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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동방의 박사들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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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별을 보고 아기에게 경배하기 위해 동쪽 나라로부터 먼 길을 찾아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로서는 전에 보지 못하던 별이 나타났다고 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물을 준비하여 가지고 먼 길을 별을 따라 찾아옵니다. 상당히 오래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위험한 길이기도 합니다. 언제 도적이나 강도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거기다가 사막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이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한 달 두 달 여러 달에 걸쳐 사막을 가로지른다고 하는 것이 보통의 각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별을 따라 그 먼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별이 이끄는 곳이 유대 땅임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침내 그 별의 주인공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신 이는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당연히 별의 주인공이라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 아기를 찾아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걸음을 옮겼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왕가 어느 집에서 아기가 태어났는지를 알아보기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 헤롯왕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처음 동쪽 나라를 떠날 때는 별을 보고 출발을 했는데 유대 나라에 들어와서는 별이 아닌 자기들의 생각을 따라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박사들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또한 이렇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했을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자로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이 형편과 사정이 나아지면서 그저 편한 게 좋고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세상의 부귀와 향락에 취해버리고 말더란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형편이 나빠지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보다는 사람의 도움을 구하고 그도 저도 안 되면 좌절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다가 누가 한 마디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정말 나를 아껴서 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서운해 하고 나중에는 신경질을 부리며 차라리 내가 떠나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 하고 심하면 내가 안 믿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픈 것입니다. 우리가 산다면 얼마나 오래 살겠습니까? 잠언의 말씀처럼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해도 그날들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인데 그 시간들을 우리가 헛되이 지나쳐버려서는 안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방의 박사들, 처음 동쪽 나라를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쉽게 끝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모든 것이 꼬이고 말았습니다. 유대 땅까지는 왔는데 아 그렇다면 유대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그들이 보고 따르던 별이 아닌 자기들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만 잘못된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바른 길인 줄만 알았습니다.
우리네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옳게만 생각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모든 것을 보지 않으면 사실은 그릇된 길을 바른 길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주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길을 정하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면 비록 남들처럼 잘 살지는 못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부귀와 영화라고 하는 것도 내가 추구해서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고는 하나 실상 주님이 내게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내가 노력하고 수고해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별을 통해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동쪽 나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붙잡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예수님을 알 수가 있었겠으며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지만 그 모든 수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주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나를 이끌어주시도록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노력에 더하여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우리 모두가 날마다 주님의 주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요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헤롯과 모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태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헤롯이야 마땅히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자기의 정권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가 있다면 당연히 그를 찾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기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성경에 정통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가 태어난다면 그곳이 어디가 될 것인가?” 물었더니 성경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을 합니다.
“유대의 베들레헴이란 마을입니다. 예언자들이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방에 있는 너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의 통치자들 가운데서 결코 작지 않다. 네게서 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그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볼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헤롯은 박사들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별이 처음 나타난 때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했습니다. “가서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아기를 찾으면 나에게도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나도 가서 그 아기에게 경배하겠소.”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헤롯의 속셈은 아기를 찾게 되면 가서 그 아기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죽여 버리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떠했습니까? 헤롯의 말을 듣고 또 동쪽 나라로부터 찾아온 박사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야말로 아하 정말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드디어 탄생하셨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을 찾아 경배해야 하겠다며 박사들과 함께 길을 나섰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누구도 따라 나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헤롯이 사람을 딸려 보내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해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사람을 뽑아 함께 보내지도 않고 자기들 역시 누구 한 사람 대표로라도 나서지를 않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토록 기다려오던 메시야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정말 메시야가 오셨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누구 하나라도 따라 나섰어야 하는 것이 아니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순종하라고 하시는데도 그 말씀대로 따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일이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겠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가난한 자들을 모른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자기도 어려우면서도 남을 돕겠다고 한다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을 볼 때는 정말 할 말을 잃습니다. 심지 않고서야 어찌 거둘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찌 나누지 않고 받으려고만 한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비록 내 코가 석자라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내 일이 먼저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먼저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도우시는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새벽마다 진밖에 나가 거두는 일을 하긴 했지만 그 만나나 메추라기를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수고가 필요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먼저 내게 허락해 주실 때 내가 거둘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먼저 심으라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주 앞에 드리기를 힘쓰고 먼저 나누기를 힘써야 하는 이유가 그럴 때 주께서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이 땅에서 백배로 갚아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것으로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나누는 만큼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금씩 우리의 형편을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음을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지를 않습니까? 항상 힘들게 살아가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문득 돌이켜 보면 어제보다는 오늘의 더 나아져 있더란 말입니다. 당연히 더 힘들어야만 하는데 실상은 아닙니다.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부족한 것만 같은데 놀랍게도 그런 날들을 우리가 여전히 헤쳐 나가고 있더란 말입니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따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채우시는 것으로 그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풍족하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리며 우리의 작은 것까지라도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마지막으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박사들이 헤롯왕의 말을 듣고 다시 출발을 합니다. 그러자 동쪽 나라에서 보았던 바로 그 별이 박사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박사들은 별을 보자,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별이 그렇다면 어디를 갔다가 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끝까지 별만 보고 따라갔다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시간을 허비할 까닭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별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박사들이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아기에게 무릎을 꿇어 경배를 드리고 보물 함을 열어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진짜 경배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면 그래서 하나님 앞에 빈손을 보이지 말고 우리의 정성을 다한 예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동방의 박사들이 가져온 예물들이 그냥 쉽게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예물들을 그들은 준비하여 왔던 것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그 당시로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값비싼 예물을 박사들은 먼 길을 떠날 때 미리 준비하였다가 이제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 드리며 그 예물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성탄절을 맞아 무엇으로 주님께 드려야 되겠습니까? 그것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다한 예물이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예수를 나의 구세주요 나의 주인으로 믿는다면 마땅히 주인 되시는 주님께 우리의 정성을 다한 예물을 그것도 값진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먼 길을 와서 아주 값진 예물을 드리는 이 동방의 박사들처럼 우리도 기쁨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삶을 드리고 우리의 사랑을 드리며 우리의 정성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욱 귀하고 값진 것으로 갚아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박사들로 하여금 베들레헴으로 가도록 한 이유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꿈을 통해 헤롯에게 돌아가지 마라 하는 명령을 주셨고 이에 박사들은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그 자리를 피하도록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모양으로 알려주시고 또 경고하여 주십니다. 그럴 때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위험한 곳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먼 길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가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을 위한 우리의 정성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기억되는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우리의 수고가 결코 멈추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따라 찾고 찾았더니 마침내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격려하고 나누며 또 주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더욱 귀하고 값진 것으로 받아 누리는 행복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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