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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아직도 늦지 않았다!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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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두 분의 성도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분은 퇴직을 하였고 또 한분은 퇴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봉사해 온 분들입니다. 이제 퇴직할 연령이 되어서 회사에서는 직업 교육을 위탁해서 시키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직종에서 그분들은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분이 기대감이 있고 설레고 있고 흥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오십이 넘어서 육십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대한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자신들의 미래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집니다.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내 인생에 주어진 기회를 붙잡는 것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기회가 늘 내 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는 사람이 성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의 아픔입니다.
몇 개월 전에 저희 교회에서 노회 모임이 있을 때 금강산 랜드라는 위락 시설을 운영하는 장로님이 오셔서 그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초대권을 주셨습니다.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고 목욕시설도 이용할 수 있고 숯가마도 이용할 수 있는 초대권입니다. 기회가 되면 월요일 집사람과 함께 쉬고 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바쁜 일이 겹치게 되어 뒤로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보니까 그 표가 생각이 났습니다. 표를 보니 유효기간이 12월 31일까지인 것입니다. 오늘이 주일이고 저녁에 송구영신예배가 있으니 그 꿈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게 주신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남이나 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회란 나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기회를 잡을 때 그것이 내 삶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기회를 잘 활용해서 한해가 행복했고 만족스러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소원했던 것을 이루지 못해서 아쉬움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이 놀라운 축복의 기회를 맞이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포도원에 심기어진 무화과나무의 이야기입니다.
포도원을 경영하는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중앙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가 잘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열매를 기대하고 3년 연속 확인했지만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실망을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을 관리하는 포도원 지기에게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때 무화과나무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주인님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바꿔 말하면 “한해만 참아 주소서.”라는 말입니다. “제가 무화과나무를 잘 보살피고, 거름을 주고, 골을 파줘서 꼭 열매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때 잘라도 늦지 않습니까?” 그렇게 주인에게 말하는 장면을 오늘 본문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무화가 나무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먼저 무화가 나무는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여러분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는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인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었기에 포도원 중심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지역입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를 심을 땅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좁은 경작지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특별한 관심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에 비해 5-7배의 넓은 면적을 차지합니다.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으면 훨씬 많이 심을 수 있지만 무화과나무는 한 그루 밖에 심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무화과나무를 그곳에 심었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를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이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혜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아브라함을 갈데아우르에서 불러내시고 요셉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의 열매를 맺도록 기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무화과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무화과나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악가운데 심판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은사과 재능을 주셔서 집사요, 권사요, 장로요, 성가대요, 교사요, 구역장이요, 권찰이요, 아름다운 직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특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우리를 옮겨 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화가 나무에서 생각할 것이 또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이렇게 많은 투자를 했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입니까?

우리는 종종 사업할 때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사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별로 큰 기대도 없고 투자도 없었는데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에 장남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도 다니게 하고 레슨도 했지만 대학에 번번이 떨어져서 부모에게 실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에게는 기대도 안하고 투자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고 부모의 마음에 흡족한 일을 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졌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실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봅시다. “과원 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이 말씀에 주인의 실망감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를 심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화과나무는 관상수가 될 수 없습니다. 정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어놓고 멋지다고 그늘을 만들어 주어 좋다고 할 수 있는 관상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땔감으로 쓰일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를 심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열매 때문입니다. 주인이 기대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이 무화과나무는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교사로 성가대로 집사로 권사로 새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가치를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 사람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면서 보는 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그곳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때는 사람들이 뱀을 좋아해서 건강 보조 식품으로 선호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너무 많은 뱀을 잡아서 문제가 될 때가 있었습니다. 뱀이 쥐를 잡아먹는데 뱀이 없으니까 쥐 때가 많아졌습니다. 무언가 역학적인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여러분 뱀도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더기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짐승이 죽으면 구더기가 그곳에 생겨서 그 시체를 화학분해 해서 흙이 되게 합니다. 구더기가 없으면 그곳에서 썩지 않아 그대로 보기 흉한 모습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미물도 다 그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나를 새우신 목적과 이유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는지, 진정 열매를 맺어 드렸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포도원 한가운데 심을 때에는 무엇인가 무언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무화과가 아주 맛있는 열매를 맺어 내게 기쁨을 주겠다는 기대감이 있어 그 약속 때문에 심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주인과 무언의 약속을 어겨버린 결과가 되었기에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고 주인은 잘라 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신문에서 최규화 대통령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분이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그분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 1972년 제 2차 오일 파동이 일어났을 때 강원도 장성 탄광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막장에 들어가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광부들을 격려하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저는 연탄보일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생산해내는 연탄을 나도 열심히 쓸 테니까 여러분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생산해주시기 바랍니다.” 연탄에 대한 애정, 연탄을 생산하는 광부들에 대한 애정을 최규화 국무총리는 그렇게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분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자택에서는 기름보일러를 쓰지 않고 연탄보일러를 써 왔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연탄보일러 쓰는 사람은 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 최규화 대통령은 자기가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고 합니다. 그분은 검소하게 흰 고무신을 밑창이 다 달 때까지 신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40년이 된 라디오를 듣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검소한 삶은 참 존경스럽습니다. 특히 광부들과 한 약속을 다 지켰다는 것은 위대한 인격이 그분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주인이 무화과를 심을 때는 무언가 열매를 기대하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잘라버리라고 주인은 명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게 주인은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일을 잘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  하고 있고 영양분만 먹는 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다른 포도나무에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 무화가 나무 때문에 다른 포도나무들이 잘 자라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심판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인 우리도 주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성실한 청지기가 되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때 주님 앞에서 우리는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게으르고 나태한 청지기처럼 한 달란트를 땅 속에 파묻어 두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내어 놓는다면 우리는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라고 주인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심판의 때를 생각하면서 오늘 내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무화가 나무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과원지기의 아름다운 중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여러분 주인은 찍어버리라고 하지만 이 과원지기는 무화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다시 말하면 한해만 더 참아 주소서. 한해만 더 여유를 두시면 제가 더 거름을 주고 잘 관리해서 내년에는 꼭 열매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이 과원지기의 중복적인 요청에 주인은 허락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과원지기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 한해를 돌아볼 때 잘못한 일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고 게으름으로 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가 나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찍어 버릴 수도 있지만 왜 우리에게 한해를 참아주시고 새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인 기도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운데 우리에게 대망의 새해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용기를 가지고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해는 무화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꼭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오늘 과원지기는 거름을 주고 두루 판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안에 우리가 거할 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마음에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무화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그냥 찍어버리면 끝이 나지만 과원지기는 애정을 가지고 정성껏 거름을 줍니다. 그 나무를 잘 손질하고 가지치기를 하고 열매 맺도록 사랑을 쏟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가지고 새해를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올 한해를 살면서 어렵고 힘들었다고 실패하고 절망적인 삶에 그대로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해야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처칠경이 제 2차 대전 때 몹시 나라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에 빠질 때 한 대학에서 연설을 했는데 아주 유명한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가장 짧은 세 마디 연설을 했습니다. "Naver give up! Naver give up!  Naver give up! " 다시 말하면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세 마디였습니다. 그것이 세계 역사 속에 남긴 가장 짧고 위대한 연설이었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한해를 살아 오셨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선물을 가슴속에 담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은총의 선물을 주어졌다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비유들은 각자의 메시지가 있는데 여러분 열 처녀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열 처녀가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데 새벽에 신랑이 와서 처녀들이 갑자기 등을 켜고 나가는 데 기름을 다 쓴 처녀들은 기름이 다 떨어져 동네에 가서 기름을 준비하고 왔더니 이미 문이 닫히고 결혼식은 시작되어서 들어 갈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어떻습니까?
이 부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교만과 방탕함으로 살아가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눈을 들어 보니까 하나님을 섬기던 가난한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곳에 가게 해달라고 하니까 아브라함이 너와 나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오고 갈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화가 나무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새해라는 은총의 선물을 또 한 번 주셨기 때문에 열매 맺을 수 있는 새해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내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리지 마시고 그 기회를 잘 활용 할 때에 우리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날아다니는 조류 중에 가장 장수하는 새가 솔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솔개는 평균 70년을 산다고 합니다. 장수하는 동물입니다. 솔개는 아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짐승을 잡아챕니다. 그런데 사십 살이 되면 이 발톱이 다 낡아져서 힘을 못 쓰게 되고 날카로운 부리가 너무 휘어지고 길어져서 쓸모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깃털이 너무 길어져서 무거워서 재대로 날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죽을 준비를 하느냐? 아니면 다시 갱신하는 과정을 거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갱신하는 과정은 자신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고행의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다시 살기를 원하는 이 솔개는 높은 산 정상에서 둥우리를 만들고 단단한 바위에 자기 부리를 부셔서 갈아냅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새 부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 새 부리로 다시 자기 발톱을 다 뽑아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발톱이 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깃털을 다 물어 뜯어버립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새로운 깃털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30년을 더 살아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새로운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시금 우리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다시금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새해는 우리에게 축복의 새해가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열매 없는 부끄러움 때문에 주님 앞에 꾸지람 받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목적의 열매를 맺어서 주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기쁨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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