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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영의 법칙으로 살아갑시다 (고전 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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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의 법칙으로 살아갑시다.
본문 / 고전 2:12-15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상반된 법칙이 존재합니다. 자연 법칙과 영적인 법칙입니다. 그리고 선의 법칙과 악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법칙과 사단의 법칙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영의 법칙과 육의 법칙으로 대별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느 법칙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영의 법칙인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바울도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육의 사람이란 육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일 즉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왜냐면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성령의 일이 “미련하게 보이고 깨달아 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영의 법칙에는 다음 네 가지의 원리가 있습니다. 성도는 이 네가지의 원리대로 행복하고 큰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1. 믿음의 원리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고 불리 웁니다. 왜냐면 믿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설명하고 실제 믿음으로 살았던 16명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는 데 그들 모두의 이름 앞에 “믿음으로” 라는 말이 붙여져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히11:38절에 보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 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믿음이면 하나님의 우리의 환경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에서나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고 걱정 근심, 고난과 좌절이 와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① 믿음의 대상은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죽은 하나님이 아니고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② 믿음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누구든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요 14: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는 믿음은 다 가짜입니다.
  ③ 믿음의 결과는 보혜사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고 성령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며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를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이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어느 고급 박사과정 수학 강의 시간에 한 교수가 문제 하나를 칠판에 적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수학자들이 수년간 시도해 왔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풀리지 않지만, 그러나 한 시간 동안 이것을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교수가 문제를 제시한 지 30분이 지나서 교실에 들어온 지각생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 지각생은 자리에 앉았고, 칠판 위의 문제를 보고 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문제를 푼 학생은 그 지각생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문제를 30분 지각생이 쉽게 풀 수가 있었을까요? 이 학생의 머리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 지각생은 지각하는 바람에 그 문제가 "풀리지 않는 문제" 라는 말을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그 문제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당한 우리에게 더 많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문제를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까요?
  주님께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로서 주님께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대개는 자체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힘으로 여의치 않으면 자신을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포기하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는 문제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문제해결을 주님께 의뢰했습니다.
  주님께 와서 병든 자기 하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태도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집으로 오시지 않고서도 그곳에서 말씀으로만 하여도 하인이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을 성경에서 얼마나 많이 해주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그 약속들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간과하고 가볍게 생각해 버립니다. 즉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바로 옆에 큰 술집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술집 주인에게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며 이사를 가든지 팔든지 하라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술집 주인은 팔지도 않고 이사도 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교회는 할 수없이 온 성도들이 마음을 다하여 술집이 없어지기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집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술집 주인은 교회 때문에 불이 났다고 하며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걸어왔습니다. 재판장 앞에서 술집주인은 교회가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럴리가 없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재판장은 교인들에게 술집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재판장은 그러면 그 기도가 응답될 줄 믿고 기도했느냐고 물었습니다.교인들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 때에 재판장은 교인들에게 "어떻게 당신들은 술집 주인보다 믿음이 더 없습니까" 라고 물었답니다.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전능자 말입니다.

  2. 순종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마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눅6:46절에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행함입니다.
  약2:17,26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하고 깨달아야 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믿음의 조상으로 귀한 복을 받은 것도 결국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행함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약2:21)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옛날 가마꾼에게 주인이 개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가마꾼이 말하기를 "나는 가마꾼이지 개 찾는 사람이 아니니 다른 종을 시키시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한 참 생각하더니 "그래 그러면 가마를 내오너라" 라고 명했습니다. 가마꾼이 가마를 내오자 주인이 가마를 타고 "자 개 찾으러 가자"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가마꾼은 주인을 가마에 태운채 하루종일 개를 찾으러 다닐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 순종했으면 고생을 덜할 텐데 가마꾼은 앝은 꾀를 부리다가 하루종일 고생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순종하십시오.

  순종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무서워서 순종하는 노예 순종입니다.
  이것은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 해서 억지로 하는 순종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5-7)

  둘째, 보상 때문에 하는 순종입니다.
  이것은 삯을 받기 위해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 하는 순종입니다.

  셋째, 자원적 순종입니다.
  이것은 기쁜 마음이나,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순종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의 순종은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종은 마음의 평안, 양심의 자유, 그리고 그 마음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성 프랜체스코가 농사 일을 하고 있는데 젊은 청년 두 명이 수도사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마침 프랜체스코가 배추 모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청년에게 모종을 주면서 "이 배추를 심되 거꾸로 심어라. 뿌리를 하늘로 하고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지망생은 "선생님이 말씀한 것이니 그렇게 해야지" 하고는 거꾸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지망생은 한참 심다가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구나!' 하고 자기 생각대로 심었습니다.
  프랜체스코가 저녁에 나와서 보고는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뽑고 합리적으로 하겠다는 사람은 돌려보냈습니다.
  상식에 맞느냐 안 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순종한 청년은 프랜체스코의 인격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청년은 프랜체스코의 인격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면 교제가 단절됩니다.
 
  3. 자기 부인의 원리입니다. 

  주님은 눅 9:23절에서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9:23)
  자기 부인이란 자기를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큰 손해로 여깁니다. 그래서 결코 남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거나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삶에 요구되어지는 것이 바로 희생입니다.
  주님을 더 잘 믿고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부인할 때 하나님이 그를 인정해 주십니다. 자기의 무엇을 부인해야 합니까?.

  1) 자존심의 부인입니다.
  문둥병을 고치려 엘리사를 찾아갔던 나아만 장군은 자존심 때문에 하마트면 병을 고치지 못할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포기하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을 때 문둥병을 고침받았습니다.(왕하 5:1-14) 우리가 주님을 따르다 보면 자존심 구겨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까지 부인해야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입니다.

  2) 체면의 부인입니다.
  체면 때문에 예수 못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체면 때문에 교회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체면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체면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3) 기득권의 부인입니다.
  예수를 안 믿고 교회를 안다니면 할 수 있는 일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리고 때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누려야할 것을 누리지 못하고 받을 것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세상의 것들입니다. 잠시 후면 썩어지고 없어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잠시 누릴 세상 것 취하려다가 영원한 누릴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영원한 것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 잠시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이요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4.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눅 9:23절에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네 번째 원리는 십자가 짐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지고 좇는 다고 하는 것은 사명을 지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란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십자가 지는 것이며 예수를 잘 믿는 길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삽니까?
  월남 이상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일경은 서슬이 퍼런 어조로 "누가 시켰나?" 라고 물었습니다. 이상재 선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나를 붙잡았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일경이 화를 내며 "빨리 대답하라"고 소리치자 이상재 선생은 "2천만 모두가 했소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2천만이 당신을 시켰는가?"
  일경이 고개를 저으며 묻자 이상재  선생은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2천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시켰소"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하나님이 시켜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명이라고 부릅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은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습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누가 시켜서 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명감에서 한 것입니다.
  어떤 댓가를 바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월급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월급의 양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거나 요구하면 그만 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사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하고, 댓가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 자체를 위해 일합니다. 그러기에 월급의 액수에 구애받지 않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몇 년전만 해도 우리 한국 사람들을 일벌레라고 세계인들이 칭송을 했습니다. 시간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 때는 그래도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나라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정신말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낮은 임금에서도 참고 견뎠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명 때문이 아닌, 일 때문이 아닌, 오직 월급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그것에 합당하나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하는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월급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결코 돌아오는 월급 이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헌신적이고 봉사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이고 능동적이지 못합니다. 언제나 수동적이고 계산적입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에 우선하기 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우선합니다.

  이제 다시 사명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 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배에 타고 가는 생 명공동체입니다. 국가의 안녕없이 개인의 안녕이 있을 수 없고 이웃의 평안없이 나의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 참된 행복은 더불어 누릴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고 힘들 때, 내가 아니라고 해서 웃고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닙니다.
  촛불은 자기를 밝히기 위해 타는 것이 아니며 소금은 자신의 맛을 위해 짠 것이 아닙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기에 가치가 있고 소금은 맛을 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다할 때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명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성령의 사람은 영의 원리를 따라 삽니다. 그러나 지적인 신앙고백은 있으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육신의 원리대로 삽니다.

①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막11:23)
② 믿음은 언제 생겨지는 것일까요 (롬10:17)
③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약2:22) 
④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약2:21-24)
⑤ 십자가의 세 가지 의미는 무엇입니까?
⑥ 누가 영의 원리로 삽니까?
성도가 육신의 원리대로 살면 그것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증거이거나 아니면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불순종의 삶입니다. 영의 원리로 살면 하나님이 인정해줍니다.

  믿음의 원리로 삽시다.
  순종의 원리로 삽시다.
  자기 부인의 원리로 삽시다.
  십자가 짐의 원리로 사명을 감당합시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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