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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제자 만드는 우리교회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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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에 서툰 어느 주부가 차창에 '초보 운전'이라고 써 붙이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운전 중에 실수를 하자 사방에서 험악한 만들을 해댔습니다. "아줌마가 뭐 하러 차를 몰고 나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줌마는 '뭐 저런 인간이 있어? 내가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말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눅 들지 않은 아줌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초보 운전'을 떼버리고 '나는 밥하러 간다'라고 크게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운전을 했습니다. 감정을 담은 말에 열 받지 말고 유머로 대응하니 자신도, 남도 여유 있게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에 관련된 단어는 긍정적인 단어보다 부정적인 단어가 훨씬 많고, 우리는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단어를 제한해서 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같은 감정이라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행동 방식이 달라집니다. 화가 날 때 "화가 나서 돌아 버릴 것 같다"고 격렬하게 말하면 감정이 부추겨져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게 되지만, "조금 화가 나는데"라고 말하면 극단적인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울해 죽겠어"하는 것보다 "약간 명랑하지가 않아",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라고 말할 때 훨씬 감정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격해질수록 '잠깐!'하는 신호를 보내고 언어를 조절해 '조금', '약간', '별로'라는 말을 넣어 극단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며칠 전 어느 탤런트가 큰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상을 받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많은 성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가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예수님을 믿고 간증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과감하고 분명하게 믿어야 편안하고 기쁜 것입니다. 2007년도 우리 교회 표어는 '제자 만드는 우리교회'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씀에 근거한 표어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자를 삼아'의 헬라어 '마데튜사테'는 '제자를 만들라'는 강한 명령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한 자연인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든다는 것은 그를 선생과 제자에의 관계로 인도함을 뜻합니다. 제자란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교훈의 멍에를 메야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제자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07년 새해에 예수님의 명령대로 제자 만드는 우리교회와 번동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도로 제자를 만듭니다
  본문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께서는 절대적 권세를 가지시고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시며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지상에서의 권세 뿐 아니라 온 우주의 권세를 가지셨음을 확정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이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한 때 비하와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온 우주의 권세를 받으시고 이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무나 제자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적으로 기도했을 때에 성령의 능력을 받아 능력 있는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도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부어 주십니다. 전도와 교육이 중요하지만 기도가 먼저입니다. 기도 없는 전도와 교육은 뿌리 없는 나무에 불과합니다. 쉽게 마르고 쓰러집니다. 생명력이 없으므로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기도해야 제자가 되고 기도해야 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지 못한다면 분명 삯꾼이고 거짓 선지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제자이고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보다 지시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나 세 번째가 아닌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합니다. 복종은 분명히 우리가 피하고 싶어하는 항목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계산적인 생각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계획과 목적 아래에 두고,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복종하심으로 세상의 구주가 되셨고, 영원한 기쁨뿐 아니라 모든 것을 얻으셨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마이어(F. B. Meyer)는 말합니다. "인생의 많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견디거나 행하는 것에 자신을 복종시킬 때, 이 땅의 혹독한 상황들이 달콤하게 느껴지고 어려운 일들이 쉽게 변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지금 당신이 마주한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입니까? 고통과 싸우고 옳은 일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것은 그 동기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복종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마이어는 하나님이 우리를 현재의 상황에 놓아두신 것은 "그 분의 약속대로, 그 분의 보호하심 아래, 그 분의 시간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의 의지를 그 분께 맡기고,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기도 없이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할 때 전적으로 복종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가 부족하면 끊임없이 부인하고 혈기의 칼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과 교인과 이웃에게 상처를 주고 피를 흘리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혈기의 칼에 귀를 잘리었던 말고처럼 우리의 칼에 귀를 떨어뜨린 사람들이 말고 말고 말고와 같이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기도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이유를 대지말고 변명하지 말고 솔로몬처럼 기도의 무릎을 꿇고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특권의식을 버립시다. 바로 그 사람이 사고를 칩니다. 문제를 만드는 걸림돌이 됩니다. 이제 교회에서 세상이야기나 부정적인 말이나 불평을 버립시다. 기도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기도합시다. 1주일에 1회 정도는 새벽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한숨 쉬거나 염려하지 말고 건강과 가정과 생업과 꿈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제자 만드는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뜨겁게 기도합시다. 기도로 제자를 만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전도로 제자를 만듭니다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서'란 선교에 있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지속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진정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 위임한 권세와 당부한 명령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는 길을 '가는' 선교사들이 바로 성도들인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라는 명령입니다. 성도들이 처한 가정, 학교, 직장, 삶의 자리가 선교지이며 천국 대사의 부임지입니다. 성도는 어디서나 결코 머뭇거리거나 소극적, 도피적인 생활을 해서는 결코 한 명도 전도할 수 없습니다. 가서 만나고 전할 때 역사는 시작되고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서 당당하게 말하고 외칩시다. 반드시 전도의 열매는 맺혀질 것입니다. 전도 없이 면류관은 없고 교회 부흥의 기쁨과 감격도 없습니다. 늘 메마르고 갈증나는 힘든 신앙생활을 할 뿐입니다. 본인도 힘들고 보기도 안타깝습니다.

  위대한 신앙인 다윗은 인생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시편39:4-6).
  ①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
  ② 한 뼘밖에 안 되는 짧은 인생이다.
  ③ 한 순간의 입김 같다.
  ④ 신기루(헛된)와 같다.
  ⑤ 이방인과 같다.

  이것이 인간이고 인생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잠깐 왔다가 갑니다. 알고 보면 모든 인간은 불쌍합니다. 눈물날 정도로 안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헤어질 존재들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지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번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욕심부릴 필요도 없고 교만한 필요도 없습니다. 보기만 흉할 뿐입니다. 생명만 단축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으면 행복하고 영원히 삽니다.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듣고 안 듣고, 믿고 안 믿고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전할뿐입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사랑하면 전도합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30년도 더 전에 내가 개심한 날,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를 전하고픈 갈망이 내 안에서 용솟음쳤습니다. 문제는 내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권능 안에서 입을 열 때도,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영적으로 성숙하면서 부족하나마 분간하는 눈이 열렸습니다. 요즘은 아침마다 눈을 뜨면 이렇게 선포합니다.

  "제 인생은 주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오늘 제가 주님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게 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주님께 협력하기로 다짐합니다. 주님을 위해 한마디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나이다. 조용한 가운데 사랑과 섬김을 드러내라고 하시면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그렇게 하겠나이다. 당신의 영으로 저를 이끌어 주소서."
  나의 임무는 이것입니다. 그저 성령님이 걸으라 하시면 걷고, 말조심해야 할 때는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일용할 이끄심에 잘 협력한 날이면 나는 발을 쭉 뻗고 어린아이처럼 단잠에 빠집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목격하는 기분이란 이루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매 순간을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

  전도 없이 제자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금년도에 우리 교회에서는 수요전도와 총동원 전도주일과 문화사역과 알파 전도를 통해서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만나는 사람들을 전도합시다. 모두가 전도 대상자들입니다. 금년도에 1명 이상 전도하지 못하는 분들은 직분과 자격 미달자입니다. 어떤 손해나 불명예는 없지만 부끄러움과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말하고 주장하려고 하지말고 먼저 전도합시다. 전도해야 진짜 사람되고 성도됩니다. 전도해야 전도의 귀함과 어려움과 생명의 귀중성을 알게 됩니다. 힘들어서 눈물 흘리고 기뻐서 눈물 흘리게 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전도로 제자 만드는 일에 앞장서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교육으로 제자를 만듭니다
  본문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대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게 만드는 일, 전도의 영역을 넘어서 전도 받은 사람이 말씀을 믿고 지키도록 교육하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미신과 맹목적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르침만이 신앙을 건실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여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또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교육은 정비례하는 것이고 선순환하게 됩니다. 전도 없이는 교육도 없고, 교육 없는 전도는 곧 끝이나고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교육과 교회 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의 일원이 된 초신자는 구원받은 데서 그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엡4:13-15) 신앙 인격이 성숙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함으로써 예수님을 닮게 되고 거룩하게 성화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래된 나무라도 썩고 굽고 쓰러지면 재목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말씀 교육을 받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믿고 행동하여 영적으로 썩고 굽고 쓰러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며 책임을 통감하게 됩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악취를 풍기며 걸림돌이 되어 교회 성장에 방해가 되고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헨리 워드 비처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에서 메말라 가는 바다 가재가 있습니다. 그 바다 가재에게는 바다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힘은 있지만 지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바다 가재는 그곳에서 말라죽고 맙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다 가재는 자신의 1미터 앞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도달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도 사람들을 '곤란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파도가 있습니다. 그 파도는 바다 가재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사람들을 그곳에 그냥 남겨 둡니다. 만일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친 지점에 누워서 어떤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싣고 부드러운 물 속으로 다시 인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이 바라는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종종 인내로 오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듭니다. 한편 인내는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일하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 교육과 사교육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시설과 교육자재와 교사들이 우수하고 뛰어납니다. 반면 교회 교육의 현주소는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사회 교육을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게을러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더 희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교육시설과 주차시설이 부족합니다. 파도가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누워 있을 수만 없습니다. 게으르면 다 말라죽습니다. 일어서서 인내하며 바다를 향해 가야 합니다. 모든 공감대가 이루어져 우리 모두는 비전헌금(Vision)에 동참하여 교회 교육의 새 장을 열어 교회 교육의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시다. 이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며 기쁨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 하시고 능력과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제자 만드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좋은 대학이나 직장은 멀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멀어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다 갑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어 멀고 힘들어도 찾아오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교회가 되게 합시다. 기도와 전도와 교육으로 제자 만드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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