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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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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The whole Israelite community set out from the Desert of Sin, traveling from place to place as the LORD commanded. They camped at Rephidim, but there was no water for the people to drink.
So they quarreled with Moses and said, "Give us water to drink." Moses replied, "Why do you quarrel with me? Why do you put the LORD to the test?"
But the people were thirsty for water there, and they grumbled against Moses. They said, "Why did you bring us up out of Egypt to make us and our children and livestock die of thirst?"
Then Moses cried out to the LORD, "What am I to do with these people? They are almost ready to stone me."
The LORD answered Moses, "Walk on ahead of the people. Take with you some of the elders of Israel and take in your hand the staff with which you struck the Nile, and go.
I will stand there before you by the rock at Horeb. Strike the rock, and water will come out of it for the people to drink." So Moses did this in the sight of the elders of Israel.
And he called the place Massah and Meribah because the Israelites quarreled and because they tested the LORD saying, "Is the LORD among us or not?"

지난 주중에 슬픈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눈길에 실종되었던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던 서른 다섯의 James Kim 씨와 그 가족 이야기입니다. 아내와 두 딸은 구출되었지만, 가장인 James 씨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James 씨가 끝내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적인 행위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 온몸으로 사투를 벌이다가, 구원 요청을 위해 맹수들과 추위와 어둠이 있는 곳을 향해 맨몸으로 나선 그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영웅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냥 한 가지 교훈만 나누기로 하지요. 아내들에게 전합니다. 그런 엄청난 위기를 겪어 보지 않은 상태로 남편을 다 알았다고 평가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남편이 얼마나 든든한 기둥인지, 자기를 버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남편을 믿어주는 행위가 아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미덕입니다. 그런 위기상황이 와서야 비로소 “정말로!” 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조금 부족해 보여도, 남편은 남편입니다.

위기가 오면, 남편은 식구를 위해 몸을 던집니다.
대부분의 남편이 그렇습니다. 이건 남자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기를 살려주십시오.
그것이 지혜로운 아내의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안전합니다.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확인하려는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간혹 그런 경험을 합니다.
이렇게 해도 어른이 화를 내나, 안 내나? 테스트하는 것이지요.
생각할수록 정말 정말 화가 나는 일입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강아지가 호랑이의 수염을 잡아 뜯습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 거야? 여기까지는 참겠지? 그러면서.

우리가 믿음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악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에게 넘어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방해했던 베드로와 같은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입니다. 현재 위치는 “르비딤”입니다. 거기에 물이 없었습니다.

본래 광야로 나왔을 때는 “물 문제”를 염두에 두었어야 합니다.
그럴 각오를 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물이 없다고 하나님의 종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시오.
      마실 물을 주시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어째서 나와 다투려고 합니까?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십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종과 다툰다고, 그것을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시험함’이란, 하나님을 믿지 못함이란 뜻입니다. “정말 계시기는 계신거야, 아니야?” 이런 의심이 들고, 그런 행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은 목이 점점 더 탔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하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째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습니까?
      우리를 목말라 죽게 하려고 작정한 것 아닙니까?

이것은, 예수님과 같은 배에 있던 제자들의 상황과 대단히 흡사합니다. 그들은 정말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죽을 정도였다면, 같은 배에서 주무시던 예수님께서 깨어 일어나셨겠지요. 주님이 안심하고 주무시는데, 안달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소리 지르는 모습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그 때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백성들을 어떻게 할까요?
      조금만 더 있다가는 돌을 제게 던지겠습니다.
      저 여기서 돌 맞아 죽겠습니다.

정말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에 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어떤 순간에라도 돌 소나기를 퍼부어, 모세와 아론을 죽여 버리려고 했습니다. 다급해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백성 앞을 지나가라.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마주하여 서리라.
      너는 반석을 치라. 거기서 물이 나리라.

모세는 백성 앞을 지나갔습니다. 손에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당당하게 그들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을 불러냈습니다.

모세가 장로들 앞에서 반석 앞에 마주섰습니다. 그리고 반석을 쳤습니다.

보십시오! 거기서 물이 났습니다. 바위가 깨어지고, 거기서 맑고 찬 물기둥이 솟아 올랐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 자리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1. 거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와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다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사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죄를 짓되, 그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눈치를 보면서 계속 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른이 몇 차례 경고합니다.

      이제 그만 그쳐라.
      안 그러면 혼난다?

그런데도 계속 울다가 정말 혼나는 수가 있습니다.

아이와 어른의 관계로 비유하면, 아무래도 약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말 화가 나시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참으신 것입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떡과 고기를 먹고싶다고 불평할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마음껏 먹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군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은 밤새껏 울었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그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힐 것이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으냐?
      우리가 모세 대신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 말을 할 때, 모세와 아론이 백성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답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They said to the entire Israelite assembly, "The land we passed through and explored is exceedingly good.
If the LORD is pleased with us, he will lead us into that land,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nd will give it to us.
Only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be afraid of the people of the land, because we will swallow them up. Their protection is gone, but the LORD is with us. Do not be afraid of them."

그러나 그들은 돌을 들고 여호수아와 갈렙까지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행한 이적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구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So tell them, 'As surely as I live, declares the LORD, I will do to you the very things I heard you say:
In this desert your bodies will fall--every one of you twenty years old or more who was counted in the census and who has grumbled against me.
Not one of you will enter the land I swore with uplifted hand to make your home, except Caleb son of Jephunneh and Joshua son of Nun.

물이 없다고 원망하던 것이, 가나안 땅을 보고 와서 “못 가겠다.” “되돌아가자!” 하면서 돌을 들어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때부터 38년 동안 가나안을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 38년 동안 60만이 넘는 이스라엘이 모두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예외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지경에 와 있습니까?
날마다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을 시험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는가, 안 도와 주시는가?
      이런 죄를 계속 지어도 벌을 내리시는가, 안 내리시는가?

눈치를 살피며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깨뜨려 물을 내어 주시듯, 우리의 그런 못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하는 수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Why does the wicked man revile God? Why does he say to himself, "He won't call me to account"?
시 Psalm 10:13

      주님은 모르실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해도 속을 것이다.
      어제까지 괜찮았으니까, 오늘도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60쯤 되어서 제대로 살면 되겠지.

이런 생각이 모두 “주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멸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참고 계실 때” 돌이켜야 합니다.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계속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tole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leads you toward repentance?
롬 Romans 2:4

하나님께서 참아주시니까, 멸시까지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까지 도리어 ‘은혜’를 주시니까,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열등하십니까? 하나님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우리의 죄를 그냥 다 보고만 있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입니까? 과연 그러합니까?

인생이 그렇게 간단합니까? 인생이 그처럼 만만합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그처럼 어리석어 보입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선하신 것이 우리가 그분을 시험하고, 멸시할 이유가 됩니까?

여러분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시험하였나?
      내가 언제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말인가?
      나는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오늘 우리가 끊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죄악은,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망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망할 줄 알고도 계속 그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경고를 알고도 죄악을 그치지 않는 행위, 그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오늘 우리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다시 오늘 같은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지 누가 압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셨을 때는, 참고 참으셨다가, 마지막으로 경고를 주신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이제 돌이켜야 합니다.
이제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
죄를 물 마시듯, 옷 입듯, 그렇게 살아가면, 멸망이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피할 길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겨주셔야 안전하지, 우리가 도망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만 구석에 박고 다 된 줄 아는 꿩을 아십니까?
우리는 그 정도도 못 됩니다.
세상에,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지혜롭지 못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어떻게 가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멸망을 재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회개’할 때입니다.
죄악에서 손을 뺄 때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까지 참아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혹시, 혹시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듯’ 살아온 삶이 ‘성공적으로’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이 60이 넘도록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고, 도망치고, 시험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해 봅시다. 그게 성공입니까?

껍데기입니다.
알맹이가 없는 삶입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절망뿐입니다.
그러고도 ‘자존심’을 높이십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그게 다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나간 삶의 모든 더러운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오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죄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 길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길”
      그것이 살 길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기도.

기도하는 동안,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시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험에 빠지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기도하는 동안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무얼 얻지는 못했다고 해도(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연약하여 만든 모든 틈새를 메웁니다. 마귀가 파고들 여지를 없앱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하는 동안(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친히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날개 그늘 아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날개 그늘. 병아리들이 어미닭의 날개 그늘에서 얼마나 안전할까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병아리 입장에서는 어미닭의 범위를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Bring the whole tithe into the storehouse, that there may be food in my house. Test me in this," says the LORD Almighty, "and see if I will not throw open the floodgates of heaven and pour out so much blessing that you will not have room enough for it.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진실한 행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태껏 우리가 말하는 “시험”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참 중요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인정이 필요합니다.
가장 힘이 필요할 때, 그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이런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누가 내게 가장 귀한 사람인가?
      누구의 인정이 가장 소중한가?

그리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최선을 다하여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떠날 수가 있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그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다른 조건은 미약해져도, 하나님 안에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자면, 그것은 “감동”입니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길만이, 아름다운 삶을 끝까지 지켜내는 길입니다.

James Kim 가족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남편과 아버지를 둔 그 가족은 아름다운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쓸쓸하게 이 겨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에 미련을 두고,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은 차라리 낫습니다. 거기는 삶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헤메고 있습니다. 절망에 절어 지낸다는 것의 뜻을 아십니까?

      될 대로 되라지!
      애를 쓴들 무엇이 달라지겠어?

이런 절망의 자리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생명의 소중한 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왜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그래도 끝까지 살아내야 하는지
      왜 이 슬프고 고통스러우며, 고독하고 괴로운 인생길에서
인내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
      왜 오늘은 울지만 내일은 소망이 있음을 믿어야 하는지
     
예수 그리스도만 그의 유일한 대답입니다.
나는 오늘 금문인 여러분이 예수님을 다시 모셔들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시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바쁘십니까?
예수님과 시간을 낼 수 없습니까?

조용히 교회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십시오.
분노도 사라지고,
불안도 없어지고,
근심도 물러갑니다.
질병도 고침 받고,
오해도 풀립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처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습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풀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 곁에 보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보내심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그들은 “하늘에서 온 천사들”입니다.
잘 대접해서 하늘로 보내줍시다.
그러면 보내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렇게 보고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
      저 그 사람에게 다녀왔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렇게 좋은 사람을 준비해 두셨나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대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을 정성껏 대접합시다.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으로 정성을 다합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기도 Prayer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저희들은 주님 앞에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구드립니다.
주여 저희를 돌보아 주시옵소서.
심령을 감찰하여 주시옵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희의 ‘최선’을 선물할 수 있도록
주여 저희들을 간섭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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