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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절과 영적 전쟁 (고후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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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이브를 즐기던 부부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다. 서로 말도 않고 썰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차창 밖으로 개 한 마리가 얼쩡거리는 게 눈에 띄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빈정대며 말했다. “당신 친척이잖아, 반가울텐데 인사나 하시지.”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가 그 개에게 소리쳤다.
“안녕하셨어요! 시아버님~!!!”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남편은 뭐가 되는가? (유순한 말로 하면 개자녀가 된다) 이렇게 막가는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여러분은 성탄절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성탄절은 우리들에게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을 준다. 하얀 함박눈. 새벽송. 성탄절 카드. 감사하는 마음. 사랑의 선물. 나눔. 웃음. 평화....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볼 때도 성탄절의 모습을 아주 고요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그린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가사처럼...

  물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들에게 평화와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고 안락하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한 가지 사실에만 너무 치우쳐서 다른 한 쪽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다.

2. 여러분은 오늘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영적인 시각에 따라서 세상을 다르게 본다. 만약 우리들에게 ‘영적전쟁’의 안경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과 내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저는 요즘에 영적전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림절에 어울리지 않는 관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영적전쟁에 관심을 가지고, 영적전쟁에 대해 민감해지고자 한 다음부터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그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대림절을 보내고 성탄절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또 다른 세계가 내 앞에 펼쳐졌다.
  저도 여태까지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성탄절을 바라보고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탄절은 내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 날은 내게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날이었다. 그 날은 내게 싸움보다는 편안한 쉼을 약속한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탄절을 이해했고, 또 그렇게 설교해 왔다.

3. 우리가 하는 영적 전쟁의 대상은 누구인가? 성경은 우리의 영적 싸움의 적이 ‘사탄’이라고 알려 준다. ‘사탄’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는 단어이다. C. S 루이스가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사탄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사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극단적 견해가 있다. 하나는 늘 사탄을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모든 것을 귀신과 연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사탄의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강력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후자이다. 사람들은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그런 거 믿으세요? 사탄은 허구예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그 말이라는 것을. 사탄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무시해 버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사탄은 확실히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터 한 가운데 서 있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마다 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다.”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사탄은 비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인도 가리지 않는다. 사탄은 모든 사람을 파멸시키고, 좌절하게 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 믿는 우리들은 사탄이 가장 주시하는 목표물이다. 사탄이 우리를 주시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사탄은 상황에 따라 우리 마음을 공격하기도 하고, 육체를 아프게 하기도 한다. 급기야는 경제적인 고통과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 마음과 영혼을 연약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사탄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는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치밀하고 교활하다. 사탄은 논쟁과 불화와 의심과 속임을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사탄이 많은 방법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사탄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일까? (고후 4:4)을 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사탄의 모든 계획과 작전에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는 것.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온 세상에 충만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취하실 영광을 가로채는 것.” (요한복음 1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빛으로 왔지만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그 빛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사탄은 이것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것의 그의 존재의 이유다. 반면에 요한복음 기자와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 영광의 빛을 본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친밀함을 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길 원하시며, 영원히 우리와 함께 동행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사탄은 이에 대항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사탄은 예수님이 구원자시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람들이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감추고 왜곡시키려고 한다.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있다면 모슨 짓이라도 서슴치 않고 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요 10:1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사탄은 우리가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사는 꼴을 못 본다. 사탄은 어디든지 쫒아가서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아름답고 풍요로워지는 것을 방해하고 파괴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4. 이제 다시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그 성탄의 첫 날로 되돌아 가보자. 천군천사가 화답하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오고, 목자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한다. 유대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그 속에는 어떤 두려움도 없다. 평온하다. 고요하다.

  이제 영적 전쟁의 안경을 쓰고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보자. 그 아기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분은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죄에 빠진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죄에 빠지도록 사람의 마음에, 가정에, 일터에, 이 세상에 자기 연민과 오해와 미움의 악한 미끼를 던지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결박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은 그렇게 고요하고 평온했지만 그 반대쪽의 진영에서는 소란이 일어나고, 이 세상이 꺼질듯한 탄식과 사자 같은 울부짖음이 가득한 것이 여러분의 귀에는 들리는가? 바로 사탄의 진영에서 흘러나온 소리다.

  어떤 사람이 선교사로 나가게 되면 다른 선교사 선배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니라 사실임을 깨닫는다고 한다.
  당신이 선교지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면, 백발백중 지금까지 당신이 겪어보지 못한 강한 영적 공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곳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곧 사탄의 땅을 침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영적 황무지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침입자이고, 사탄은 자기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5. 성탄절은 고요하고 한가한 날이 아니다. 그 날은 우리 하나님께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사탄을 향해서 선전포고를 하신 날이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사탄을 향해서 “너는 패배했다”고 선포하신 날이다. 성탄절은 사탄이 “어찌할꼬! 어찌할꼬!” 탄식했던 날이다. 성탄절은 사탄이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알게 된 날이다. 성탄절은 사탄이 하나님은 결코 대적할 수 없는 만왕의 왕이 되심을 알게 된 날이다.

  우리가 성탄절에 진정한 평안, 샬롬의 인사를 나누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성탄의 계절에 기뻐하는 것은 캐럴 때문도 아니고, 선물 때문도 아니다. 시청 앞 광장의 아름다운 성탄트리를 보아서도 아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를 자유케 하고, 우리를 구원함으로써 사탄의 왕국에 카운터펀치를 날린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기뻐하고 노래하는 것이다.

6. 우리들은 알고 있다. 내 힘으로는 결코 사탄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사탄이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과 사탄이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탄이 마치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사탄은 비록 적의 관계일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창조된 존재요, 유한한 존재이다. 사탄은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알지도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고, 무한하신 분이다. 능력과 권세와 영광에 있어서 사탄은 하나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탄은 이미 패배한 적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 그리고 부활의 사건이 이미 사탄의 운명을 영원한 불 못에 고정시켜 버렸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은 사탄에게 무서운 적이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에는 사탄이 발붙일 곳이 없다. 때문에 사탄은 항상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악한 삶을 주입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별시키시고, 사탄의 공격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호하신다.

6. 어떤 아이의 일기장에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 엄마는 연하 아빠와 결혼한 커플이다. 우리 아빠가 겨우 한살 아래지만 우리 엄마는 늘 자랑이다. “나 영계랑 살아~”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
그런데 나는 아빠가 엄마한테 '누나'라고 부르는 건 단 한 번도 본적이 없고, 누나 대접해 주는 것도 본적이 없다. 우리 엄마 아빠의 대화는 늘 이렇다.
아빠 : 어이, 와이셔츠 다려놨어?  /  엄마 : 네에~ 그럼요.
아빠 : 어이, 신문 좀 가져와!    /  엄마 : 아, 예! 갔다 드리죠.
  그래서 나는 아빠는 거실에 있고, 엄마가 부엌에서 과일을 깎고 계실 때 물었다.
“엄마, 엄마보다 아빠가 더 어린데 왜 아빠는 반말하고, 엄마는 존댓말을 해?”
그러자 엄마는 손가락으로 아빠를 가리키면서 귀에다 대고 내 귀에 속삭였다.
“안 그럼 쟤 삐져~”

  예수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하자. “왜 당신은 그렇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 맘대로 사는 저런 인간들을 위해서 그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를 놔두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죠?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는 저런 사람들을 위해 왜 당신은 당신의 목숨을 드린 것입니까?”
  예수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대답하실 것이다. “안 그럼 재 삐져”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 그럼 쟤 빠져!”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이다.
“안 그럼 쟤들 죄에 빠져 죽어! 그렇게 안하면 저 어린 양과 같은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리와 같은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그렇게 멸망하고 말거야!”

7. 오늘 사탄은 이 성탄의 계절에 사람들의 마음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면서 미소 짓고 있다. 성탄절이 세상의 물결에 휩싸여 가는 것. 그저 흔들리고, 향락에 치우치고, 들뜨게 함으로써 성탄의 의미를 혼미하게 하는 것. 성탄과 복음의 의미가 이 세상 문화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만드는 것.

  그러나 성탄절은 그런 날이 아니다. 영적전쟁의 눈을 뜨고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삶의 중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권세와 은혜만을 담고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만이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든든한 성벽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듣는다.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그러므로 우리도 외쳐야 한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우리는 이 풍부한 능력과 영광스러운 신앙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성탄절은 주님과 함께 하는 영적전쟁의 깃발이 오른 날이다. 성탄절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으므로 어떤 영적싸움에서도 승리한다는 승리의 기념일이다. 성탄절은 결코 “사일렌 나잇, 홀리 나잇”만이 아니다. 성탄절은 ‘메모리얼 데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기억하라. “주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양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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