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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이 오리니 (요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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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비유입니다. 연극을 보려고 수많은 관객들이 극장에 운집해 있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런데 극장 한 구석에서 불이 났습니다. 갑작스럽게 '불이야!' 외치면 사람들이 당황할까봐 극장측은 연극의 주인공을 내세워 피신하게 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주연 배우는 연극을 중단하고 심각한 얼굴로 말합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극장 한 구석에서 불이 났습니다. 지금부터 제 말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하면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주연 배우가 코미디를 하는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주연 배우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건 코미디가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지금 손뼉 칠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더 박수를 칩니다. 그런 사이에 불은 극장 안을 덮쳐 수라장이 되고 아비규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죽음이 자신에게 오리라 예기치 못한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요한복음 8장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께서 구해 주시는 상황이 기록된 장입니다. 이 사건 후에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 땅에 왔는가를 선포하시다 위협을 받았습니다.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고치시고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는 소경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선포하십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여기에서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는 구절을 영어성경은 'We must' 로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소명 의식의 강렬함을 확인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그 일에 우리를 초청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I must' 가 아니라 'We must' 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들이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쓰임 받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의 삶은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서 보냄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오기 때문입니다. 밤이 오리니,

첫째로 보내신 자를 알아야 합니다

'주바라기' 이지선양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자동차 충돌사고로 인한 화재로 눈 두 개만 빼고 전신이 3도 화상을 입게 됩니다. 수술만 열 한 번을 했는데 수술시간마다 열 여덟 시간이나 걸리는 대 수술을 하였다고 합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죽으려고 했습니다.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게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자신을 이겼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사명을 알게되었습니다. 고통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 고통이 오히려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신의 고통을 알리며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기 시작합니다. 눈썹이 없으면서 눈썹의 귀중함을 알립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귓바퀴가 없어져서 귓바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감사하게 합니다. 그녀의 글을 읽는 사람들마다 모두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위로 받고 살 힘을 얻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사이트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가 고생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울리기 위해, 동정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누구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치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고 또 사랑하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제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들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녀는 '부끄러운 손' 이란 글에서 "저는 요즘 교회에서 이 부끄러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불쌍한 손이지만 하나님은 이 손이 부끄럽지 않은 마음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들은 보내신 자를 알아야 합니다. 보내신 자를 만나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보내신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연구할 수 없고 분석할 수도 없지만 말씀을 통하여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합니다. 마틴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읽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줄 아노라" 는 말씀 앞에 잠자던 믿음이 폭발했습니다. 루터의 가슴속에 성령의 불길이 솟아났습니다.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보내신 사명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6절 이하입니다. 예수께서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 는 뜻입니다. 순종하였을 때 소경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실로암은 보냄 받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은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심으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은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도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보내신 하나님을 통해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보내신 일을 하여야 합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Amsterdam)에 유명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들을 비싸게 팔아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정원과 화려한 저택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상심했습니다.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절망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많던 재산도 다 날려 버리고 무일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힘이 들 때 그의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권합니다. 그는 말없이 교회에 따라갔습니다. 그 후 믿음이 생기고 성경을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성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역사상 유명한 성화를 많이 남긴 화가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엠마오의 그리스도' (The Supper at Emmaus)인데, 엠마오의 두 제자와 예수님의 식사하시는 그림입니다. 그는 바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라는 화가입니다. 영감이 넘치는 성화를 많이 그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만일 그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림만 그렸다면 위대한 화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문도 모르는 채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나에게 내린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것이 나에게 주신 기회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알게 하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예수는 독특한 방법으로 소경의 눈을 치유하십니다.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십니다. 벵겔(A. Bengel)이란 신학자는 해석하기를 "예수께서 진흙으로 소경의 눈을 치유하신 이유는, 태초에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께서 동일한 재료로 인간을 치유하심으로써 그분의 창조사역을 선포하신 것이다" 라고 합니다. 즉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소경의 눈에 흙을 바르시면서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그의 목적과 계획을 전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계획과 목적은 구원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함으로 감겨져 있던 영혼들의 눈을 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하고 구원을 경험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역과 섬김과 봉사의 일들은 구원을 위한 보내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이 일을 하여야 합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이 하여야 할 일입니다.

셋째로 보내신 때를 살려야 합니다

인디안 선교를 위해 생애를 바친 데이빗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가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을 때 쓴 일기의 내용입니다. "10월 11일 저녁에는 지독한 열과 괴로움을 주는 오한에 시달렸다. 매우 친절한 간호를 받았다. 무가치한 나에게 이렇게 큰사랑과 관심을 가져 주니 부끄럽기만 하다. 살고 죽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린 지금은 내 마음이 평안하다. 이것은 생사를 초월한 놀라운 만족감이다. 이제는 완전히 탈진한 형편이어서 더 이상 사역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고통은 내가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아!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힘이 닿는 데까지 내가 맡은 일을 다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다면 이 얼마나 주 앞에 죄송스러운 일인가! 아!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그 뜻을 저버리면 안 될 텐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 분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야 할 터인데." 그는 전 생애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살았습니다. 그러한 삶으로 당시에도,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일깨우고 있습니다. 항상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때를 잘 살려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낮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말합니다. 밤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밤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죽고 나면 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 일하라, 밤이 되면 죽고 나면 일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시간을 계수하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세월을 아끼라' 는 원문의 뜻은 '세월을 구원하라' 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시간이 잃어버린 영혼만큼이나 비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보냄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보냄 받은 자들은 낮에 일해야 합니다. 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때를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있을 때 하나님께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건강이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재물이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능력이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젊음이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살아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지금은 일할 수 있는 낮입니다. 그러나 일할 수 없는 밤이 곧 다가옵니다. 밤이 오리니를 기억해야 합니다. 보냄 받은 자의 삶을 통하여 최선을 다하여 일하며 기회를 살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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