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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의 별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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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전 이스라엘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성경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구세주(메시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을 온 세계가 성탄절로 지킵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인 줄 알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 수많은 아기가 태어났을 텐데, 베들레헴만 따진다고 해도 한두 명의 아기가 태어난 게 아닐 텐데 ...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으로 바로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이겁니다.

  물론 그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그 아기의 출생 비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본인이 분명 처녀였는데 어느 날 천사가 와서 수태 소식을 전해 주었고, 그는 순종했습니다.(눅1:26~38 참조) 마리아의 약혼자인 요셉은 처음에 마리아의 임신으로 고민을 했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줘서 믿음으로 마리아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기 예수를 출산할 때까지 동침은 하지 않았습니다.(마1:18~25 참조) 이렇게 마리아와 요셉 자신은 알지만, 누가 그들의 말을 믿어줍니까? 버선처럼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 봐야 웃음거리나 되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정말 갑갑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선 겁니다. 그 아기가 분명 당신의 아들임을 인간 세계에 확인시켜주기 위해 증인 몇 사람을 세우고 그 증표로 몇 가지 사인(Sign)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전해 준 말씀입니다. 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Sign)이니라 하더니 ... ”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마구간에서 태어나 강보(포대기)에 싸여 구유(먹이통)에 누인 아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있을 수 없는데 있다면 그것은 특별한 표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옛날 암행어사가 행차하는데, 누가 그를 믿어줍니까? 그러니까 믿을 만한 표적을 내어 보입니다. 그게 바로 마패였습니다. 그걸 내보이면 누구든지 인정하고 엎드립니다. 이런 예도 생각해보십시오. 요즘이야 처음 만나는 사람도 이메일로 미리 사진을 교환하고 쉽게 알아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만났습니다. 서울역 광장 시계탑 앞에서 몇 날 몇 시에 만나자, 빨간 머플러 하고 손에는 신문을 들고 서 있겠다 ... 이런 식으로 약속합니다. 정말 그 날 그 장소에 나가보니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쉽게 확인하고 만나게 됩니다. 이런 게 표적입니다.

  둘째,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수천 킬로미터 먼 길을 여행한 후 만나 경배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1] 동방박사들이 본 별 : 메시아의 별 - 하나님의 표적(Sign)

  동방 박사들은 누구였을까요? 동방은 아마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지역이었을 겁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지역 출신의 천문학자인데, 별자리를 연구하면서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을 예측하는 사람들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마술사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고대 과학자요 철학자로 흔히 왕이나 귀족의 자문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난세에는 왕을 간택하는 일까지 맡아 킹 메이커의 역할을 할 정도로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과연 어떻게 별을 보고 예수님 탄생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이미 구약의 메시아 예언을 일부 들어서 알고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동방에 흩어져 살았고, 특히 단2:48 보면 다니엘은 바벨론 박사들의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같은 사람을 통해 박사들에게, 그리고 많은 식자층에 구약의 예언이 전해져 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의 사본이 부분적으로나마 유포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민24:17의 예언이 그들에게 알려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알고 있던 그들이 어느 날 별자리를 보다가 이상한 별(특별히 빛이 나고 움직이는 별)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 별을 보면서 메시야가 탄생한 곳을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민24:17에 나오는 ‘야곱의 별’은 누구인가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다윗 왕으로 봅니다. 삼하8:2에 근거합니다.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그래서 오늘날도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별이 그려져 있는데 곧 다윗의 별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야곱의 별은 궁극적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계22:16 보면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여기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새벽별이라고 불렀습니다. 

[2] 메시아의 별에 대한 반응 : 보고 따라간 사람, 보지 못한 사람, 놓쳐버린 사람

  ① 별을 보고 따라간 동방박사 :
  동방박사들은 그 별을 보고 불원천리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위험을 무릅쓰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별은 예수님께 인도하는 별이었습니다. 즉 그 별은 하나님의 계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별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에게도 인도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속도에 관심을 둡니다. 무엇이든 속히 성취하면 인생의 성공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풍조에 휩쓸려, 세상 지식에 욕망에 휩쓸려 다니며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인생을 잘 사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 마지막이 만일 멸망이라면 헛된 인생을 산 겁니다.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러므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요 목적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의 일입니다. 당시는 야간 통행금지가 시행될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인천에서 통학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늦게 일을 보고 노량진에서 전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막차 시간이 임박해서 정신없이 뛰어가서 플랫폼에 들어서는 전철을 집어탔습니다. 표지판도 안 보고 당연히 인천행이거니 생각하고 탄 겁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몇 정거장 간 후 이상한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다음 역은 가리봉, 가리봉 역입니다!” 그 전철은 수원 행이었던 겁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 날 집에 오느라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정신이 없습니다. 이처럼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은 오직 별을 보고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안을 열어 별을 봐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길이 열리고, 인생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난 후 얼마나 기뻤는지 본문 10절은 증거합니다. “ ...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치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는지도 모릅니다. 11절(상) 보면, 아기께 넙죽 엎드려 절합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굳게 믿은 겁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만남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 구원의 축복 : 그들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6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 승리의 축복 :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예수님의  인도를 받으면 따라가면 험한 세상에서 보호받고 위로받고 형통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본문 6절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목자라고 했습니다. 시23:1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에 없으리로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 ”

  땅콩 박사 조지 워싱턴 카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흑인 농학자였습니다. 미국 남부 지역 농가들이 면화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면화는 땅 속의 질소 파괴해서 토지를 황폐화시킨다는 겁니다. 반면 땅콩은 질소 없이 잘 자라고 오히려 질소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농학자의 말을 듣고 농민들이 너도 나도 땅콩을 재배합니다. 정말 토지가 회복되고 풍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콩이 과잉 생산되어 전부 망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카버 박사는 고민에 빠져 기도합니다. “주여! 왜 땅콩을 만드셨나요? 왜 땅콩을 심게 했나요?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몸부림치며 눈물로 기도하는 데 주님의 음성이 마음 속에 들려왔습니다. “땅콩 한 줌 갖고 실험실에 가라! 내가 알려 줄 테니 ... ” 그는 땅콩을 재료로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식품과 제품을 만들게 됩니다. 땅콩 버터, 땅콩 크림, 땅콩 식용유, 땅콩 구두약 ... 무려 105 가지 식품과 200 가지 실용 제품을 만들게 되어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별을 보고 따라가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② 별을 보지 못한 사람들 :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따라갔는데, 반면 많은 사람들이 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지역이라고 그랬나요? 별은 어디서나 보이죠. 혹시 하늘의 별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별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성경이 있었지만 유대인들과 헤롯왕, 특히 성경 박사들인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조차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헤롯왕 같은 이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 왕이 나셨다는 말을 듣고 당황합니다. 정권의 위협을 느낀 겁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도 아니고(에돔 족속, 에서 후손), 정통 왕권도 아니었습니다. 로마 정부에 아첨해서 얻은 정권이므로 늘 유대인들에게 거부당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에게 자문을 요청합니다. 본문 6절 말씀대로 미5:2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메시아 난다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이 멀어 별도 보지 못하고 성경의 예언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별을 보지 못하면 ‘별 볼 일 없는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따라가지 않으면 결국은 멸망하고 맙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에 없습니다. 별을 봐야 ‘별 볼 일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한 그룹의 사람들이 런던 교외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집니다. 일행 중 한 명이 급히 농가에 들어가 우산 하나만 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주인은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쓰던 우산 중에서 살이 부러진 우산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얼른 나가서 일행 중 한 여인에게 씌우고는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 며칠 후 예쁘게 포장된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빌려주었던 그 우산과 편지 한 통이 온 겁니다. 그 편지에는 정중한 감사 인사와 함께 그 여인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여왕 엘리자베스” 그 여인은 바로 민정 시찰 중이던 엘리사베스 여왕이었던 것입니다. 그 편지를 읽고 그 주인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가서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왕 중의 왕, 별 중의 왕별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푸대접하면 후회할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눈을 크게 떠서 별을 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③ 중간에 별을 놓쳐버린 사람들 :

  동방박사들이 다 잘했는데, 중간에 잠시 별을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먼 길을 떠나 예루살렘에 당도하니까 으레 유대인의 왕이 왕궁에서 낳겠거니 생각하고 왕궁을 찾아갑니다. 그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다가 별을 놓쳐버린 겁니다. 1절~2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나중에는 다시 별을 발견하고 아기 예수를 만나기는 했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잠사 동안 방심하고 별을 놓침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자기 정적으로 오해하고 제거하고자 베들레헴 지경의 두 살 아래 아이를 모두 학살한 겁니다.(마2:6 참조)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베드로의 이야기도 예수님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과 떨어져 갈릴리 바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밤에 광풍이 불어와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을 도와주러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요령인 줄 알고 놀랐지만 이내 예수님인 줄 알아본 베드로는 자기도 그렇게 바다 위로 걸을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와보라고 명하셨고,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순종할 때 정말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는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결국 바다에 빠졌고, 예수님이 건져주지 않았다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마14:31 “ ...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별을 보고 따라가되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히12:2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서 바라본다는 말은 ‘뚫어지게 바라보다’ ‘응시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별을 보고 따라가되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위협이 있습니까? 유혹이 있습니까? 그럴 때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곤란합니다. 예수님을 행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잘 따라가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동방박사들이 본 성탄의 별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것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려주기 위해 단 한번 보여주신 표적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아니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과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동방박사들처럼 세상의 죄와 욕심을 버리고 깨끗함 마음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읍시다. 그리고 성경 말씀의 인도를 받읍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의 기쁨과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기쁨이 넘치는 이번 성탄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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