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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잿더미 위에서 (삼상 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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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금년 한해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분수령에 서서 각자가 느끼는 것도 다양할 것이고, 또 생각하는 것도 많은 차이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특별히 여러분 각자가 처한 형편이 어떤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집니다. 이 시점에서 살아온 한해를 돌아보는 심정이 어떠하신지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있을 것입니다. 세월의 빠름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금년한해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세월을 보냈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년한해 내 인생이 후퇴하거나 내 삶의 터가 망가진 실패감으로 한해를 결산해야 하는 가슴아픈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하신 분들, 건강에 실패하신 분들, 혹은 인간 관계에 실패하신 분들, 그 결과로 가정이 망가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잃고 방황의 한해를 보내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좀 더 지혜로운 자라면, 성경 속에 나타난 인물들을 묵상하면서 당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며 헤쳐 나갔는지를 알아보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성령께서 조용히 그들의 삶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조명해 주시면 그들의 일거일동 속에서 바로 우리 자신을 비춰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나옵니다. 다윗이라는 인물을 만나면 금방 그에게 매료되어 가슴 가득히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완벽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와 대동소이한 결점 투성이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에 쉽게 와 닿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함께 대한 사무엘상 30장에는 파란만장했던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암담한 한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한때 사울왕의 눈을 피하여 블레셋 나라로 정치 망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센 왕의 호의로 시글락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성을 주거지로 허락 받았습니다. 얼마 후 불레셋 군대가 사울 왕이 집권하고 있던 유대를 공격하기 위해 원정을 떠날 때 다윗도 어쩔 수 없이 연합군이 되어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전한지 3일만에 블레셋 사령관들에게 미움을 사서 중도에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들이 시글락으로 돌아오자마자 기가 막힌 정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온 성은 불타서 잿더미가 되고 처자들은 전부 다 사로잡혀 가버렸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만이 그들을 맞았습니다. 그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던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잿더미 위에서 울 기력조차도 없을 정도로 소리 높여 통곡했습니다. 4절에 보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형편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다윗에게 생명을 걸고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이 돌을 들고 그를 치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궁지에 몰리자 다윗은 "크게 군급(窘急)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요즈음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 몹시 군색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진퇴양난을 맞은 것입니다.

그때 다윗의 심정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해 보십시오. 그가 쓴 시편의 한 구절에서 당시 그의 심정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시102:6,7에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뭐, 광야의 당아새, 황폐한 곳의 부엉이, 밤새도록 외롭게 앉아 떨고 있는 지붕 위의 참새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그 감정은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고독하고 처절하였는가를 느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윗은 아직도 20대입니다. 그는 어린 소년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람입니다.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싸움터에서 그가 세운 전공으로 모든 이스라엘 앞에 추앙을 받던 영웅이었습니다. 너무 특출해 버리니까 왕으로부터 질투를 받아서 이제는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연단하기 위해서 주신 한때의 괴로움이었는데 그 한때라는 것이 수십 년처럼 길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반체제 인사들이 얼마나 외롭고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용어로 다윗은 반체제 인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나 아니면 억울한 일을 당해 한을 품고 살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어 약 600여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산 저 산으로 도망 다녔습니다.

사울 왕은 사방에 정보원을 풀어놓고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의 뒤를 쫓아 다녔습니다. 다윗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였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 하나만 가지고 견디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다. 그는 반드시 나를 왕으로 세우실 것이다" 이 믿음 하나 가지고 다윗은 여려해 동안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짧은 고통에는 강하지만 긴 고통에는 약합니다. 이 점에서 다윗 역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지치고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왕은 아직도 건강하고 젊어 보입니다. 그 왕이 죽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막연해 보입니다. 현실은 어디를 가나 쫓겨 다니는 사람에게 냉정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삼상27:1에 보십시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실은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유대나라 땅 안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와도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그는 유대 나라 땅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너무 오래 가니까 그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자기에게 왕이 되리라고 약속을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다윗은 이 약속을 끝가지 믿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손에 망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왕이 될 사람이 사울왕에게 망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장차 이스라엘의 큰 지도자로 삼을 사람을 하나님이 죽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해지니까 하나님의 약속도 마음을 붙들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하는 국경을 넘어서 블레셋에 정치적인 망명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충격적인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누군지도 잊어버립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삶의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헛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은 자기가 행했던 모든 일들을 부정하게 되며 그것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합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들을 다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심지어는 세상을 떠나고 싶은 유혹까지도 받게 됩니다. 그 믿음 좋은 다윗도 그냥 주저앉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묻습니다. 시글락의 잿더미 위에서 다윗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잠깐동안 자기 명철을 의지하고 자기의 판단을 앞세우고 길을 가다가 남은 것이 무엇이냐 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윗의 경험을 통해 엄숙한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좀 쓰다가 다 내버리고 갈 세상의 것 가지고 우리의 귀한 영혼을 망치는 일을 하나님이 허용치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 지어놓고 살고 아무리 명예스러운 위치에 올라앉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얼마동안 즐길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젊고 건강하다고 큰 소리쳐도 그것이 얼마나 지탱될지 보장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의 영혼을 망쳐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오랫동안 쫓겨다녀도 그 믿음의 생활을 끝까지 견지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성의 여러분! 이 하나를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영원한 나라의 백성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성자들이요,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의인들입니다. 이와 같은 고귀한 신분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먹은 에서와 같이 함부로 취급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중에는 다 털리고 잿더미 위에 앉아버립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나는 불레셋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아! 나는 지금 시글락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하는 가책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자가 있으면 하루 빨리 생활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인생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닥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것에 따라 이 괴롭고 힘든 상황이 그저 괴로움과 절망과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냐 아니면 발전적인 기회로 승화되느냐 판가름나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재계를 굉장히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랜드의 박승수 회장은 1975년 대학 4학년 때에 근육 무력증이라는 병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병은 근육의 마비가 서서히 몸 전체로 확산되어서 죽는 병입니다. 의학이 발달한 현재에도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자연히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독서를 하기 시작했는데 2년 동안 무려 3000권의 책을 읽었고, 이것은 박 회장의 눈을 뜨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오늘날 회사를 경영하는데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갖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년 넘게 끌었던 질병은 하나님께서 그를 만지셔서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2년 동안에 읽었던 3천 권의 책을 통해서 자신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지, 내가 기업을 하면 어떤 기업을 할 것인지, 내가 하나님 안에서 살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익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게 주어진 그 좌절감과 절망감 고통과 아픔만 바라보지 않고 그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롭게 도전 받아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제한 된 환경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짧은 세월 동안에 굉장히 많이 발전되었지만 IMF이후에 많은 시련도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여성상은 가정에서 살림만 하고 돌봄을 받고 가정 안에서 자녀들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IMF를 겪으면서 인생에 실패하여 자포자기하는 남편을 버려 두고 여성들이 직업전선에 뛰어들어서 가정을 다시 살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예전의 청순 가련한 스타일의 여자분들이 변하여 갑니다. 그래서 이 아줌마들의 돌변을 조크로 나타낸 것이 있습니다. 조폭과 아줌마가 같은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조폭과 아줌마의 같은 점이 무엇인가? 첫째는 둘 다 검정 옷을 입고 다닌다. 둘째는 둘 다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셋째는 둘 다 윗사람을 얼마 만나지 않아서 형님이라고 부른다. 둘 다 칼을 쓴다. 그리고 둘 다 문신 (눈썹)을 하고 다닌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자기에게 오는 시련의 칼날 앞에 자기운명과 도전하는 아내의 강인함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들은 얼마나 더 많이 깨어졌고, 이 사회는 병들었을까요?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자기와 가정의 처참한 상황을 극복하며 운명의 도전 앞에 열정적으로 싸워나가는 이 시대의 아줌마들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요 ?

지금 다윗은 자신의 한 순간의 실수로 잿더미가 된 현실 앞에 마냥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 역시 방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행히 이런 상황을 신앙으로 대응합니다. 6절하반절에 보면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여기서 믿음의 사람이 차이가 납니다. 그의 부하들은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원망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물론 그도 목석이 아닌지라 잠시 슬퍼하고 눈물도 흘리기는 했습니다만, 결국은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하고 해결을 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갖고 갑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미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는 그것을 가지고 세상으로 뛰쳐나가거나 혹은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삼상28: 보면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삼상28:5절에 "사울이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 마음이 떨린지라" 여기까지는 문제없습니다. 그도 왕이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엉뚱하게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과거 정권 초기에 자기 손으로 우상 섬기는 박수, 무당을 다 쫓아내고서는 이제는 제 발로 무당을 찾아간 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포와 근심으로 더 괴로워지고, 마침내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쟁이 나서 그의 인생이 비참해진 게 아니라, 그 이전에 그에게 신앙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만일 그에게도 다윗과 같은 아름다운 신앙이 있었다면 역사도 달라지고 그의 인생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생겨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눈앞이 캄캄한 현실 때문에 망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다윗은 신앙의 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궁지에 몰리자 즉시 하나님 편으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아는 사실입니다만 본래 믿음을 가졌던 사람은 좀 잘못되어서 왔다갔다해도 완전히 코너에 몰리면 결국 하나님을 다시 찾아옵니다. 별도리가 없으니까요. 세상사람은 급하면 지푸라기를 잡는다지만 우리는 지푸라기 같은 것은 잡지않아요, 예수 믿는 사람은 급하면 하나님을 잡아요. 점 염치가 없어 보이지만 죽게 되었는데 염치 찾을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시편을 보면 다윗처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하고 자주 부른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공중에 떠있는 구름처럼 막연하게 부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아직 무엇인가 기댈만한 것이 우리에게 남아있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힘으로 체험이 되지 못합니다. 다윗처럼 잿더미 위에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버려야 드디어 하나님은 나에게 능력으로 체험이 됩니다. 다윗은 잿더미 위에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드디어 그의 하나님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세요. 그는 어느 날 그의 심령 깊은 곳에서 한 줄기 샘물처럼 신앙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2).

프로이드가 이런 말을 했는데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채우는 것이 없이 잃어버리는 것은 없다." 더운 공기가 나갈 때는 반드시 찬 공기가 들어와 그 자리를 채웁니다. 우리가 빈손이 될 때는 반드시 그 빈손에 무엇인가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빈손 그대로 남아있는 법이 없습니다. 다윗 보세요. 처자 다 잃어버렸지요? 재산 다 잃어버렸지요? 동지들이 변심할 위기를 맞았지요? 이렇게 자기 손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 대신 채워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깨끗한 믿음, 새로이 용솟음치는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삼상 30:8을 보십시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정녕 도로 찾으리라" 얼마 후 그는 잃은 것을 다시 찾았고 그 위에 많은 재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텐레스 다인이라는 한 나병환자가 있습니다. 나병으로 눈도 잃고, 손가락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절망 속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무엇인가 조그만 일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가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볼 수도 없고 손도 다 뭉그러진 자기로서는 남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게는 건강한 정신이 있음을 깨닫고는 이것이라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귀로 듣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녹음기를 갖다놓고 자기가 살아온 비참한 생을 녹음해서 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마침내 "이제는 외롭지 않다"는 책을 써내어 온갖 불행에 처해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하는 대신에 남아있는 것을 찾아 최대한 활용해야한다" 눈이 멀고, 손가락이 다 뭉그러진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로 하여금 절망케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쓰라린 기억들이 오늘도 나를 괴롭히지만 그 기억이 나를 주장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나를 죽게 하며 나의 미래를 망치는 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하시고 말씀이 내 속에 흐르게 하세요. 그러면 말씀이 나를 세우며 붙들어 주시며 다시 시작하게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전보다 훨씬 더 피곤하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그 분이 내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는 결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만 있다면, 그리고 나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기를 원하는 용기와 꿈만 있다면, 비로 이 한해를 살아오면서 힘들고, 지치고, 어려움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할찌라도, 비록 여러분의 자리가 실패의 자리라 할찌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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