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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그곳에 '예수'는 없었다 (눅 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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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눅2:41~42)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는 성경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탄생 후, 청소년기에 대해서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삼십 세가 되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다시 행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탄생부터 삼 십세가 되기까지 무엇을 하셨을까? 궁금해 합니다.
송기원씨는 '인도에 간 예수'에서 서방에서 한 성자가 인도로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청년을 예수라고 단정합니다.
예수가 이렇게 인도에 와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으며, 30세쯤에 다시 유대로 돌아왔다는 황당한 내용을 전개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청소년기에 터키에 갔다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30세 이전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인 의사 누가는 장차 이런 논란들이 일어날 것을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복음서중 유일하게 예수님이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삼 십세가 되기 전에는 고향 나사렛에 계셨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나사렛 촌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요1:45)
또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집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 요셉이 목수였기에 그는 '목수'의 일을 돕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면 본문이 단지 예수님께서 청소년기에 이스라엘 땅을 떠나지 않고, 나사렛에 계셨다는 사실 하나만을 밝혀두기 위해 기록되었을까요?
이 사건은 성탄을 앞둔 우리, 특히 한 해를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해마다 유월절을 지켜왔기에 예수님이 열두 살 되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눅2:41).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예수를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하룻길이나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로 예수를 잃어버렸을까요?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방 백리 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빠짐없이 예루살렘을 찾아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도 이 절기를 기억하고 고국 예루살렘을 찾습니다.

저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머뭅니다.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 입니다.
그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행2:9~11)

그렇게 크지 않은 예루살렘은 몰려든 인파에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촌사람 요셉과 마리아는 세상구경하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때 그 부모들은 동행중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44절)
예수는 당연히 자기들과 함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어디에 관심을 쏟고, 무엇을 하든지 예수는 당연히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 하루 동안이나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예수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왜 '당연히' 있는 줄로 생각했을까요?
아마 저들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기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들 예수가 자신들과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온통 그 마음이 빼앗겨 버리고, 엉뚱한 곳에 기웃거리는 부모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예수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저들은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예수를 찾았습니다.(44절)
여기에서 '친족과 아는 자'란 나와 피를 나눈 사람, 인간관계가 돈독하게 유지된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그들 중에 예수는 없었습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찾으니까 예수를 찾는데 무려 사흘이나 걸렸습니다. 여기 사흘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애굽에 사흘동안 흑암이 계속되자 그때 비로소 바로가 항복했습니다.(출10:22).
아브라함이 제 삼일에 모리아산에 이르렀습니다.(창22:4)
에스더가 밤낮 사흘을 금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스4:16).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습니다.(마15:32).
사흘은 '죽을 고생을 다 한 후에'라는 뜻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리고 예수를 잃어버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을 회복하고 예수를 찾는 것은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해 동안 누구와 동행했습니까?
지금 예수님이 당연히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일 년 동안 달려오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내가 할 짓 다하고, 온갖 세상의 것에 푹 빠져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체 살아왔으면서도 주님은 당연히 나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지 않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오강남씨는 '예수는 없다'란 책에서 전에는 "교회밖에 구원이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가 논란이 되었지만, 이제는 "과연 교회 안에 구원이 있을까?"라는 자성의 소리가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구원이 없다는 말은 곧 교회 안에 예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없는 교회, 예수 없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령 다 가졌다 할지라도 예수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예수를 가지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예수를 다시 찾으면 그 사람은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기해서 잃어버렸던 예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주님 모시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멋진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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