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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교회의 부흥 (행 9: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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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이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기독신자들입니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일로 인하여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투옥을 밥 먹듯 하였습니다.
양과 염소의 가죽옷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을 유리하면서 고난의 기름 가마에 인생을 불태웠습니다. 돌과 칼에 맞아 순교하고, 톱으로 베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삶을 포기하거나 도피하거나 염세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6-38절에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저들의 일행 한가운데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의 삶의 Motto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였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의 세계 선교 계획은 오순절 성령운동을 통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끌 수 없는 요원의 불길이요, 막을 수 없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요 죽일 수 없는 생명 곧 부활의 복음운동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승리하신 예수는 그가 부르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여실 준비를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다시 한번 예루살렘의 원(原)사도 베드로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Ⅰ.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의 진행(성장)

본문 9장 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라고 함으로 사도행전 1∼9장까지 전도의 종합적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여러 교회들이 있었지마는 「교회」( )란 단수형을 사용하므로 비록 여러 지역들에 예배당은 흩어져 있지만 주님의 참된 교회의 본질은 하나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진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곧 성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성장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외적 평안이었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평안하여」( )라 함은 외부적인 박해가 정지됨으로 이 지역의 교회들이 안전을 누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밖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예루살렘을 떠났던 신자들이 일시나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서로 왕래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2) 내적 성장이었습니다.
본문 9장 31절 「…든든히 서 가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든든히 서 가고」( )라 함은 '계속적인 세움'을 의미함인데 곧 「영적인 집(spiritually building up)」의 건립을 말하므로 자립적 신앙성장의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 위에 개인 개인의 영혼들이 구원의 확신으로 정립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3) 외적 신앙의 행동화였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주를 경외함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구약적 표현인데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과 경건한 행위로 순종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행동으로 나타내는 고백적 생활을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4) 영적 희열이었습니다.
본문 9장 31절에 또 말하기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보혜사 곧 위로의 신입니다.
여기 「성령의 위로」란 성령께서 신자들을 주님 곁으로 부르고 유도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원문」( )은 성령께서 신자들을 격려하고 충고하고 가르치고 깨닫게 하고 위로하고 축복하기 위하여 주님 곁으로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5) 숫적 증가였습니다.
본문 9장 31절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기를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순교자의 피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교회 설립의 종자가 되었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의 설교는 헛되지 않았고 그가 흘린 피는 이렇게 큰 열매로 교회사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의 숫적 증가는 외적 충만의 결과입니다.

Ⅱ. 룻다의 역사와 개종자들

사도행전 9장 32-36절에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원사도 베드로가 전도차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나타났습니다. 룻다는 욥바 근처의 한 지방입니다.

이미 그곳에도 예수 믿는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2절에 『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 아마 헬라계 유대인인 듯합니다. 그는 이미 예수를 믿어 「성도」의 반열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불행스럽게 8년 동안이나 중풍으로 침상 신세를 지고 살아가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영적 복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었으나 육신은 중풍으로 부자유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애니아야」라고 그 이름을 지적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명령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했습니다. 애니아야! 중풍병자를 향한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낫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낫게 하시니」( )라 함은 단일회적 현재 직설형으로 '지금 여기서 치료하신다'는 뜻입니다.
시간 장소 병세를 완전히 장악하시는 초자연적 치료행위입니다. 「네 자리를 정돈하라」( )는 말은 '네 침상으로 스스로 펴라'는 뜻으로 주임이 주시는 힘을 쓰라는 말입니다.

8년간이나 다른 사람들이 너를 위하여 운반해 주던 네 자리를 이제 너 스스로가 정돈해 버리라는 말입니다. 이제 그 자리를 너와 상관없도록 해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는 이제 8년간이나 머물렀던 그 자리를 청산해 버릴 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사도적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 자신의 이름이나 권세나 능력이 결코 아닙니다. 그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4절에 『곧 일어나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적 이적의 특색입니다.
그는 8년 만에 육신의 자유와 해방을 받았고 앉은 자리를 정돈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적의 결과는 「룻다」와 그 이웃인 「욥바」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고 했습니다.
그 지역에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 )라고 함으로 대성황을 의미합니다. 확실히 생명의 역사는 일고,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 멘 -
(석원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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