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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한 계명이라도 (레 4:1~4, 마 5:17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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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간 우리나라는 수출 3,000억 달러를 돌파하였습니다. 수출 3,000억 달러를 돌파한 세계 11번째 나라가 된 것입니다. 중계무역을 주로 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제외하면 세계 9위라고 합니다. 연말에는 3,200억 달러가 된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3,000억 달러는 미화 1달러짜리로 쌓아놓으면 에베레스트 산 46개 높이가 된다고 합니다. 미화 100불짜리를 길게 연결하면 달까지 6번을 왕복하는 길이입니다. 이 액수는 아프리카 국가 전체 수출량의 4배라고 합니다. 국민들 모두가 좋아할 입니다.

  우리나라의 한류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한국의 문화입니다. 영화나 연극 혹은 음악 등이 엄청난 국익을 창출하며 팔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에서 ‘한류엑스포 인 아시아’ 행사가 있었는데 일본에서 3,000명의 배용준 팬들이 전세기를 타고 왔답니다. 그 아줌마들 대단하지요?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한국에 신상품을 시판해보면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미션 임파시블 3’는 4주 만에 40만 관객을 동원하여 미국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을 예상했답니다. 반면에 ‘다빈치 코드’는 한국에서 완전히 망해서 1주일 만에 닫았습니다. ‘다빈치 코드’가 망한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흥행 척도라고 합니다.

  화장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유수의 화장품 회사들이 신상품을 개발하면 우선 한국에서 신상품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시판에 성공하면 그 상품은 성공하고, 실패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성경 출판과 판매가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성서 수출국인 것을 아십니까? 올해 우리나라는 368만부의 성경을 105개국에 수출하여 세계 성경수출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제작하여 수출하는 최강국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성경을 알고, 성경을 묵상하는 최강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성경강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의 강한 힘이 우리 사회를 이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에는 2,377개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통용되는 6,500개의 언어 중에 성경전서로 번역된 수는 422개 언어입니다. 신약전서로 번역된 언어는 1,079개입니다. 그리고 단편만 번역된 수는 876개 언어에 이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성경이 있다는 것은 인류 최대의 축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인물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셨다가 떠나셨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아서 말씀 때문에 망하지 않는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대한 무식은 그리스도께 대한 무식입니다. 성경을 모르고 예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날마다 더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입니다. 성경 말씀이 한자도 틀림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평안한 삶입니다. 성경을 내 삶의 지침으로 인정하는 삶은 행복한 삶입니다. 웨슬리는 ‘한 권 책으로 족한 사람’(homo unius libri)이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다른 책을 통하여 얻은 통찰력은 성경의 진리를 증명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되는 삶입니다.

  성경에는 온갖 인간의 진리와 사상과 지식과 예언이 나타납니다. 성경에는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미래에 관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우리 속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신문을 꼭 보십시오. 그러나 신문 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잡지는 될 수 있으면 보지 마세요. 거기에 무슨 지식이나 지혜가 있습니까? 전문지식을 전해주는 서적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읽지 않으면 온전한 지식이 되지 못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는 시간 만큼만이라도 성경을 읽으면 유식해 질 것입니다.

  성경을 완독하는 데는 약 56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매일 40장을 읽는다면 30일안에 성경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하루에 4장씩을 읽으면 일년에 신구약 성경을 한번은 읽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 보는 시간만큼만 투자하면 성경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차 안에서 흔들리면서 성경을 보아도 일년이면 한 권을 거의 다 볼 수 있겠습니다. 성경 읽기에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보아야 할 성경을 신학 논문으로 공부합니다. 낭만으로 보아야 할 성경을 우리는 역사 기록으로 공부합니다. 사랑으로 보아야 할 성경을 우리는 행동 규범으로 공부합니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고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구약과 신약은 한 계명이라도 버릴 수 없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18에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어느 하나라도 온전하지 않는 것이 없고 한 계명도 버릴 수 없습니다. 구약은 구약 시대에는 온전한 법입니다. 법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 법으로만 지키니까 나쁜 것입니다.

  이사야 34:16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고 합니다. 설교 마치고 나서 보면 빼 먹은 것도 많고, 이 말은 꼭 할 걸 하는 말씀도 많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합니다. 설교 준비는 설교가 끝나야 끝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빼먹는 것도 없고 빠진 것도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점일획이란 말은 이런 뜻입니다. 일점이란 히브리어 글자 가운데 가장 작은 한 점을 뜻합니다. 일획은 뿔이란 뜻으로 글자의 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점 하나, 끝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말입니다. ‘님’이란 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데 뜻이 완전히 반대가 되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이런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유행하던 말 가운데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가 무언지 아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학교하고 핵교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학교는 다니는 곳이고, 핵교는 댕기는 곳이랍니다. 성경은 이런 점 하나의 차이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한 마디도 허튼 말이 없고, 한 말도 잘못된 말이 없습니다. 성경의 정확성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의 다섯 권은 정경성을 의심 받았습니다. 아가서는 너무 관능적이어서, 전도서는 너무 회의적이어서,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번도 없어서, 잠언서는 교훈들이 서로 모순 되므로, 에스겔서는 환상들이 영지주의적 경향을 보이므로 각각 의심받았습니다. 일부 유대학자들은 에스겔서는 반 모세적 성격을 지녔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고, 한 자도 잘못된 것이 없는 것을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theopneumatos’란 말로 하나님의 숨결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말씀이므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가정에서도 성경을 가지고 교훈하세요. 성경을 가지고 책망하세요. 성경을 가지고 바르게 고쳐주십시오. 성경을 가지고 하면 자녀들이 달라집니다. 자녀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으로 자녀들을 교훈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감정으로 자녀를 책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특히 “내가 너 만할 때는”이란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 때 핸드폰이 있었습니까? 그 때 디지털이 있었습니까? 그 때 인터넷이 있었습니까? 그 때와는 시대적인 상황이 너무 다릅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성경은 있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있습니다. 앞으로도 성경은 있을 것입니다.
  복음주의 모임으로 알려진 로잔 언약은 1974년에 성경은 그 것이 긍정하는 모든 것에서 오류가 없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2:18에는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합니다. 왜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고 하십니까? 한 자도 더할 것도 버릴 것도 없이 성경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작은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다시 19절에는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궤변으로 율법을 고쳤습니다. 자신 마음대로 다르게 가르쳐 범법하게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어는 점 하나를 붙이고 떼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띄어쓰기가 없었습니다. 점을 찍고, 띄어쓰기를 함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영어에도 “God is no where”란 말을 띄어쓰기를 달리 하면 “God is now here”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시다”로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띄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민수기 23:12에는 발람이 발락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도 내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말씀입니다. 내 뜻대로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작은 점 하나라도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면 큰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4:2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교회사의 중요한 시기 때마다 객관적인 균형은 두 가지 것으로 정의 되었습니다. 성경과 교회입니다. 칼뱅이 신령주의자들을 비난한 것은 성경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령주의자들은 내적 조명을 추구했지만 성경을 무시하였습니다. 자기 인식이나, 자기 판단이나, 내적 조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상황에 따라 다르고, 점 하나 떼고 붙이는데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결코 성경을 거스르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항존직 직원이 임직 서약을 할 때는 반드시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습니까?”라는 서약을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한번도 “아니오”라고 하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성경을 유일의 법칙으로 믿고 그렇게 따르고 살고 있습니까? 왜 성경에 관한 것을 제일 먼저 서약합니까?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변치 않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4장에는 대단히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4:13에는 “이스라엘 회중이 계명 중 하나라도 범하면” 수송아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4:22에는 “족장이 계명 중 하나라도 범하면” 숫염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4:27에는 “평민의 한 사람이 계명 중 하나라도 범하면” 암염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수송아지, 수염소, 암염소를 죽여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을죄를 지었으면 대신 짐승을 죽여 죄 사하는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작은 계명 하나라도 범하면 죽을죄라는 말입니다. 작은 계명을 범하는 것이 작은 죄가 아닙니다. 죽을죄입니다. 성경에는 작은 계명이 없습니다. 모두가 큰 계명입니다. 작은 계명도 어기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릭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받아들이고(receive), 읽고(read), 연구하고(research), 기억하고(remember), 반영하는(reflect)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 조목조목을 작은 것 하나라도 변하게 하지 말고, 다 삶에 반영하는 말씀이 되게 하기를 바랍니다.

  찰스 스펄전은 매년 천로역정을 읽었습니다. 천로역정을 읽다보면 “야, 이 사람은 걸어 다니는 성경이구나”라고 하였답니다. 천로역정이 아니라 성경 때문에 칭찬을 얻었습니다. 성경이 그 삶을 이끌어주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고난을 이기게 한 책이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성경 한자 한자가 그녀에게 힘이 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하였습니다. 작은 한 마디도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결론

  존 엘드리지와 브랜트 커티스가 쓴 “예기치 못한 사랑”(The Sacred Romance)에서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거룩한 로맨스는 우리의 삶에 매순간마다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기쁠 때뿐만 아니라 고통의 때에도 거룩한 로맨스는 존재합니다. 말씀이 귀에 들리는 순간, 하나님과 우리의 거룩한 로맨스가 시작되고 이어집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작은 한 계명, 한 점, 한 획이라도 변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삶의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인생 노정의 길잡이가 되어 말씀으로 승리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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