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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나가 주는 영적 교훈 (출 1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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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출애굽기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신비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 신비한 사실이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을 말합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에게는 ‘만나’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처음 만나를 대한 이스라엘 자손은 그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쳐다보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것이 그 신비한 식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히브리말로 ‘만나’는 ”무엇이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만나를 무슨 나무의 열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나는 땅에서 나는 열매가 아닙니다. 만일 만나가 나무 열매라면 가뭄에 콩 나듯이 띄엄띄엄 떨기나무가 서 있을 뿐인 삭막한 광야에서 200만이 넘는 백성이 먹을 열매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40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그 많은 만나를 어디서 구할 수 있었을까요?

출애굽기 16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나는 매일 아침에 이슬이 마른 후에 지면에 내렸는데, 그 모양이 작고 둥글며 마치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민수기 11장 7절에는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침마다 나가서 가족 수 대로 만나를 거두되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었습니다. 한 오멜은 2.2 리터 쯤 되는 분량입니다. 민수기 11장 8절에는 만나의 조리법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맛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한편, 만나는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매일 아침마다 그 날의 양식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남은 것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백성 중 어떤 자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아침까지 남겨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아침에 내린 만나는 해가 뜨겁게 쪼이면 녹아서 없어졌습니다.

이 시간 저는 이 만나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써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만나를 통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홍해를 갈라 그 사이에 난 길로 이스라엘 자손을 건너게 하시고, 뒤쫓아 오는 애굽의 마병들을 수장시키셨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 자손은 춤추며 노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인도를 따라 홍해를 떠나 수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흘 길을 걸었는데 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마침 오아시스인 마라에 이르러보니 물은 있는데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시는지라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마라를 떠나서 엘림에 이르렀는데,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칠십 주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에 장막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엘림에 계속해서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자손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200만이 넘는 큰 민족이 광야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민은 출애굽한 지 한 달 보름이 되었을 때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그 즈음, 애굽에서 나올 때 가져온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어디서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양식을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날부터,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매일같이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무역을 할 수도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년 광야생활이 끝나갈 무렵, 출애굽 1세대 사람들이 다 죽었고 2세대가 성인이 되었을 그 때에, 모세는 지난 40년을 회상하면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곡식을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양식이 떨어졌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믿음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불과 한 달 보름 전에 홍해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1978년에 고고학자들이 홍해를 탐사하던 중 산호초로 뒤덮인 곳에서 8개의 살을 가진 전차 바퀴들을 비롯한 전차부대의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고대의 전차 유물과 대조해 본 결과 출애굽 당시와 일치하는 이집트 18번째 왕조의 수레바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선민이 홍해를 건넌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굶어죽게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출애굽 과정에서 누누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은 믿음이 없었기에 문제를 만날 때마다 두려워하고 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자손을 먹이심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이 진리는 광야시대의 이스라엘 자손에게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살려면 떡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떡이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떡이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험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경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지만, 떡 문제가 걸려서 성수주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이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에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매일 그 날의 만나를 거두되, 제 육일에는 안식일에 먹을 것까지 준비하기 위해서,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평일에는 만나를 이튿날 아침까지 두면 썩고 벌레가 났으나, 제 육일에는 갑절을 거두어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주일 일하지 않은 것까지 다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가셔서 40일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시장하셨을까요? 때에 마귀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시험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광야에 가보면, 누런 돌덩이가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마치 구운 빵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원하시면 얼마든지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찌 마귀의 시험에 넘어갈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하심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떡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떡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영적인 복을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영적인 복은 물론이고 떡 문제도 해결 받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만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생의 양식이 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먹고 살았던 만나는 땅에서 난 양식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라는 점에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영생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벳세다 해변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배불리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 기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개중에는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 곳을 떠나셨습니다.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건너가셨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여러 척의 배를 나누어 타고 바다를 건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자 반가워하며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을 얻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이 다시 묻기를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행하셔서, 우리가 보고 믿게 하시렵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 당신은 어제 저녁에 오천 명이 넘는 무리에게 떡을 배불리 먹여주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우리 조상들이 경험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하려거든 더 확실한 표적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무리에게 만나보다 더 귀한 떡, 곧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떡을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큰 기대를 품고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다니…, 그들은 수군거리며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서로 다투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무리에게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먹었던 만나와 예수님 자신을 비교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고 하니까, 실제로 예수님이 자기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양식을 먹으면 그것이 우리 몸속에서 소화가 되어서 피와 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 양식을 통해서 생명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에 양식을 먹고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먹어도 그 양식이 그 사람에게 생명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 함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마치 영의 양식과도 같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의식입니다. 이 때 떡은 주님의 살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주님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살은 떡이고, 주님의 피는 마시는 음료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떡과 음료를 먹고 마심으로 생명을 유지하듯이,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게 됨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우리 영의 양식이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의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살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매 끼니 마다 밥을 대하지만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삼백육십오일, 아니 일평생 밥을 먹는데도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고, 밥을 보면 반갑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영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합니다. 양식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영의 양식이신 주님이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이 땅의 보화를 다 준다 해도, 영생의 주님과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은 이 땅의 양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영생의 양식을 위함입니다. 그런즉 언제나 영생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서 풍성한 영적 생명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만나를 통해서 성도들이 매일 필요한 영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내리시되 매일 아침마다 내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제 육일에 안식일에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거둔 것을 제외하면 매일 그 날의 양식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미리 여러 날의 만나를 한꺼번에 거두면 편할 것 같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만나를 많이 거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다음날 보니 썩어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이처럼 만나는 뒤주에 보관해 두고서 매 끼니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 양식이 아닙니다. 쌀이나 보리처럼 창고에 쌓아두고 오래 동안 저장해 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날 필요한 만나를 그 날 아침에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어제 거둔 만나를 먹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제 거둔 만나는 이미 먹을 수 없이 변질되었으니까요. 오늘 필요한 만나는 오늘 거두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아침에 거두어야 했습니다.

우리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필요한 영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간혹 보면, 지난날 받은 은혜에 의존해서 살아가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자랑하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대로 어제 받은 은혜가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제의 일일 뿐입니다.

과거에 주님을 잘 섬겼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고, 지금은 지금대로 주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과거에 은혜를 많이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고, 지금은 지금대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제 잘 먹었다고 오늘 밥을 굶는 사람이 없듯이, 오늘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가 따로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영의 만나가 있습니다. 어제 받은 은혜가 아닌 오늘 받아야 할 새로운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밥으로 비유하면, 오늘 아침에 새로 지은 밥입니다. 밥은 어제 지어 놓은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영의 양식은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낯선 여자 분이 수요 저녁 예배에 참석하였기에 예배 후에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지, 기도를 통해서 신비한 체험도 하였으며, 교회에서 중책을 맡아서 얼마나 헌신했는지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쩐지 그 여자 분의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기 자랑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시 말을 끊고 물어 보았습니다. “집사님, 지금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십니까?” 그러자 그 여자 분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요즘은 신앙생활을 쉬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그 여자 분이 여전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받은 은혜는 과거에 필요한 것일 뿐, 오늘 필요한 은혜는 오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광야시대에 그 날의 만나를 거두라고 하신 하나님의 지시에 불순종한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오늘의 만나를 얻지 못하는 신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에 보면 일용할 양식을 위한 간구가 나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기도는 육신의 양식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의 양식을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삶을 경시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는 우리 영혼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면 우리 육신의 삶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양식보다 먼저 영의 양식을 위해 살고, 오늘의 만나를 받아먹음으로 영적 생명이 풍성한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스라엘 자손은 40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먹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고서도 날마다 일용할 만나를 하늘로서 공급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성도들의 삶에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떡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들에게 신령한 영의 만나를 내려주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양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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