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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이 보배를 질그릇에 (고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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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또 한해가 저물어 2006년도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密雲不雨”(밀운불우)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사회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구름은 가득한데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하지요. 날이 가물어 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름이 가득합니다. 비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살아온 한해의 사회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우를, 잎은 무성한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 같은데 되는 것이 없는 것, 말은 그럴 듯한데 말로만 끝나고 마는 것, 껍데기는 있는데 알맹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해를 얼마나 힘들게 보냈겠습니까?

서민들의 한탄과 나라의 지도자들을 향한 원망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함께 원망하며 한탄이나 하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지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기록하기를“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린도후서 4:7)라고 하셨습니다. 질그릇은 우리 인간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누구나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도 같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쉬 낙심합니다. 반면 조금만 무엇이 되는 것 같으면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보배란 우리가 섬기는 주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한 질그릇 같지만 우리 혼자가 아니라 우리 속에 보배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의 어떤 관계가 있겠습니까?

1.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본문 8절에“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이 되는 최대의 사건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430년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가나안 복지를 향해 나아가던 중 얼마가지 않아 그들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했습니다. 앞은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돌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좌우는 험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막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낙심하여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도리어 노예생활을 하던 지난날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엎드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기적을 나타내셔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셨습니다. 반면 뒤 따라 오던 애굽 군대는 그 바다 속에 수장 지낸바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연약한 질그릇 같지만 단순한 질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보배이신 하나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당할 자나 막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태양이 변함없듯,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은 더욱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하시며 크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편 50:15에 말씀하시기를“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하셨습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본문 8절에“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답답하여 숨 막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구약성경의 요셉이란 사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부잣집 열한 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꿈에도 상상 못한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이복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주인의 깊은 신임을 받은 요셉은 주인집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날도 잠시뿐 주인의 간계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처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답답한 일들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애굽 왕의 꿈을 잘 해석하므로 왕의 총애를 받아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보배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소년의 생활기록부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빈궁한 가정환경과 병약한 몸이므로 수업이 어려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해 젖을 빨 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보고“세 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라 했습니다. 이 소년의 아버지는 고무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가 나서 도피 중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며 힘겹게 네 아들을 키웠습니다. 이 소년은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성냥팔이 소년이 되어 거리를 돌아 다녔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환경 속에서도 이 소년은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심히 책을 읽으며, 그의 타고난 재능인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 소년이 훗날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고 세계적인 대부호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노벨 평화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답답한 일을 당한다 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속에 보배로우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본문 9절에“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본문을 쓴 저자이며, 복음을 전하고자 일생을 바친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받은 핍박에 대하여 표현하기를“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린도후서 11:23-27)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악한 영들과 싸우는 싸움터입니다. 불신앙과 싸워야 하고, 죄악과 싸워야하고, 염려와 근심과 싸워야 하는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키시며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파 가운데 구세군이 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길거리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자선냄비로 구제운동을 펼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운동을 구세군에서 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의 창설자인 영국의 뿌드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정부군의 추격을 받아 동굴 속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눈을 떠보니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입구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거미줄은 동굴입구를 다 막았습니다. 마침 그 때에 군인들이 몰려와서 수색을 하다가 동굴입구의 거미줄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뿌드는 말하기를“여호와는 택한 백성을 위하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하셨습니다.

혹 신앙생활로 인해 핍박을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반드시 지키시며 이기게 하십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본문 9절에“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 대표적인 분이 우리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섬겨야 마땅할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도록 결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죽은 것을 확인하고도 혹시나 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확인사형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는 피와 물이 다 흘러 내렸습니다. 무덤에 장사지낸 후 큰 돌로 무덤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로마 군병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철저한 거꾸러뜨림이었습니다. 확실한 거꾸러뜨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셨습니다. 무덤의 돌은 모래알처럼 굴러갔습니다. 기세당당하던 로마 군병들은 무서워 도망을 쳤습니다. 인간에 의한 거꾸러뜨림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인간의 막다른 골목은 하나님의 활동하시기에 좋은 시기이다. 인간의 막다른 골목은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좋은 기회이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막다른 궁극의 때는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한계점은 하나님의 시작점이란 말입니다.

서양 속담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쓰던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하는데“이것은 팔지 않음”이라고 붙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낙심”이라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실패하도록 미혹하는데, 낙심케 하므로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낙심하여 포기하므로 실패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지 못하는 조급함입니다. 서양 격언에“참는 것은 아픈 곳에 바르는 고약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처에 바른 고약이 그 상처를 치료하듯, 인내는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는 양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30:18의 말씀에“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5:11에는“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하셨습니다.

시편37:7에“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처럼 연약하나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첫째,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둘째,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셋째,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넷째,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소망을 가지고, 힘차게, 용기 있게, 그리고 기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귀한 시간인 2007년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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