럼 포기합니다. 별것 아니기 때문입니다. 큰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하여 땅의 영광, 이 극히 부분적인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서도 주님이 다스리기를 끝까지 거절하고 자기가 다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20%만 다스려 주세요. 80%는 제가 다스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집에 별의별 사고가 일어나고 환난이 일어나며, 질병이 일어나고 파괴가 일어납니다. 그 집의 문이 80%나 열렸으니 온갖 문제들, 모든 어두움의 세력이 찾아옵니다. ‘주님! 백퍼센트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주의 평강과 은혜가 충만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신부의 삶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새롭습니다.

  저도 결혼 한 지 40년 지났지만 저희 집사람은 항상 신부와 같습니다. 늘 화장하고 늘 머리 손질하고 집에서도 저녁에 잘 때도 화장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 밤에 화장을 하느냐 하니까 ‘당신은 몰라요.’ 하고 저녁에도 세수를 다 합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신부니까 부인이니까 그럽니다. 그래서 예수 믿은 사람은 이 땅을 떠나는 그 날까지 긴장하며 삽니다. 신부로서 삽니다. ‘내가 나이가 이만하니까 그냥 됐다. 이만큼 사니까 아무렇게나 산다.’ 교인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예수님의 신부로 새벽기도 다니면서 매일 내 심령을 깨끗하게 하고 경건하게 하며, 죄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으면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기를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이 손 자르고 한 손으로 내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른 눈이 범죄 하면 눈 빼고 한 눈으로 내게 오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죄를 자르고 살아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죄를 마음껏 자신 있게 용기 있게 짓는 사람은 그분들이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건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주의 나라에 살기 위해서 항상 주님을 향하여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죄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떠납니다. 그리고 킹덤이 이루어지도록 항상 힘쓰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변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면 너무 변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저희 고향에는 물이 많이 내려가서 홍수가 나면 교회에 가도 물을 건너야 되고 학교에 가도 물을 네 번 다섯 번 건너야 됩니다. 물이 많이 내려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물이 많이 내려가도 잘 건넙니다. 책가방을 위로 들고 건너가서 옷을 다 입고합니다. 우리는 물이 많아도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서울 사람이 오면 늘 물에 빠집니다. 물이 얼마 안 되도 물에 빠집니다. 그 간단한 공식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왜 물에 빠집니까? 물을 보고 갑니다. 그 사람은 물보고 물을 건너니 물이 얼마나 빨리 움직입니까? 빙빙 돌아갑니다. 항상 방학 때 밖에 있는 친구들이 오면 물에 빠집니다. 물을 건널 때는 물을 안 봐야 됩니다. 멀리 보고 물을 보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진리가 아닙니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마귀가 다스리는 곳은 하루도 믿을 수 없어서 바뀝니다. 사람도 바뀌고 못 믿습니다. 제품도 바뀌고 전부 바뀝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정신병자 우울증 환자가 3백만이나 생겨나는 것은 세상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아버지도 변하고 어머니도 변하며, 남편도 변하고 아내도 변하며, 세상도 변하고 지식도 다 변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늘 주님을 바라보아야 세상을 끝까지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업을 짊어져도 주님만 바라보고 건너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저 구름위에 계시는 주님, 높이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모두 다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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