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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사랑하자 (요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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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자 / 요 13:1-11

오늘 말씀은 모든 사역을 마칠 즈음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하신 일들 중에서 함께 주목하며 나누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분명히 일러줍니다. 1절입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즐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랑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사실 주님은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십니다. 끝입니다. 죽음입니다.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랑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주님은 지금 제자들을 챙길만한 여유가 없을 법합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제자들의 신앙상태를 보면 그들을 사랑할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특히 사랑했음에도 예수를 판 가룟 유다를 생각하면 더더욱 사랑이 사치다 싶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1.예수님은 끝까지 종이 되어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4,5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고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음식을 먹는 중에서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의 역할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종이 되어서 제자들의 가장 낮은 발을 씻으면서 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종이 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높아지는 자리에 오르기를 좋아합니다. 남에게 높임을 받고 섬김을 받고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자원하여 종이 되어 제자들을 발을 씻기면서 섬기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사랑의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종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servant 입니다. 이 말의 동사는 “섬긴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종이 되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간관계가 왜 망가집니까? 왜 사랑이 깨어집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종노릇하지 않고 주인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서로 왕대접 받으려고 하면 가정이 깨어집니다. 교회에서 서로 왕대접 받으려고 하면 교회가 깨어집니다.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우리이 인간관계가 사는 법은 오직 사랑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종이 되어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성령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으로는 우리의 욕심으로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건 “끝까지”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사랑하는 것 같았는다. 조금 지나면 좌절하고,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꾸 우리가 연습하고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왕의 근성인 뻣뻣하고 완고한 우리의 목을 꺽고 먼저 숙이십시오 먼저 낮아지십시오 먼저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낮아짐으로 섬기는 훈련을 자꾸 하셔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그곳에 생명이 회복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섬기는 그 곳에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끝까지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마5:44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모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것으로 보아서 가롯 유다의 발도 주님이 씻기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아예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가롯 유다의 발을 씻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가롯 유다의 발을 먼저 씻겨 버리면 다른 제자들의 발은 더욱 쉽게 씻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자세로 사랑을 베풀면 모두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우리가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누구입니까? 서로 사랑하다가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모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알았지만 미워하게 된 사람들이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들을 원수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사랑을 주었는데 저 사람은 나의 기대만큼 사랑을 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배신할 때 그 상처가 큽니다. 주님께서는 유다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파는 제자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같은 속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롯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역사하였습니다. 마귀가 가롯유다를 이용한 것입니다. 가롯유다도 마귀의 희생물인 것입니다.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용서합니다. 내가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내가 남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용서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3. 주님은 끝까지 인내가 있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6절에 보면 베드로가 질문합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주님은 이 베드로에게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 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베드로는 왜 주님이 발을 씻어주시는지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인내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을 실망시키는 베드로에게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면서 우리자신들의 기대와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는 비난하기 쉽습니다. 화를 내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비난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미래에는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넓은 마음과 믿음의 마음과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진정 믿지 못하는 마음, 인내와 희망이 없는 마음으로는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됩니다. 지금 비록 불완전하고 허물과 문제가 있어도 인내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다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급함”을 갖고 있으면 안됩니다.

종종 사랑을 실천하다가 낙심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급한 사랑은 병든 것입니다. 오늘 결실을 얻겠다고 덤비는 사랑도 변질된 사랑입니다. 믿음이 결여된 사랑은 타락한 것입니다. 주님은 묵묵히 이 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죽고, 부활하며, 성령이 강림하시게 될 때, 베드로가 모든 것을 알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해갈 때 조급해서는 안됩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때가 있습니다. 너무 우리가 조급하고 성급하면 쉽게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좀 더 인내하면서 우리가 관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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