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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크리스마스에 오신 아기 (사 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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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오신 아기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이사야 32장 1∼4절

크리스마스 때 오신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고난과 재앙을 담당하시는
피난처와 구원자 되셔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600∼700년 전에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 중 너무나 놀라운 것은 한 아들이 우리에게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린 아기로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자라난 후 사람의 몸을 통하여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아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요, 평강의 왕이라고 하셨으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가 우리에게는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될 것이며, 마른 땅의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광풍을 피하는 곳

첫째로, 크리스마스에 오신 그 아기 그 아들은 우리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광풍이라고 하면 갈릴리바다의 폭풍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시는 중에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배가 침몰할 지경까지 도달했습니다. 제자들은 아비규환의 절망에 빠졌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를 젓고 배를 바로 잡으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거대한 폭풍우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자 광풍과 폭우가 즉시로 잠잠해졌습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자연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광풍도 잠잠케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타락함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삼대재앙의 광풍이 몰려 왔습니다.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 될 때부터 재앙의 세계 속에서 잉태되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삼대재앙의 광풍에 휘말려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악의 광풍을 맞아서 영혼이 파멸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 중에 태어나서 죄를 지으며 불의하고 추악한 인생을 살다가 결국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다 저주의 광풍에 휩쓸려 가는 초계와 같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재앙과 근심과 슬픔이 폭풍처럼 우리를 휘몰아쳐 갑니다. 우리는 항상 이 광풍과 폭풍에 시달리고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죽음의 광풍은 절망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한 것입니다.

아무도 이 죄악의 광풍, 저주의 폭풍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서 파멸직전에 이른 것처럼 오늘 우리 모든 사람들은 눈앞에 파멸을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악의 풍랑에 시달리고, 저주와 죽음의 광풍으로 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누가 이 비참한 광풍과 풍랑에서 우리를 건져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들어가면 삶의 광풍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모든 광풍을 홀로 맞으셨습니다. 우리 인류의 대표자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올라가서 죄악의 광풍을 맞아 몸찢고 피흘리셨으며 저주의 광풍을 맞아 나무에 매달리셨으며 죽음의 광풍을 맞아 무덤에 들어가셔서 사흘 동안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악과 저주를 한 몸에 짊어지시고 몸찢고 피흘려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사 승리하신 것입니다. 갈릴리 풍랑을 잠재우신 예수님은 인류에게 다가온 삼대재앙의 광풍을 영원히 잠재워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광풍은 요란한 소리를 그치고 잠잠해져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늘 밑에 들어오면 광풍은 잠들고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광풍을 피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우리의 생애 속에 다가오는 모든 광풍을 예수님께서 다 잠잠케 해 버리는 것입니다.

2. 폭우를 가리는 곳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되십니다.

폭우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늘에서 땅에 쏟아지는 것입니다. 여름 폭우가 가져오는 홍수는 삶의 터전을 휩쓸어 갑니다. 불은 타고나면 젓가락, 숟가락이라도 남기지만 홍수가 휩쓸어간 곳에는 젓가락, 숟가락도 남지 않습니다. 말갛게 쓸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90편 5절에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폭우가 내려오면 우리는 그 폭우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올해 우리나라도 태풍 에위니아가 강원도를 강타해서 약 1500여 명의 수재민과 1조 1500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태풍 매미 역시 1200명의 사상자와 5000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지구촌이 이러한 폭풍우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올해 4월 헝가리 다뉴브강 수위가 12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는 등 중동부 유럽은 홍수로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5월에는 인도네시아에 강진과 함께 쓰나미가 덮쳐 5000여 명이 숨지고 약 2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태풍 두리안이 강타해서 약 1000명이 사망, 실종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름 폭우가 가져오는 홍수가 이처럼 우리의 삶의 터전을 휩쓸어가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하늘에서 내려오면 인간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과 유황을 비같이 쏟아지게 해서 파멸시켜버리고 만 것입니다. 유다서 1장 7절에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베드로후서 2장 6절에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한 것은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영혼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장차 주를 거역하는 사람들과 세상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 모든 전반에 걸쳐 불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맹렬한 불에 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오직 주를 경외하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의에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폭우가 내려오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내려와서 모두 다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세계 역사는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으며 인간은 파멸과 심판의 불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피하지 않으면 이 폭우를 피할 자가 없습니다. 어떠한 인간의 수양과 도덕도 폭우를 가리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폭우를 가리울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말에도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남북 이스라엘이나 구소련이나 북한의 심판을 우리는 눈으로 보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순종해서 복 받기를 원하시지 거역해서 심판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심판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우리 온 인류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분노가 인류의 대표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심판하셨습니다. 처절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당한 예수님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은 우리 상상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인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은 하나님의 쏟아지는 심판의 폭우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우는 큰 우산이 되셔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심판의 폭우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폭우를 피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 동안에도 다가오지만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다가오는 심판을 어떠한 사람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마지막 지옥의 불구덩이 가운데 쏟아지는 불길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이외에는 우리가 피할 곳이 없습니다. 십자가야 말로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요, 안식처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 들어와서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죄 용서함을 받고 영원히 의롭다 함을 얻고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마른 땅에 냇물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른 땅에 시냇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사막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국토의 18%가 사막화되었습니다. 베이징 시는 베이징 시 북쪽에 있는 사막이 계속 남진하고 있어 20∼30년 후면 베이징 시가 모래에 파묻힐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올림픽에 대비해 베이징 시는 녹지대 건설 등을 통해 사막화를 막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30만톤 가량의 모래와 흙먼지가 날아와 올림픽 개최의 성공여부가 황사에 달렸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사막화로 인한 황사 문제는 심각합니다. 오늘날 사막화는 전세계에 급속하게 확산되어 메마른 지형과 기후를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살만한 터전을 더욱 줄이고 환경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켜 세계적인 위기를 안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막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물입니다. 물이 없으면 점점 세계는 사막화 되고 삶의 터전은 상실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물이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이나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부족 재앙입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전 세계적으로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죽어가는 어린이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어린이보다 5배나 많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았습니다. 또한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깨끗한 물을 공급 받지 못하고 있으며, “21세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물로 인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처럼 사막화 되어가고 사막화를 막을 수 있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아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사막화 되어 가는 것은 우리의 생활 전반이 점점 마른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막화 되어가는 인심, 위로가 없는 인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절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사막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령이 목말라 있습니다만 그 목마름을 해결할 도리가 없습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사막화 되어가고 강팍하고 무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갑자기 강도로 변하고 살인자로 변하고 사기꾼으로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렇게 사막화 되어가는 마음을 누가 축여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값없이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7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사막화를 물 댄 동산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들어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명의 근원이 되어서 우리의 사막화 되는 마음을 해갈해 주시고 마음속의 변화를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으로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문학 작품으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영화나 음악을 가지고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늘날 예술도 점점 사악한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넘치게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는 마른땅에 샘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이 말라버리고 살 희망이 없어지고 기쁨도 사라질때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면 서서히 물이 솟아오르고 물 댄 동산과 같이 되어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 인생의 문제의 해답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넷째, 크리스마스에 다가온 그 아들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막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햇빛이 내려 쪼입니다. 엄청나게 햇빛이 내려 쪼이므로 사람들은 수분이 증발되어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바위가 있어 바위 그늘 밑에 들어가면 즉시 시원해집니다. 사막은 습기가 없기 때문에 바위 그늘에 들어가면 내려 쬐이는 태양이 사라지고 그렇게 서늘하고 좋을 수 없습니다. 또 바위 그늘 밑에 있으면 그 바위 틈 사이에서 물도 솟아 나올 수 있고 풀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른 땅에서 그늘을 찾는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우리도 곤비한 땅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년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며 장정이라도 쓰러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살인, 강도, 강간, 가정파탄, 자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대학교수가 돈 많은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부모가 자식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곤비한 세상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보험금 때문에 서로를 죽이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세상이 곤비한지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은 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무엇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을 앙망하면 자꾸 새 힘이 솟아올라 오고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이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제 힘을 가지고 오늘 살 수 없고 오늘 힘을 가지고 내일 살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생기를 받아야 합니다. 이 생기가 어디서 옵니까?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께서 날개치고 올라가는 독수리같이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1절에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솔제니친은 옛 소련의 작가로서 당시의 체제를 강력히 비판하다가 반역자로 몰려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감옥에서 특별 범죄자로 구분되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암까지 걸렸습니다. 그는 살 희망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솔제니친을 가만히 보더니 발로 십자가를 그린 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가 사람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라고 한 십자가를 바라보자 알지 못하는 힘이 솔제니친의 마음속에서 솟아올라 왔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십자가에서 자기를 위해 몸찢고 피흘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다가오더니 새로운 생기와 힘이 솟아올라 오는 것입니다. 그는 이후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암에서 고침을 받았으며 미국으로 추방되어 미국에서 당시 공산주의 사회의 비인간적인 생활을 폭로했고, 노벨문학상까지 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그늘 밑에 들어와야 우리가 참 힘을 얻을 수 있고 광풍과 폭풍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광풍과 폭풍을 피하는 곳이 되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이 되어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은 구원과 은혜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행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구원과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때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음으로 구원과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삶의 최고의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모시면 우리는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새로움을 맛보고 새로움 속에 살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 밖에 우리를 새롭게 할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열어 놓고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께서 예비한 은혜과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내 주셔서 인류의 대표가 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광풍을 잠재워 버리셨습니다. 마른 땅에 냇물이 솟아오르게 하셨습니다.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살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행복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크리스마스에 보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며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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