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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흑백에서 칼라로 (마 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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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를 방문해서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지방들을 가보면 옛날 소련시대의 공산사회의 리더십을 발휘하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웬지 어두워 보이고 잿빛 그림자들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인상에서나 차림새나 환경에서 생기발랄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교사님들이 섬기는 교회를 찾아가면 전혀 다른 색깔을 보게 됩니다. 환경과 옷차림은 잿빛이라도 그들의 표정이나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밝고 화사한 총천연색입니다. 그들의 부르는 찬양은 힘이 넘칩니다. 우즈벡에 가면서 또다시 그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뛰는데 50여명 청년들이 함께 모여 찬양을 하는데 보통 4시간씩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전도사도 없습니다. 어떤 지도교사가 있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현장이며 역사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시골교회에는 전도사님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철야하고 찬양하며 행사를 진행하던 그 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복음과 신앙에 대한 순수한 칼라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는 대로 이런 교회들이 현지에서 훈련받은 사역자들을 세워 중소도시에 한 교회씩 세워지면 곳곳에서 색깔을 바꾸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 연해주나 중앙아시의 시골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이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빛의 사역입니다. 어둡던 인생이 밝아지고 삶의 가치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살던 인생들이 삶의 가치를 찾고 진정 행복해 집니다. 그렇게 어둡고 힘들고 무법한 밤이라도 아침에 찬란한 빛이 비추이기 시작하면 세상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밤, 어둠은 인생을 슬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죄짓게 합니다. 주님 안에서 올바른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밤은 참으로 불안한 시간입니다. 온갖 죄악이 판을 칩니다. 도둑이나 강간, 절도등이 대부분 이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인생의 질병도 이 때가 되면 더 고통이 심해집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이러한 어두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이 세상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1. 온 인류에게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12-16).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40일을 금식하시고 그리고 인생이 겪는 큰 시험들을 다 이기셨습니다. 이제 인류를 위해 일하실 공생애의 절차가 준비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변화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옛말에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장맛'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를 위해 오신 주님, 세례를 받아 의를 이루시고, 금식기도로 영성을 준비하시고, 온갖 시험을 이기셨지만 주님은 아직 개인으로 계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어 비추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 1:4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나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찾아가신 것은 구약 성경 이사야 9:1,2절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1)이 땅에 있는 사람들은 흑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16). 이 말은 선택받은 주의 백성들이지만 멸시받고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눅 19:10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하신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2) 또한 그것은 사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진리부재의 현장에 빛이 되며 진리가 되시고, 사망의 땅과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곳, 사망과 절대 절망 속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이 되시며 능력이 되시려 찾아오신 것입니다.
말 4:2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것이 주님의 사역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빛이 되시어 우리의 죽음을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죽은 환경도 치료하십니다. 말이 됩니까? 하지만 정말입니다. 죽음까지도 치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인생의 절망을 치료하십니다. 인생의 온갖 질병과 연약함, 어두운 부분들을 치료하십니다. 부부사이에 불신이 가득해진 위기의 가정에도 빛 되신 주님이 그들 속에 임하실 때 다시 사랑과 행복의 가정으로 치유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주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고문중 집사님은 과거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많은 위로를 받았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 '평화유통'을 개업하고 신발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도 없는 서울에서 새로 시작한 사업이라 많이 힘들었는데 무엇보다도 바이어들에게 술을 접대하며 로비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실패와 어려움에 봉착한 그는 나중에는 유통업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저는 남들처럼 술 마시며 로비도 못하고 자금은 물론 아는 사람도 없어 이제 망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기를 반복하는 중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상품의 뛰어난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한 끝에 '라세르'라는 상표의 숙녀화를 만들어서 유명백화점과 여러 매장에 유통시켰습니다. 그러자 그가 만든 숙녀화는 점점 인기를 얻고 유명해져서 전국의 이마트 매장과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판매가 되고 작년 한 해 매상만 180억 원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잿빛 어두움에 있는 사람,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되어 주시고 빛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천국의 현재성을 가져다 줍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처음 외치신 말씀은 세례요한과 같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요한의 가까이 온 천국은 미래적인 것에 그친 반면에 예수의 천국은 자신의 인격과 임재 아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깃들이고 실현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모세를 통하여 보여 주던 가나안 땅의 미래성이 여호수아, 신약의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현재화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천국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은혜입고 천국백성의 행복을 누리려는 사람은 먼저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죄인은 용서하시지만 죄를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 마음속에 있고(in you), 너희 속에(among you)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가정에 언제나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장모님이 열병에 걸려 가정에 근심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가정에 찾아가시자 예수께서 그 여인을 위해 손을 잡고 병을 꾸짖으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오랜 병상에 누운 노모가 일어나서 일하며 주님을 섬기는 기쁨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셨는데도 아직 천국이 현실화되지 않습니까? 과연 주님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까? 점검해 보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가정이 같이 하십니까? 그분께 예배 드립니까? 그분과 함께 의논하십니까? 그분과 함께 동거하십니까?
삭개오의 가정에 주님을 모시고 나서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자유함,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천국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정에 이루어질 천국입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근심걱정이 가득 찬 인생이며 가정인데 웃으며 여유와 기쁨과 평안이 있는 분들의 특징이 바로 천국의 현재성 때문입니다.

근심이 많으십니까? 주님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십니다. 그 분께 모든 짐을 맡기십시오. 진정 그 분을 신뢰하십시오. 그 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염려 근심의 96%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업이 어렵습니까? 고기 잡던 베드로의 그물을 기억하십시오. 어디에 그 사업의 물꼬가 있는지 아십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혼자서 고민하지 마십시오. 엉뚱한 길에서 헤매지 마십시오. 불신입니다. 주님은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상황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가라사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시리라(렘 33:2,3)

자녀의 일로 가정이 어둡습니까?
귀신들려 물에도 넘어지고 불에도 넘어지고 물불 못 가리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에 있다고요, 우리 속에 있다고요 아직도 삶의 전환을 못 이루어 머뭇거리십니까? 오늘이 기회입니다. 이제 결단하십시오. 어쩌면 마지막 권고일지도 모르쟎아요.

3. 세상의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바꾸십니다(18-22).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매일 다니시면서 사람들을 봅니다(18). '해변을 다니시다가, 그들의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신지라'. 예수님을 만나니 오늘 평범한 인생들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선발 기준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갈릴리 해변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그들이 이제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평범한 한 인생들을 이 세상의 빛의 도구가 되어 작은 빛의 역할 을 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들은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그들은 형제애가 돈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렀습니다. 주님은 형제애가 좋은 사람을 두 명씩이나 주님의 제자로 불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함께 일하는 형제들입니다. 여기에 돈독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안드레는 장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형님의 가정에 같이 살았습니다. 사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형님과 아우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같이 동업을 했습니다. 이것은 주안에서 장차 이루어질 모든 사람들이 형제의 사랑을 나누어야 할 천국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야고보 요한도 같이 일했습니다. 주님은 공교롭게도 첫 제자들을 이 두 형제들을 불렀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형제간에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요 13:35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형제를 주께로 인도하려는 귀한 마음씨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먼저 주님을 만난 안드레는 제일 먼저 형님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2)그들은 부지런한 일꾼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평행구절을 보여 줍니다. 어떻게 일하는지 나와 있습니다. 일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쉬고 있는 그들이 아니라 놀고 있는 그들이 아니라. 일하는 그들입니다. 게으르며 활기없는 사람이 아니라 의욕이 넘치고, 활력이 넘치고 부지런한 사람들을 택하여 주님의 제자를 삼았습니다.
오늘은 비록 힘들어도, 오늘은 비록 가난해도, 희망의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3)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도 주님이 가셔서 부르실 때에 놀라운 일이 그들의 인생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면을 주님께서는 더욱 풍성하게 하시고 인정해 주셔서 훈련시켜서 크게 쓰실 계획을 가지고 우리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요 1:42에 그들이 처음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반석이라)
아직은 성질급하고 무식하고 잘 넘어지는 사람이지만 주님은 그 가능성과 믿음을 보시고 미래의 큰 일꾼이 되겠다고 희망을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그의 인생에 큰 소망의 그림을 그리게 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이런 그림을 그릴 줄 압니다. 가족간에 부모 자녀간에 성도간에 이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빛이십니다. 꿈을 주십니다.
소경이 바디매오에게는 육신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영적인 소경 사울에게는 주님은 영적 빛이 되어 불러서 큰 하나님 나라의 전령이 되게 했습니다.
긴 세월 육체적 질병으로 고생하며 온 가족이 어두웠던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빛이 비추어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간증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다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시 37:4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했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빛 된 삶을 살아갑시다.

어떤 교인이 새로 이사를 하고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는데 그 마을에 교회가 많다 보니 막상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서 도로변에 서있는 교통순경에게 좋은 교회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순경은 한 교회를 가리키면서 나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저 교회 사람들은 항상 환하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만약 내가 교회를 나간다면 그 교회에 나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천국을 누리며 사는 성도들은 모습이 다릅니다. 흑백의 모습에서 이제 칼라사진처럼 웃음과 여유, 기쁨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김석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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