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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면으로 부터 시작되는 변화(롬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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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롬12:2)

* 군바리가 변해가는 과정 5 단계
  - 간부가 불렀을 때...
1. 이병 : ' 눼아~ 이병 홍 . 사 . 붐 . 부루셔쑴뉘꾸아~~ '
2. 일병 : ' 넷! 일병 홍.사.붐! '
3. 상병 : ' 상병 홍사붐. '
4. 병장 : ' 저 말입니까..? '
5. 말년 : ' 또 왜여.. ' -_-+

* 부부의 잠자리 상태
20대 부부는~ 포개져서 잔다. 30대 부부는~ 마주보고 잔다.
40대 부부는~ 천장보고 잔다. 50대 부부는~ 등 돌리고 잔다.
60대 부부는~ 딴방에서 따로 다로 잔다.
70대 부부는~ 어디서 자는지도 모르고 잔다.

마르셀 프라우스트라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세상은 변화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있다. 그것은 “언제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변화의 요구를 무시하며 살 수 없다. 우리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변화는 세상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행동의 변화를 지향한다.  “당신이 가진 태도가 당신의 성공을 결정한다.”, “우리가 마음 속에 품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달성할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방식과 개인과 대중을 상대할 때,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데 치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변화 즉 내면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롬12장2절에 “오직 너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하고 있다. 내면의 변화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일어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변화는 변화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사람의 변화에서 일차적인 요소는 내면이다. 행동의 변화는 이차적인 요소이다. 잠언4장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다. 내면의 마음이 변할 때, 외적인 행동이 변하게 되며 그런 변화가 진정한 변화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먼저 마음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스티븐코비는 이런 내면의 변화를 가리켜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했다. 패러다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방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세상(사실)을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觀點)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신자와 불신자의 해석이 다르다. 신자는 성경중심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지만 불신자는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고 이해한다. 이것은 곧 패러다임의 차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변화 관리 전문가 구본형씨는 「낯선 곳에서의 아침」에서 “변화는 욕망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변화는 우리 내면에 욕망이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가장 기초적인 상태는 ‘욕망’의 에너지 수준이다. 욕망은 본능적이다. 그리고 광범위한 동기이다.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생의 원동력이다. 이것 만큼 강력하고 전 생애를 걸쳐 지속적인 힘은 없다.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욕망을 되찾게 되면, 무기력과 슬픔을 이기고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원하는 마음을 가진 다음에야 인간은 성취로 가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을 되찾는 작업이 변화의 시작점이다.”

여러분! 욕망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의 변화의 출발점은 구본형씨가 말하는 ‘욕망’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돈, 명예, 권력이 인간 내면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변화는 변화 필요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시작된다. 우리는 변화를 원하지만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변화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변화되었다. 고후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가 이루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니고데모를 보라. 그는 가장 변화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니 변화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었다. 변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되었다.

영적인 변화는 종교적인 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의식의 변화, 사고방식의 변화로 나타난다. 우리가 복잡한 도시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운전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변화된 도시 지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 처음 가보는 지역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저는 지금도 시화공단에 가면 여전히 헤매고 다닌다. 왜냐하면, 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시화공단의 경우에는 건물과 거리가 다 비슷해서 처음 가는 사람들은 목적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네비게이션이나 지도가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인생여행에서 필요한 것은 좋은 차가 아니라 정확성을 가진 네비게이션이나 지도이다. 영적인 변화를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가치관의 지도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정확성을 가진 네비게이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변하지 않는 원리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다고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예의나 윤리가 점점 무너지는 것도 변화는 변화이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다. 타락이다. 이런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원리 즉 변하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지하철에서 전동차끼리 스칠 때, 순간적으로 어느 쪽이 움직이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고정된 건물의 표지판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변화하되 바람직한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변치 않는 ‘원리’이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변적인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하나님이시다. 야고보서1장17절에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변하지 않는다. 베드로 전서1장23절에서 25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고 했다. 
이 진리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이 진리는 자연법칙이다.
성도 여러분! 긍정적인 변화는 얻기 원하다면, 변하지 기준을 적용하라. 여러분의 패러다임이 원리에 가까울수록 더 정확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성도 여러분! 바람직한 변화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변화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분별하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커다란 변화를 순간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원리에 따르는 변화는 점진적이며 단계적이다. 우리의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변화되지만 우리들의 삶은 평생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를 포기하지 말라. 인내로써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로 변화를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변화를 통한 퇴보가 아니라 성장으로 이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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