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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비밀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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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예수님의 출생과정의 비밀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우리는 직접 예수님은 본적도 없고 만난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주님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는 성경이 2권있는데 한권은 마태복음이고 한권은 누가복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해서 1장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이르거 구체적으로 에수님이 어떻게 오셨는지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에 한명인 마태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심을 우리에게 자세하게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탄생과정을 보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 우리가 알 수 잇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성탄의 주인공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경우 성탄절의 주인공이 산타클로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역사 속에 실제로 오셨습니다.주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냥 오신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목적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분의 잉태과정과 이름과 출생의 모든 과정이 선하신 목적을 갖고 이땅에 오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다시한번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 주님을 바로 이해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은 신성을 갖으신 하나님으로 탄생하셨습니다.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때에 특별한 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녀인 마리아를 몸을 이용해 성령님께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본문은 18절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20절에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중에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성령으로 잉태된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요셉이나 마리아도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이 일이 믿어지기 어려웠습니다. 성령님께서 처녀의 몸 마리아의 몸에 생명의 씨앗을 주시고 잉태하게 하시었습니다. 사실 이 일을 당하는 요셉과 마리아도 처음에는 “어찌 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질문하면서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일하셨지만 결국은 성령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질문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처녀의 몸을 성령님께서 이용하여 예수님을 탄생하게 하셨습니까? 사실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 7장 14절에 주신 말씀의 성취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합니다.
이미 예수님 탄생시간을 볼때에 800년전에 예언된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녀를 통하여 잉태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하실때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굉장한 고난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사야가 활동하선 유다나라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갈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남쪽 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성탄의 예언을 받을 당시에 유다나라는 왕이 아하스때였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때에 유다나라는 큰 고난을 겪게 됩니다. 아람나라와 북쪽 이스라엘이 동맹하여 남유다를 공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었을때에 백성의 마음은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불안해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유다나라 아하스에게 가서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이사야가 아하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아람왕과 이스라엘왕으로 인해서 걱정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하스왕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시 이사야를 시켜서 아하스에게 가서 징조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다왕 아하스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믿음이 좋은 것같지만 불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러면서 아하스에게 징조를 보여주겠다고 하십니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 왕과 또 아람왕이 연합하여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징조가 무엇입니까?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징조입니다.
물론 이 말씀의 약속은 800년 뒤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에 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하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람나라의 침공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아무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긴다’고 하였지만 아하스왕은 믿지 못합니다.
그때 유대나라가 이긴다는 징조로 “동정녀의 탄생” “성령으로의 탄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하스와 같이 세상에 둘러싸여 있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징조,보여주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처녀의 몸을 통하여 우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모든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유대인들은 어떻게 사람이 자칭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하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참람죄로 공격하였습니다. 그러자 우리 주님은 내가 하나님인 증거를 우리에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선은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증거하신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성취되셨습니다. 그 말씀이 권세가 있었고 그 말씀이 능력 중에 성취되었습니다.
다음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 증명하셨습니다. 이땅에 오셔서 병자를 치유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바다의 광풍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물고기 5마리와 보리떡 2개로 오천명을 멀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바로 귀신과 마귀를 좇으시는 사역을 통해서 증명했습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은 수많은 귀신을 내어좇았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귀신들이 항복하고 좇겨나고 패하는 역사가 주님으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이런 놀라운 능력과 권세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주님을 믿는 자다마 죄악을 이깁니다. 마귀를 이깁니다. 사망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마다 천국의 기업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귀한 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인성의 비밀 갖고 완전한 사람으로 탄생하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라고 합니다.
25절에 보면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되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갖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사이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탄생하셨고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가정에서 30세까지 우리와 같은 일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파하셨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면 목이 말라 하셨습니다. 피곤하여 잠이 모자라면 자지 못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었지만 차이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같은 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의 삶에서 죄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범하는 어떤 죄도 우리 주님은 죄성이 없기에 어떤 죄의 행동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탄생하신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완전한 사람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지만 이땅에 오실때에 죄없는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면서 그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서에서는 그 아버지 요셉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19절에 보면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1장 28절 30절에 보면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천사가 마리아를 향해 부르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고 마리아는 그 은혜를 받아누리면서 사는 자였습니다.

여기 요셉과 마리아는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아직 정혼을 하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입니다.그런데 젊은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 속에 이런 요셉과 마리아같은 많은 젊은이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믿음의 부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굳이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히브리서 2장 14-18절에 보면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귀를 없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히브리서2장 14절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친히 사망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이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사망하시고 사흘만에 사망을 이시기고 부활하심으로 결국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사망의 권세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다음은 사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을 해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사망을 담당하심으로 사망에 종노릇하는 모른 사람들을 해방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속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노니“라고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승리를 고백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은 바로 시험받는 자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갖고 육체의 연약함을 경험하신 우리 주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면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바로 우리와 같이 육체의 성정을 입었고 우리와 같은 시련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구원자의 비밀을 갖고 탄생하셨습니다.

21절 아들을 낳으니리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기 예수님의 탄생은 철저하게 목적을 갖고 오신 것을 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름도 지어졌습니다. 여기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구원자로’라는 의미입니다.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죄와 악으로부터 건짐받고 해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건져주기 위해서 오신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4:18-19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최대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경제가 최대의 문제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못먹고 못입고 못살아서 문제가 됩니까?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잘 먹고 잘입고 잘 살게 되면 될 수록 더 문제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문제는 심각합니다. 그런데 교육이 잘 되고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우리 인생은 행복하게 됩니까? 오히려 교육받을수록 더 삶에 불만지수가높아지는 것을 봅니다.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알아야 할 것이 인생에 최대의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보면 결국 죄의 문제입니다. 먼저 구원받아야 합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으로 구원받고 변화되어지는 삶을 사는 가 있는 곳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누가 이 죄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마치 우리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누가 도울수 있습니까?
[유교] - ‘너의 바른 윤리와 도덕으로 헤엄쳐 나오라!’고 합니다.
[불교] - ‘너의 운명으로 받아들여라!’고 합니다.
[도교] - ‘스스로 수영을 터득해서 나오라!’고 합니다.
[기독교]- ‘예수께서 직접 나만 의지하고 붙드러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오직 에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이 진리는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시간상으로 어떻게 보면 이 고백을 하는 것이 단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에 이것이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을 믿되 특별히 예정교리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을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미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합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사역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예정가 선택의 뜻으로 세워지는 거입니다.
하나님이 예정의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핍박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까? 그런데 어느날 홀연히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시고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줍니다. 바울은 나중에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엡1:4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합니다.
엡1:5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되게 하셨으니”라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에수님을 선택할때라고 하는데 여러분 죄악으로 전적으로 죽어 무능한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선택했다면 분명히 중간에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구원을 인간의 선택으로 보는 분들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구원받으면 절대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끓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종종 예정교리를 말하면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연내가 선택을 받은 주님의 사람인가? 아닌가? 불안해합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주님의 선택된 백성이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나를 선택하여 주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땅에 나를 위해 보내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분을 진정으로 구주로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금세기의 위대한 크리스천 평신도였던 C. S. 루이스가 캠브리지 채플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학생이 C. S. 루이스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위대한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라는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리를 얘기했음으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때 C. S.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고 믿는가?"
“그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완벽한 도덕적인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완전하게 따라 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이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 분은 자네에게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가 있는 곳에 천국이 있습니다. 그 천국은 장차 가는 그곳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도 예수가 있는 곳은 천국입니다. 진정 예수님의 통치가 있는 그 가정이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 예수님이 진정으로 왕으로 통치하는 그교회라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모든 것이 있고도 예수님이ㅣ 없는 그곳은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설교자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설교자는 그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계속 걸어가다가 당신의 인생 맨 끝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그 결과는 심판 받는 것뿐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나를 위해 오셔서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다시한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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