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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행 4:3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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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행 4:31, 19:20) 

흔히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는 1:8절의 말씀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 설명한 것과 같은데,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임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게 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님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용어 사용빈도에서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성령’이라는 용어는 49회, ‘주의 영’은 2회, ‘예수의 영’은 1회 사용되었는데, 이는 복음서 전체를 합한 45회(마 12회, 막 6회, 눅 16회, 요 11회)보다 많습니다. 따라서 복음서가 예수님의 행전이라면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성령님께서 사도들을 증인으로 삼아 무엇을 증거 하게 하셨을까요? 사도행전 1:3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신 사실을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구절인 28:31절에서도 역시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고 있음을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전체가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로 감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가고 있는지를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의 전체 내용임을 말해줍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사도행전 28장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의 후예인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는 것이 기본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하나님 나라’의 증언과는 상관없이 단지 개인의 병을 고치고 기적을 체험하는 일로 축소해가고 있지 않는지 우려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인격적인 존재라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왜곡해서, 마치 신비한 세력처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곳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고만 생각하는 안타까운 경향이 일반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핵심에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28:31)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주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도행전을 ‘말씀 행전’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땅 끝까지 퍼져나갔는가를 말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성령께서 강력히 역사하시는 곳에는 우리 주님에 관한 바른 가르침이 풍성하며, 그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습니다. 이 시간에 사도행전 전체를 훑어보면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분의 증인으로서 바른 자세를 확립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임하셨을 때, 그를 본 사람들 중에 새 술에 취한 것으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2:13).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사람과 술에 취한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엡 5:18). 그 중 하나가 ‘담대해지고 말이 많아지는 현상’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 당국자들이 무서워서 숨어 지냈습니다. 감히 한 마디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2장을 보면, 오순절 강림 때, 성령께서 임하시자 그들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도록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핍박자들이 여전히 살기등등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4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법정에 잡혀가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를 받습니다(4:18). 풀려난 사도들은 동료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4:29)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위협의 상황은 여전했으나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4:31)

성령께서 임하실 때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열한 사도들뿐만이 아닙니다. 7장을 보면 성령에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는 담대히 말씀을 증거하며 첫 순교자가 됩니다(6:10, 7:55). 8장에서는 큰 핍박 때문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진 예루살렘 성도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기록합니다(8:4).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 때문에 핍박이 생겼고, 이 때문에 성도들은 졸지에 도망자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고 사업에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믿고 신세 처량하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가 잘된다는 식으로 전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두루 다니며 담대히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파하는 일 또한 일어났습니다. 8장을 보면 빌립 집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마리아 성에 전파했습니다. 8:14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라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었습니다. 원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는 민족적인 반감이 매우 심한 곳이었습니다. 사도 요한도 한 때 하늘에서 불을 내려와 사마리아 사람들을 확 멸망시켜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눅 9:54). 일본이 침몰해버리기를 은근히 바라는 다수의 한국인들의 마음과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셨을 때, 요한은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8:25).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복을 빌어주고 싶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 셈입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잘 믿고 있던 기존의 성도들 뿐 아니라, 성도를 핍박하던 자들까지도 회심하여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9장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하고 예루살렘 성도들을 핍박했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는 핍박 때문에 흩어졌던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해서 핍박한 지독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심합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제자로 사울에게 안수하게 했습니다. 사울은 안수를 받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는데, 그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전파했습니다(9:17-20, 27).

이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는, 누구든지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공통적인 현상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서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환경을 핑계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핍박을 받았다고 위축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말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학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확신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계속 선포되자 자연스럽게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오순절에는 3,000명이 세례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2:41). 제자가 된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통용했습니다. 그러한 공동생활을 보고 백성들은 칭송하기 시작했고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더했습니다(2:42-47). 4장에서도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믿는 무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고,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 무리들은 큰 은혜를 받았다고 기록합니다.(4:31-32)

하나님 나라는 말씀이 왕성해지면서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6:7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기록합니다. 이 제사장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자들을 핍박하는 핵심세력으로 언급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핍박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었습니다. 12:24절에서는 유대지역의 하나님 나라 확장 사역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라는 말로 마감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중심으로한 이방인 사역에도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고 평가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교회의 부흥이 인간이 고안해낸 어떤 참신한 프로그램 때문이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몇몇 헌신적인 사람들 때문이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부흥은 오직 ‘주님의 말씀이 힘이 있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이 담대히 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주의 말씀이 힘 있게 자라고 널리 세력을 얻었습니다. 담대히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사람들은 회개하였고 그 삶이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돌이켜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의 증인으로 살기 원한다면,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한다면, 참으로 사람들의 회개하고 삶이 변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먼저 말씀이 흥왕해지고 세력을 얻는데 승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기만 하면 혹은 기도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부흥하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령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4:31절과 10:44절을 보면, ‘성령 충만’은 ‘기도하는 것’이나 ‘말씀 전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사에서 참된 부흥 역시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때였고, 기도에 관한 열정도 특별한 때였습니다.

때로 성령님께서는 당신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위해 특정 지역이나 특정 대상에게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려고 하나 계속 막히고 이상하게 세력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16: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아시아 선교를 위해 매우 열정적이었지만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선포 대상과 방향이 바뀌었을 뿐, 말씀 선포 자체를 계속 되었습니다.

올해 우리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 특별히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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