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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알파와 오메가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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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금년 첫 주일 「예수님을 바라 봅시다」라는 교회 표어를 제목을 설교할 때 3가지를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1) 바른 신앙을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과 목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모래위에 세우는 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새 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막중한 일을 하게 된 우리로서는 자칫하면 우리 시선이 주님에게서 떠날 확률이 다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일년을 돌아볼 때 과연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습니까?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오직 믿음을 근거로 해서 감당해 오셨습니까? 성경에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라”고 했습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우리는 우리 신앙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아니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 했습니?! ?. 쉬운 번역에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게시지 아니하면 너희는 실패자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어떠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만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의 지난 일년은 하나님 앞에서 합격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 바른 삶을 위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신앙의 대상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범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2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는 “주여, 누구이십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신앙에 대한 질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주님이요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좋다고 하던 모든 것을 분토같이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제일로 믿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하는데 어떻게 해야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평생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일년 동안 주님과 동행하였습니까? 비?! ? 그 행보가 만족하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동행하였다면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잘하였다”고 칭찬하실 줄 믿습니다.

(3) 우리의 사역을 위하여 주님을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전하시고 고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부(WEST)”라는 영문 철자를 따라 첫째 예배에 힘쓰고, 둘째 전도하며 셋째 봉사하고 친교하며, 그리고 넷째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로서 본연의 모습과 사명을 감당하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배에 열심 하였습니까? 단 한사람에게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본 일이 있습니까?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봉사하였으며 성도의 교제는 얼마나 힘쓰셨습니까? 그리고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에는 어떠하였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어떠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보시기에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다 보내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결산해 보자”고 하십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년이 되고, 한해 한해가 쌓여서 평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난 일년을 주님 앞에서 결산해 보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새 출발을 위한 결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지난날이 탕자같이 허랑방탕한 세월이었다고 할지라도 돌이키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더욱 귀하게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2. 오늘 빌1:6을 보십시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루실 이”도 역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1)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시작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a. 창조하신 일은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요1:에 보면 “만물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의 근본이십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내 인생을 시작하신 이도 역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미 모태에서 나를 조성하시고 택하신 이가 주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은 창조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까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금년 일년을 시작하게 하신 이도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날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과 전적으로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님과 반대방향으로 역행했는지도 모릅니다. 한해의 막바지에서 돌아볼 때 도저히 내가 작년보다 일년만큼 전진했다고 말할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면 주님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나를 받아주시고 나의 실패로 하여금 성공을 위한, 승리를 위한 씨앗이 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고 되어져가는 존재입니다. 어떤 분의 표현처럼 “공사 중”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역사하시며 그날에 마침내 온전하게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실패에 사로잡히지 마시고 우리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확신과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반드시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안동서부 교회에 큰 승리를 주리 줄 믿습니다.

b. 구원하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영원 전에 이미 계획을 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구속의 대업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유다서에 보면 “단번에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이제 “우리 안에서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구원은 온전하게 성취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그것은 내가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 이루신 것을 받아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의 심정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불신자들이 이 땅에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주님의 구원사역은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 우리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 받은 우리를 향하여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당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일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복음 전한 일이 한번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비록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지난 성전 봉헌식 때 “이 사람”이라고 이름이라도 적어 보셨습니까? 그것마저도 마다하고 이 1년을 보내려고 하십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우기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은 주님께 진 빚입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이 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반드시 시작하신 일을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이 이루어주실 일이 무엇입니까?

a. 우리 인생을 마침내 승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흔히 우리는 인생을 싸움이라, 투쟁이라, 전투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 인생이라는 이 엄청난 싸움터에 서있는 우리 모습은 너무도 초라합니다. 이 싸움에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 사도 바울도 한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바울은 다음 순간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의 싸움은 우리 자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내게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싸움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의 말을 기억하십시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반드?! ? 이기리로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마침내 승리하게 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b. 실망과 낙심을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찬한 일을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선한 소원을 주십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목표를 주십니다. 그것을 옛날 요셉에게는 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지켜주시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어주실 때 단지 한 사람의 성공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십니다.

 보십시오. 우리 안동서부교회에 성전 건축의 꿈을 주신 것은 적어도 십 수 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여러 경로를 거치면서 우리들 모두에게 그 꿈을 공유하게 하시고 마침내 오늘같이 큰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낙심시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가지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선한 마음과 아름다운 꿈을 주시고 또 그것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c.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며 빌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이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만 “능치 못하심”이 없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믿는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모습이 왜 이렇게 초라하기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된 선이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선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년 굳게 서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주님 세상에 계실 때 겨자 씨 같은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에게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속하신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오늘 내 모습이 매우 초라하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계획하신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결론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 우리 안에서 공사 중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공사는 계속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주십니다.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마침내 이루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한해의 마지막 주일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면서 사도 바울과 함께 이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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